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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유월 Jan 02. 2024

#3. 부엌은 내가 해볼껄 (1)

소제목에서 벌써 스포를 마쳤지만, 진짜 부엌은 내가 해볼껄 싶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부엌을 맡기면서 제일 좋았던 점은 기존 부엌 수납장과 싱크대 철거 폐기가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었고, 두번째로 좋았던 점은 견적에 포함했던 중저가 빌트인 인덕션이 재고 부족으로 중고가 빌트인으로 업그레이드 되었다는 점이었다. 그 외에는 정말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매 파트마다 강조하고 있지만 우리는 정말 총알이 없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그런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이 지경으로 돈이 부족하면 집을 사지 말던가! 집을 살 거면 인테리어를 하지 말던가! 인테리어를 할거면 적당히 하던가!’


아무튼 그랬다. 우리는 총알이 없었기에 당초 계획은 주방에 싱크대를 비롯한 수납 가구를 독립적으로 구매해서 연결할 계획이었다. 이미 온라인에서는 그렇게 필요한 파츠 별로 가구를 판매하고 있었다. 그러니 싱크대와 하부장, 그리고 빌트인 인덕션을 할 하부장, 하부 코너장만 구매하면 될터였다. 집이 좁아서 시각적으로 넓게 보이고자 상부장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작업하고 있는 터라 하부장으로 어떻게 해결해볼 생각이었다.


하부장만 주문한다면 상부장을 벽에 설치해야하는 부담도 적었기에 셀프로도 될 것 같았다. 단 하나 마음에 걸리는 부분은 환풍기였다. 환풍기가 포함된 상부장은 어떻게든 벽에 달아야 했다. 그것도 방법이 있겠거니 하고 마음을 놓고 있었다.


그렇게 낸 예상 주문 견적이 인덕션을 제외하고 대략 100만원 초반이었다. 곰곰이 생각하게 만드는 금액이었다. 그러니 나의 짝꿍은 결정 할 수 밖에 없었다.


“업체 몇군데 알아보고 견적이라도 받아보자!”


아주 중요한 결정이었고, 계속해서 가져갔어야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우리는 모든 인테리어 전반에 업체에 시공 견적 금액을 알아보지 않고 무턱대로 추진했다는 어리석음이 있었다. 무조건 좋은 자재를 우리가 하는 것으로 우수 시공 내용에서 인건비를 빼보겠다는 단순한 셈법이었다. 물론 다시 고민해봐도 이것보다 더 저렴하게 할 순 없었겠지만, 그래도 얼마를 아꼈는지 셈하지도 못한건 조금 아쉽긴 하다.


첫 문의 전화는 인테리어 업체가 아니라 주방 가구 납품 업체였다. 시공은 우리가 하더라도 오프라인으로 구매하면 조금 더 편할까 하는 생각도 함께 했던 부분인데, 시공을 포함해도 별로 높지 않은 예상견적을 들었다. 현장을 한번 봐주시라는 말에 전문가 한 분이 한달음에 달려왔다.


이번에 온 사람은 키가 아주 훤칠하고 잘생긴 청년이었다. 왠지 믿음이 가는 마스크와 서글서글한 태도가 꽤 긍정적인 마음을 들게 만들었다. 혹 했다고 하는 게 더 맞는 표현이겠다.


“저희가 총알이 부족해서 셀프로 진행하려는데...”


우리의 단골 멘트를 붙여서 설명하기를, 현관과 부엌을 가리는 키가 큰 신발장을 빼서 시아를 넓게 할 생각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그래서 상부장은 절대 필요한 환풍기 부분만 빼고 나머지는 과감하게 빼버리고, 하부장을 ㄱ자로 만들 예정인데, 지금 주방 가구에서 살릴 수 있는 부분이 있느냐는 문의였다.


"당연하게 살릴 수 있는 부분이 상판 대리석 정도 인데...."

그것도 자세히 보고 나니 바꾸시는게 어떻겠냐는 즉답이었다. 그러면서 파일철 속의 단가표와 핸드폰을 몇번 뒤적거리고 나서 꽤 마음에 드는 견적을 내놓았다.


“셀프로 하다보니, 철거와 설치를 다른 날에 해주십사...”


출장비만 조금 추가해주면 어려울 것도 없다는 말에 흔쾌히 계약을 추진했다. 덧붙여 우리가 셀프로 철거를 하고 있으니 폐기 처리 하실 때 부엌에 있는 폐기물을 조금만 도와주기로 약속해줬다. 거기에 우리가 예상했던 금액에 인덕션을 소매가로 추가한 금액이, 업체의 시공비용에 도매가 인덕션 추가 금액과 크게 차이가 나질 않았다. 혹 하는 가격에 다른 곳은 알아보지도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계약금을 넣은 와이프는 다른 한 군데만 더 물어보고 견적을 받아 볼껄 그랬나하는 말을 꺼냈다. 이제와서 계약을 물릴 수도 없으니 여느때와 같이 나는 현명함을 온 몸에 두르고 대답한다.


“괜찮아! 그 가격보다 더 낮으면 오히려 의심되고 안좋아. 지금 정도가 딱 좋아! 잘했어!”


다독임과 칭찬의 연속으로 차 안에 가득했던 불안감을 몰아냈다. 잘했다 나 자신!


시간이 흘러 철거일이 다가왔다. 훤칠한 청년과 다른 청년이 와서 부엌을 박살내고 있었다. 뭔가 책장이나 서랍장 처럼 하나의 제품 제품을 뜯어내는 게 아니었다. 빌트인 붙박이장을 철거할 땐 장롱 + 장롱 이었는데 부엌은 문짝 하나, 문짝 하나, 벽, 뒷판, 이런식으로 뜯어내고 있었다. 솔직히 뚝딱 뚝딱 뜯어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오래걸렸다. 우리의 인테리어 업종에서 본업으로 변신해야 하는 12시(신데렐라도 아니고)가 넘어가버려서 우리는 다음날에 마저 확인하러 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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