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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유월 Jan 23. 2024

#4. 내 어깨를 봐 탈골 된 것 같지 않아? (2)

페인트를 바르기 위해 해야하는 작업은 먼저 벽지를 제거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아, 입주자를 들일 때 도배 장판을 새로 해주는 일은 벽지를 제거하고 새로 붙이는게 아니라, 기존 벽지 위에 새 벽지를 붙이는 것 뿐이었다는 것을! 벽지를 네겹정도 벗기고 나니 콘크리트를 만날 수 있었다.


페인트를 바르기 위해 해야하는 두번째 작업은 바로 평탄화. 핸디 코트로 퍼티 작업이 시작되었다. 일단 크랙 보이는 곳에 망사로 되어있는 조인트 테이프를 작업하고 퍼티를 바르는 보수작업인 줄퍼티작업을 했다. 천장 몰딩을 뜯어낸 곳이 간혹 움푹 페인 곳이 있으면 조인트 테이프를 조금더 넉넉히 붙여서 퍼티를 쑤셔넣었다. 


- 뚝

천장에서 떨어진 핸디 코트가 옷과 신발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자 이제 작업복을 몇벌을 만들어야 하지? 아무튼, 철거하면서 눈에 거슬렸던 몇몇 부분들에 줄퍼티를 시작했다. 이제서야 뭔가 인테리어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줄퍼티를 마치고 이제 올퍼티가 시작되었다. 퍼티를 적당히 펴바르는 작업으로 벽을 매끈하게 만드는 작업이었다. 이 작업을 붓으로 하려다보니 막막했다. 


이럴때 필요한 건, 장비! 올퍼티는 역시 기계힘이 필요하겠지? 스프레이건을 유선과 무선으로 구매했다. 노즐이 막혔다. 아무래도 핸디 코트가 질감이 있다보니 스프레이 노즐이 너무 좁았던 것 같다. 노즐을 뚫어가며 스프레이를 뿌리는데, 뭔가 시원찮았다. 이중 슬릿으로 양자역학 실험하듯이 입자 하나하나가 벽에 붙는게 보였다. 


‘아니! 속도가 이 모양이면 그냥 붓으로 슥슥 바르는게 훨씬 빠르지!’ 스프레이건을 집어던졌다. 유선이고 무선이고 나발이고 쓸만한 장비가 아니었다! 올퍼티는 느리고 고된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런 재미없는 작업을 하다보면 꼭 마찰이 생긴다. 


“오빠! 여긴 왜 줄퍼티 안했어?”

단순 작업의 연속에서 멀어저가는 집중력은 작업의 구멍을 불러왔다. 아니 내가 일부러 안했겠어? 착각했거나 못본거지. 그걸 잡아먹을 듯 날카로운 목소리로 후벼파는 와이프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러는 와중에 이두와 삼두 근육은 조금씩 늘어가기 시작했다. 군대 말년에 왕자 복근을 가져보겠다는 욕심으로 매일 각종 복근 운동을 했던 일이 생각났다. 3개월이 지날 무렵, 나는 근육이 붙지 않는 체질인가보다하며 채념했는데 그런게 아니었나보다. 그냥 덜 열심히 했었다는 것이 느껴지는 이두와 삼두의 반란이었다.


서로 지쳐가니 올퍼티를 점점 포기하는 듯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사실 말이 올퍼티지, 이것도 일주일이 넘어가면서 슬슬 딴 짓이 하고 싶어졌다. 샌딩작업을 열심히 하면서 이젠 규조토 페인트 뚜껑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그만 저걸 열어버리고 말까? 하면서 말이다. 뭐 지금 생각해봐도 얼추 된 게 아닐까 싶었다.


규조토는 액상 페인트와 분말로 판매를 하는데 먼저 우리는 액상을 구매했다. 페인트를 바르다보니, 슬금슬금 또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아! 스프레이건! 뭔가 슈슉 하고 작업이 진행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핸디 퍼티가 묻어있던 통을 씻고 닦고, 노즐을 새로 뚫고 씻고 난 뒤에 규조토 페인트를 담아 트리거를 당겼다. 아 맞다. 얘네들은 쓰레기였지. 다시 또 열심히 붓질을 시작했다. 또 붓질을 하다보니 어깨도 아프고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그럼 이번엔 롤러를 써볼까?


드르륵- 

롤러가 회전하면서 절반 가량은 벽이나 천장에 바르는데, 남은 절반의 절반 정도는 회전하는 원심력으로 내 얼굴에 페인트를 튕기기 시작했다. 망할. 고글을 썼는데도 몇 방울은 눈에 들어갔는데? 이러다 병원비가 나오겠는데? 게다가 롤러가 담고 있는 페인트양이 시원찮았다. 결국 롤러로 붓질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나서 롤러도 쓰레기임을 깨달았다.


와이프는 외벽부분부터 시작했다. 뒷 베란다는 아이소핑크라는 단열제가 지저분하게 덕지덕지 붙어있었는데, 아이소핑크를 떼어내니 하얀 벽이 있었다. 그리고 구석에 쓰다 만 페인트가 남아있었다. 아마 전에 거주하던 사람이 뒷 베란다를 셀프로 조금 했던 모양이다. 나름 비싼 페인트가 마침 흰색이어서 와이프는 속도를 내고자 규조토 페인트에 물을 넉넉히 섞어 물칠을 시작했다. 마르면서 흰색으로 변하는게 충분해보였다. 

슬금슬금 나도 페인트에 물을 조금씩 섞었고, 빠르게 천장과 벽들이 마무리 되어갔다. 아니, 마무리 되어가는 것만 같았다.


액상 18Kg를 다 털어 쓰고 나니, 이제 페인트가 남는 걱정이 들었다. 그래서 분말을 사보았다. 같은 용량의 페인트가 되는 분말은 액상 페인트에 비해 애매하게 저렴했다. 하지만 그 가격차이 보다, 쓰다가 남는 규조토를 장기간 보관할 수도 있었고, 어차피 넉넉히 물을 타서 칠하니까, 하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결국 우리는 경제적인 분말로 결정했다. 그리고 모든 색은 흰색으로 통일했으니 분말이든 액상이든 힘들게 없었다는 자기 위안까지 덧붙였다.


힘들게 없긴? 물에 잘 개어서 어제 작업했던 부분부터 이어서 칠하는데 자꾸 와이프가 갸웃했다. 

“오빠, 천장 색이 이상하지 않아?”

“아직 안 말라서 그런걸꺼야.”


그렇게 하루치 페인트를 어깨 빠지게 했다. 다음날에 결국 우리는 페인트 색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망할. 분말 규조토에 쨍한 흰색 유성 페인트를 두 통정도 섞어서 20Kg를 만들었더니 얼추 색이 비슷해졌다. 자 이제 우리는 분말 가격에 유성 페인트 두통 가격을 얹어서 생각해야 했다. 분말이 더 비싸졌다. 망할.

그리고 마침내 셀프 인테리어의 테스트 방으로 삼은 가장 작은 방의 페인트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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