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어예 Mar 17. 2024

제8화 병원투어 (1) 내과편

백혈병이 아니라

인간은 혼자서 병을 알아서는 안된다.

누군가 가까운 사람이 있다는 것은 누군가 자기 병을 걱정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말과 같다.

존재는 병이고 병을 통해서 우리는 남과 어울린다.

병을 앓게 되면 자신이 혼자인지 아닌지 아니면 남과 함께 살고 있는지 알게 된다.

- 지성에서 영성으로



부끄러움으로 몸서리치며 이불에 코 박고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이 되자마자 득달같이 동네 내과에 전화를 걸어 피검사와 장내시경을 예약했다. 


친구에게 창피한 것도 한 몫했지만, 혹시나 혹시나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배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 나에게 큰 병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 몸의 일부인 장이 이렇게 날 괴롭게 할 순 없다.


다리가 부러진 것보다 손톱 밑 가시가 더 괴로울 때가 있다.


힘든 병으로 고생하시는 분들, 그리고 그 가족분들께는 정말 죄송한 이야기이지만, 차라리 병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체적으로 분명하게 문제가 있는 병이라면, 불치병이 아닌 이상 치료약과 치료법이 있을 것이고, 나의 몸상태에 대한 부끄럽지 않은 변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 나는 수치심 대신 내 몸을 내놓는 편을 택한 것이다. 장내시경을 위한 정결제를 먹으면서 머릿속으로 불치병도 아니고 죽지 않을 만큼 아프지도 않으면서 의료보험도 되는 그런 병들을 리스트업 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내시경과 피검사 결과가 나오는 날.


"장은 너무 깨끗하시네요. 염증도, 용종도 하나도 없어요."

그럼 그렇지, 결국 내 정신이 문제인거지?

"그런데 여기 이 수치를 보시면 백혈구 수치가 비 정상적으로 떨어져 있어요. "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그런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정도가 높은 병인데. 아니 백혈병이면 불치병인 건가? 아니면 요즘은 치료가 되는 병이던가? 약이 있던가? 의료 보험이 되던가? 과민성 대장증후군을 고민하다가 백혈병이라니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인생이구나.

"그럼... 백혈병인 건가요?"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렸다.

차트를 보던 선생님이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보셨다.

"어머니, 백혈병은 백혈구 수치가 증가하는 건데요.. 드라마에 많이 나오는데... 그냥 빈혈이 심하셔서 그래요. 철분제 처방해 드릴 테니 열심히 드시면 원래 수치로 돌아오실 겁니다."

아 왜~~~~~ 왜 나는 정상이라 섭섭한 마음이 드냐고!

"그럼 제가 설사를 자주 하는 원인은 알 수 없는 거죠?"

"장이 깨끗하고 빈혈 말고 다른 문제도 없으신데, 빈혈이 심하신 분들이 설사를 자주 하시기도 하시니 일단 철분제 드셔보시고 다시 보시죠."

고뤠???

그 말은 나에게 곧 "설사는 빈혈 때문이다."로 번역이 되었다.

신체적으로 원인이 있었어! 신난다!

친구에게 이 기쁜 마음을 카톡으로 전달한다.

'나 배 아픈 거 빈혈이 심해서 그렇데~~ 철분제 먹으면 나아질 듯 ㅋㅋㅋ'


처방받은 철분제를 받고 아이들이 부탁한 것을 위해 약국에 들렀다.

“발열패치 좀 주세요~”

“해열패치 말씀하시는 거죠?”



하아..이게 다 빈혈 때문이야.

이전 07화 제7화 새벽 산행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