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는 말끔했다. 폐기처리가 다 되면 이렇게 말끔해진다니! 그런데 부엌 폐기만 딱 가져가주셨다. 그게 맞긴 하지만 조금 도와준다던 그 훤칠한 남자는 어디가셨나요? 우리는 또 서로를 다독이면서 괜찮다 괜찮다로 불안감을 밀어냈다.
그런데 저건 또 뭐지 싶은 전선이 벽에서 흘러나와있었다. 아무래도 전원선인듯 한데, 얘는 누구고 쟤는 누구지? 또 걔는 누구야? 벽에 3개의 구멍이 있었다. 상부장쪽에만 1m 정도 떨어져서 두개 있었고, 하부장 쪽에 하나가 있었다. 각각 구멍마다 전선이 3개씩 나온 게 대충봐도 전원이었다. 어떤 선인지 물으러 전화를 걸었다.
“아마 환풍기 전원선 같은데요. 벽에 타일하신다고 했죠? 선만 빼 두시면 저희가 알아서 설치할거에요.”
오? 그렇구나! 전기공사도 해주시는구나! 여담이지만 타일을 붙일 때 그 세 구멍에서 전원선들을 모두 살리려고 부족한 기술로 타일을 안깨고 원형으로 구멍을 내느라 진땀을 뺐다. 그렇게 폐기 조금 도와주신다면서요 라는 볼멘소리를 삼키고 3주 정도로 다음 시공일정을 세웠다. 이제 우리는 그 시공일정까지 나머지 철거를 마치고, 천장 페인트와 부엌 타일만 마치면 되는 일이었다.
글을 쓰는 지금, 부엌을 흘겨보며 타이핑을 이어가고 있는데, 천장 페인트와 부엌 타일 시공만 마치면 될 일 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 우리는 참 어리석고 뭘 몰랐다. 생 초짜에게 그게 그리 말처럼 쉬운 시공도 아니고 쉬운 일정도 아니었는데!
여튼, 우여곡절 끝에 배선까지 잘 마친 부엌 공간을 마련했다. 이제 설치만 하면 되는데. 언제오나 싶어서 전화했더니, 이 겉만 훤칠한 녀석이 시공일정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한 술 더 떠서는 어떤걸 주문했는지 주문내용을 우리에게 재확인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주문서를 잃어버린듯 했다! 우리는 그 시공 일정을 맞추기 위해 천장 규조토 작업을 어떻게 마무리 했고, 벽 타일을 어떻게 마무리 했던가! 치솟는 분노를 내리고 부엌 천장 규조토 작업을 완성도 있게 하는 것으로 마음을 수련했다. 이너 피스.
두번째로 전화가 온 것은 다시 시공하기로 예정된 날 이틀 전이었다. 내용은 그러했다. 우리가 인덕션을 포함했던가요? 으익! 치솟는 분노. 이제는 겉도 훤칠해보이지 않았다. 그저 멀대같은 사람일 뿐이었다.
그런 분노와 어이없음을 느꼈던지 시공일에는 착실히 작업이 진행되었다. 설치는 그 옛날(이미 감각적으로 꽤나 옛날이 되었었다)에 했던 철거의 역순이었다. 뒷판을 대고 벽을 올리고 각 칸에 맞는 구성품을 넣고 피스를 박는 순이었다. 인터넷에서 사려고 했던 완제품 + 완제품 형태의 시공은 아니었다. 그러면서 그저 멀대같은 사람은 우리에게 강조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원래는 하츠 모델로 인덕션을 주문하셨는데, 저희가 재고가 부족해서 한단계 업그레이드해서 준비해드렸어요. 여기 QR코드 꼭 확인하셔서 인덕션에 있는 각종 기능 확인해서 쓰셔요!“
멀대 같던 부엌 전문가가 조금은 훤칠남으로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상판 대리석은 나중에 오니까 대리석 오고 나면 인덕션 얹겠다며, 인덕션을 박스 째 두고 작업을 시작했다. 여전히 우리의 변신시간은 초과되었고, 우리는 대리석이 올라 앉기 전에 현장을 나와야 했다.
다음 날 먼지가 조금 남은 부엌을 맞이했다. 이제 우리 셀프하면서 인덕션에다가 밥도 해먹을 수 있으려나 했다. 역시 그렇게 쉽게 일이 마무리 될리 없었다. 그 떡밥으로 상부장에서 슬금 꼬리를 내민 전선이 두가닥이 있었다. 이게 왜 여기 나와있지 했다. 그 두가닥 전선은 타일 구멍까지 만들어가며 정성스럽게 마감해 둔 전선 세 뭉치 중 하나였다. 그럼 다른 뭉치들은? 하는 의구심에 부엌 가구장 문을 열었다.
‘...연결해준다며? ’
환풍기 상부장에는 환풍기 콘센트를 수줍게 쳐다만 보고 있는 덜렁 마감된 전선 세 가닥, 그리고 하부장에는 인덕션 콘센트를 멀뚱히 쳐다보는 덜렁 마감된 전선 세 가닥이 있었다. 상부장 벽에서 기어내려온 전선 두가닥은 갈 곳이 없어서 기어내려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니 이럴거면 마감 완벽하게 해서 벽 안에 두지 않았을까요? 멀대처럼 키만 큰 전문가씨? 아니 당초 전문가씨는 맞으신가요?
휴. 전기 작업 마칠 때 까지 인덕션으로 뭘 데워먹기는 글렀다. 아니 애초에 현장에서 뭘 먹으려고 했던 내가 멍청이다!
그렇게 부엌 싱크대는 공사가 마칠 때 까지 가방과 외투를 두는 비교적 청결한 공간 A가 되었다.
이렇게 부엌 사태가 마무리되는 듯 했다. 하지만 결정타 한 건이 남아있었다. 이사 일주일 전 식기세척기 설치를 위해 설치 가능 여부를 확인하는 기사님이 방문했을때였다. 이 기사님은 하부장을 재는 줄자에서부터 그 바이브가 흘러나왔다. 바닥 공사 전이라 바닥이 어떤 시공으로 예정되어있는지 확인 하시곤 배선을 위해 대리석에 작은 구멍을 내면서 알려주었다. 한 전문가가 다른 전문가의 작업 내용을 지적하는 내용이라 그 시작은 거의 대부분 이렇게 시작할 법 했고, 클리세를 벗어나지 않았다.
”일단, 이건 알고는 계셔야 할 것 같은데요.”
제일 먼저 알려준 내용은 싱크대 도어 높이가 어긋나있었다는 것이었다. 왼쪽은 비교적 수평이 맞는데 오른쪽은 수평이 맞지 않아 높낮이가 어긋나 있었다. 그리고 그 옆 소스 수납장은 더 가관이었다. 싱크대 하부장은 안쪽 힌지를 조절해서 높이를 맞출 수 있었다. 그런데 소스 수납장 문은 높이가 처음부터 맞지 않았다. 위를 비교해보면 높이가 낮게 위치했고, 아래를 비교하면 높았다. 위 아래로 약 5mm씩 작았다. 이건 뒤틀림을 조절한다고 해서 맞출 수 있는게 아니었다.
식기세척기가 들어가야 하는 공간은 왼쪽보다 오른쪽이 약 1Cm정도 작았다. 하지만 사람이 커팅하고 사람이 설치하는 부분이라 식기세척기 설치에 무리가 없는데다 이정도면 티가 나지 않으므로 오히려 이런 부분은 괜찮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작업 조끼에서 나사 마감 스티커를 떼다 붙이는 모습이 마치 ‘이런 단순한 마감도 신경 못쓰는 아마추어 같은 업체에서 작업을 받으셨군요.’ 하는 듯 느껴졌다.
“다른 건 몰라도 인테리어 종합 사장님이나 부엌 시공 업자에게 싱크대 하부장 문 높이는 수정 받으세요!”
라고 당부하며 식기세척기 설치 기사님이 떠나가셨다. 그 즉시 우리는 사진을 찍어 전송하고 전화를 했다. 받지 않았다. 문자를 남겼다. 회신이 없었다. 이사한지 한달이 넘은 지금까지 소식이 없다. 나중에 내가 고치고 말지 싶었다.
부엌은 상판 대리석만 어떻게 해결할 수 있으면 꼭 셀프로 하자. 필요한 가구만 따로 구매해서 배치하고 벽에 박으면 충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더욱 가득해졌다. 다음 집 부엌은 무조건 셀프로 한다!
아 진짜, 부엌은 내가 해볼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