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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어예 Mar 24. 2024

제9화 병원투어 (2) 기능의학병원 편

계란을 먹지 말라고요?

그래서 더 많이 실패하고, 더 자주 포기하고, 자신의 길이 무엇인지 더 많이 실패하고, 더 자주 포기하고, 자신의 길이 무엇인지 더 많이 시도할 수 있는 권리가 필요하다.

이 산이 아닌가 봐요, 싶으면 얼른 내려와서 또 다른 산을 찾아갈 수 있는 권리가 필요하다.

- 뭐라도 되겠지


철분제를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매일 밤 정화수를 떠 고 자식을 위해 기도하는 어머님의 심정으로 꿀꺽 삼켰다. 하지만 내 장은 1도 변화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게 주위에는 죄다 건강한 장을 가진 사람들뿐이어서 정보를 구할 사람도 고민을 나눌 사람도 없었고, 친분이 있는 의사나, 약사에게 나의 증상에 대해 물어봐도 '글쎄...'라는 애매한 답변만 돌아올 뿐이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야지, 논문을 검색해서라도, 뭘 해서라도 내 증세를 고치고야 말겠다!라고 인터넷에 전투적으로 달려든 지 10분도 안되어 과민성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카페를 발견했다. 최대한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내가 쓰던 아이디와 전혀 다른 아이디를 만들고, 블로그 검색을 비허용하고 카페에 가입, 의미 없는 댓글을 채워 등급 상승, 회원들의 증상 공유 이야기들을 읽으며 울고 웃고를 반복하다가 반나절을 보냈다. 나 정도면 증세의 심하기 정도가 중간 정도? 아주 심한 정도도 아니었구나라고 다소 안심하며 완치라는 키워드를 검색창에 입력해 본다.


하지만 내가 발견한 것들이라고는

'과민성 대장증후군은 완치가 없나 봐요. AI도 등장하는 세상인데 아직까지 만성이라니.'

픽 웃으며 패스. 다음 글은 광고 같아서 패스. 정신과 약이라... 아무리 그래도 정신과약까지는...  패스.

'기능의학병원에서 완치했어요'라는 글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미래의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인 기능의학 학회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현재 우리 의사들은 새로운 진료 지평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최선의 의료 시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호전되지 않는 환자, 동일한 치료를 해도 효과가 떨어지는 환자, 시술은 잘했지만 우연치 않은 부작용으로 ‘의료 사고’ 논쟁을 야기하는 환자 등 의료계를 무겁고 힘들게 하는 문제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효율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미래 의학의 새로운 패러다임, 바로 기능의학이 바로 그 해결책이라고 확신합니다. 기능의학은, 인체 본연의 생화학적 흐름이 잘못되어 여러 세포의 기능적 저하를 시작으로 결국 중증 질환으로 발전할 때, 그 질환의 증상만 억제시키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근본 원인과 메커니즘을 찾아 인체 스스로 본연의 치유능력을 회복하는 생리적 균형을 이루도록 유도하는 의학입니다.'


아마 기능의학이 뭔지 검색해 봤을 때 소개글에서 나온 이 미래지향적인 문구들이 맘에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집에서 제일 가까운 거리에 있는 기능의학과를 검색하고 카페를 탈퇴했다. 왠지 거기 더 있다간 과민성이 더 심해질 것 같은 느낌.


일단 의사 선생님께서는 뱃속에 유해균이 너무 많은 것 같다고, 유해균을 죽이는 약을 먹어보자고 하시고(하지만 유익균까지 죽인다고 ㅠ) 알레르기 검사를 권해주셨다.

검사 결과는 너무 충격적.


다음과 같은 음식에 비정상적인 면역 반응이 관찰됩니다. 해당 음식 섭취를 최대한 피하십시오.
결과 등급(Class)이 높을수록 반응이 심하게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Class 6 : 우유단백질
Class 5 : 우유, 계란흰자, 요구르트, 캐슈너트
Class 4 : 치즈, 생강
Class 3 : 계란노른자, 키위, 땅콩
Class 2 : 마늘
Class 1 : 바나나, 자두, 쌀, 밀, 귀리, 글루텐, 꿀, 아몬드, 호두


"아... 아니 선생님, 우유와 계란에 알레르기라뇨. 그냥,  통으로 된 우유, 계란 이렇게 못 먹는다는 말씀이죠?

설마 우유가 포함된 것, 또는 계란이 포함된 것을 다 먹지 않는 게 좋겠다는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헉... 먹으면 어떻게 되는 건데요?" 아니 이제까지 계속 먹고살았는데."


"일반적인 알레르기 증상도 있고, 두통, 졸음, 피곤함, 가스, 소화불량, 설사, 변비 등이 나타날 수 있는데요. 이게 먹는다고 바로 증상이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며칠 있다가 나타날 수도 있어서 환자분께서 정확하게 인지를 못하실 수도 있습니다. 아마 계속 배 아프신 것도 알레르기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이 드는데요.

일단 이 음식들을 피해보시면서 장 환경을 개선해 보시죠."


"아니 근데 쌀이라니요... 대체 뭘 먹고살아야 하는 거죠? "


"등급이 낮아서 크게 문제는 없겠지만 그래도 현미나 잡곡을 드시는 게 나을 것 같아요."


"다시 여쭤보는데.. 그러니까... 빵.. 케이크, 과자 이런 거 다 안된다는 거죠?"


"네, 안 드시는 게 나을 것 같아요. "


"어 그런데 커피는 의외로 괜찮네요? 그런데 제가 커피 마시면 배가 아픈데."


"네 일단 커피에 알레르기는 없어서, 우유만 안 들어가면 괜찮을 것 같아요."


하아... 라테를 못 먹는다니, 케이크를 못 먹는다니. 나는 이제 무슨 낙으로 살아야 하는 것인가.


유산균 죽이는 약을 처방받고 글루타민, 그리고 베타인,  아연을 챙겨 먹으라는 말과 함께 병원을 나왔다. 논문을 검색해서라도 낫겠다는 나의 의지는 라테 금지라는 말과 함께 이미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라테 금지라니 라테 금지라니...


며칠 후 나의 금지 음식 소식을 들은 친구가 위로의 커피를 사준다며 날 불러냈다.


"라테도 못 마시는데 무슨 커피는.. 난 아메리카노는 맛없어."


"그냥 차 마셔. 이참에 커피도 끊고."

 

"그래~ 차라리 그래야겠다. 나는 그럼 밀크티!"



* 정보여과 (Filtering)

우리는 자신에게 익숙한 사안에만 주목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선택적 지각이라고 부른다. 자신이 기존에 알 고 있던 정보를 접하면 이를 검증하지 않고, 모든 사실을 그 정보에 끼워 맞추려 한다는 뜻이다. 심지어 사실 왜곡도 서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자기가 알고 있는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불편한 현실을 은폐하거나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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