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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유월 Jan 30. 2024

#4. 내 어깨를 봐 탈골 된 것 같지 않아? (3)

물칠한 규조토는 야주 얇고 울퉁불퉁하게 발라졌다. 마른 벽을 손으로 스윽하고 문질렀더니 흰 먼지가 그대로 묻어나왔다. 어? 이러면 안되는데. 규조토 페인트 업체의 동영상 설명서를 돌려보기 시작했다.


아, 규조토는 본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어느정도 두께가 있게 발라야 했다. 그래서 우리가 선택한 도구는 헤라였다. 페인트지만, 페인트로 취급하지 말아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우리는 페인트를 시멘트처럼 펴 바르기 시작했다. 다시, 처음부터.


파레트와 붓, 헤라를 들고 사다리를 탔다. 파레트에서 헤라에 페인트를 얹어서 펴 바르고 밀려 올라온 페인트를 붓으로 닦아 모아서 다시 헤라에 얹어서 펴 바르기를 반복했다. 여기저기 작업 구역을 오가다가 자연스럽게 와이프는 벽면을 했고, 나는 천장을 맡게 되었다. 먼저 공사가 끝난 베란다 샷시와 타일에 페인트가 묻었다. 다행히 규조토라서 물로 지워진다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작업을 하면 할 수록, 옷과 신발, 팔과 얼굴에 페인트가 묻는 건 당연했다. 옷과 신발은 페인트 마치면 쓰레기 예정이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그릴 때 얼굴과 눈에 떨어진 물감으로 시력이 나빠졌다는 미술사의 한 수업 구절이 떠올랐다. 가끔 쉬려고 사다리에서 내려오면 와이프와 서로 외모 지적을 했다. 그리고 다시 사다리에 올랐다. 계속 했다. 와이프와 나눠낀 에어팟으로 같은 힙합 음악을 듣고 있었다는 것 외엔 대화도 없이 매일 나의 백색의 시스티나 천장화를 그려댔다.


계속 했다. 진짜 진짜 계속했다. 턱 끝까지 “지금이라도 도배하자”는 말이 차올라서 새어나왔다. 샌딩 작업을 최소화 할 수 있도록 헤라 칼 자국도 남기지 않으려 애썼다. 그리고 어느덧 늘 테스트 방으로 썼던 가장 작은 방을 이번엔 헤라로 시멘트처럼 발라서 페인트를 완성했다. 


샌딩기를 대고 맨들하게 갉아냈더니 예쁜 방이 되었다. 샌딩기는 무지막지했다. 흰 먼지가 화재가 난 듯 피어났다. 창문을 열면 누군가 119에 신고하는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벽과 천장에 남아있는게 과연 규조토페인트일까, 핸디코트일까. 아무튼 예쁜 방이 되었다. 그리고 그 벽에서는 흰 가루가 전혀 묻어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왕창 묻어났다. 망했다. 


일단 우리는 나머지 완성되는 부분에서 샌딩을 하지 않기로 했다. 다른 방을 작업하면서 작은 방을 한번 더 작업하기로 했다. 사실 작은 방이 가장 먼저 완성되었다뿐이지 다른 방도 순차적으로 완성 대기 상태여서, 창고 및 드레스룸으로 쓰기로 한 중간방을 뺀 나머지 모든 벽과 천장을 3회차 바르기에 도입하게 되었다. 작은 방의 문제와 해결 방법을 계속 찾았다. 


샌딩 한 것이 잘못된 것 같아.

빗자루로 터느라 미세하게 생긴 홈에서 규조토 먼지가 피어나는걸까?

규조토가 잘못되었나?

물을 뿌려볼까?

히팅기로 바짝 말려볼까?


어느것 하나 완벽한 해답 없이 3회차를 마무리를 지었다. 그러면서 작은방에서는 샌딩도 했다가, 물도 뿌렸다가, 히팅기로 구웠다가 별 짓을 다하게되었다. 샌딩을 빼고 하나 하나 방법마다 왠지 괜찮은 것 같다가도 망한것 같은 기분이 계속되었다. 


유선 청소기로 중간 중간 청소를 계속했다. 샌딩 이후에는 뭔가 잘못된 소리도 났다. 바닥의 샌딩 먼지를 빨아들인 청소기는 뒤편 배기구에 흰색 가루가 꽉 막아버렸다. 펑- 하는 귀여운 소리와 함께 흰 먼지가 피어 올랐다. 단순 반복의 업무로 어깨에는 다량의 근육이 붙었다. 어깨는 빠지는 줄 알았다.


글로는 짧게 마무리 지었지만 작업 기간은 대략 한달 반정도. 그 기간동안 페인트에만 몰두한 결과 그 동안 들은 힙합 음악에서 랩 몇 벌스를 대충 흥얼거릴 수 있게 되었다.

페인트 잔뜩 묻은 인테리어 초짜몰골로 원주에서 최근 가장 사람 많은 무실동을 활보 하며, 단골 카페와 김밥집을 만들었다. 아 바로 앞의 다이소도 그 몰골로 열심히 다녔다. 


에필로그지만, 나중에서야 알았다. 규조토는 먼지를 붙들고 있는 능력이 있는데, 그동안 공사 하면서 공사 먼지를 규조토 벽이 온통 끌어앉고 있었다는 것! 물걸레로 닦아줘야 했었다. 그리고 말리면 끝이었다. 게다가 실내에 규조토 페인트를 바를 땐, 벽지 위에 발라도 된다고. 벽지 철거를 무리하게 할 필요가 없었다고 한다.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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