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징검다리의 간격이 점점 짧아져서 현재 유방암 9년 차를 무사히 통과했다. 이 정도면 나의 독특한 치료법은 거의 성공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2%가 부족했으니. ‘여행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글 쓰고 모임을 운영하는 일은 머리만 쓰고 몸을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의미했다. 책상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짐과 동시에 걷는 생활에서 멀어졌다. 해가 갈수록 야금야금 살이 붙었고 급기야 체중의 10%가 늘었다. 게다가 걷지 않는 생활 탓인지 나이 탓인지 전보다 살이 쉽게 쪘다. 장기여행을 나가서 많이 걸으면 살이 빠졌다가 돌아오면 다시 찌는 일이 반복되었다.
살이 찐다는 건 단순히 외모의 문제가 아니었다. 몸이 무겁고 움직임이 둔해지고 더욱 피로감을 느낀다. 호르몬성 유방암 환자 출신은 특히 살이 찌는 걸 경계해야 한다. 유방암의 원인이 되는 여성 호르몬을 억제해야 하는데 지방 세포에서도 여성 호르몬이 생성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멀쩡하게 잘 입던 옷을 못 입게 되는 상황은 적잖이 스트레스를 불러왔다. 불 위의 마른 오징어처럼 기분이 바싹 오그라들었다. 유튜버 밀라논나는 옷을 새로 사기 싫어서 체중을 유지한다고 하는데 백 퍼센트 공감한다. 그러나 이미 책상머리에 적응한 몸을 바지런히 움직이는 몸으로 돌리기란 쉽지 않았다. 운동해야 하는데, 체중을 돌려야 하는데..... 속으로만 되뇌었다.
나이 핑계를 대고 포기하려던 차에 덜컥 코로나가 들이닥쳤다. 사람을 만날 수 없고 강의를 할 수 없고 여행을 할 수 없는 세월이라니. 우울하고 막막했지만 이런 시기야말로 걷기엔 가장 좋은 때였다. 일도 없고 돈도 없고 가진 건 시간뿐이었다. 오직 시간만이 내 것일 때 최고의 선택은 운동이나 공부 중 하나. 현명한 사람이라면 둘 다 하겠지만. 나는 그냥 걷기로 했다. 왜냐고 물으신다면 그나마 만만해서라고 답해 드리겠다. 대단하게 결심하지 않아도 철저한 준비가 없어도 바로 시작할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나에게 가장 ‘익숙한’ 운동이니까.
2020년 3월, 나는 걸었다. 하루에 만 보씩. 유명한 둘레길을 찾아다니는 것도 좋겠지만, 나는 매일 우리 동네에서 걷고 싶었다. 멀어졌던 걷기를 다시 내 품 안으로 들여오고 싶었다. 단 일을 못 하는 대신으로 하는 걷기였기에 하루에 만 보는 꼭 채우기로 했다. 그날 치 걸음을 채우기 위해 밤 12시 땡 칠 때까지 최선을 다해 걸었다. 이전의 걷기가 생활이었다면 코로나 시대의 걷기는 일종의 의식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앞이 안 보이는 코로나 세상 2년째. 원하지 않았던 미래가 우리를 침범했다. 불안과 두려움이 불쑥불쑥 나타나 내 뺨을 후려치고 달아난다. 불안이 한 대 치면 연이어 두려움이 또 한 대, 양쪽 따귀를 골고루 맞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SF영화에나 등장하던 모습이 아닌가. 모든 사람이 얼굴을 가리고 사는 세상 말이다. 마음껏 여행하던 시절은 영영 가버린 걸까. 마흔 넘어 뒤늦게 여행작가라는 명함을 얻었는데 도무지 여행이란 놈의 앞날이 뿌옇기만 하다.
그럴 때면 걷는다. 그저 오늘치의 걸음을 걷는다. 걷는 동안만큼은 잡념이 옅어진다. 두 다리를 움직이면 근심이 멀어진다. 한결 가뿐해진 마음속에 근거 없는 또는 근거 있는 희망이 새순처럼 움튼다. 한층 맑아진 머릿속에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때로는 오직 걷는 행위만이 남는다. 나는 잠시나마 초원에서 수렵 채집을 하던 순수한 유목민으로 돌아간다.
코로나로 인해 일은 심하게 타격을 받았고 나는 자주 흔들렸다. 그러나 완전히 넘어지진 않았다. 갈대처럼 흔들리는 와중에 가끔 균형을 잡았다. 그러면서 새로운 기술을 익혔다. 내 힘으로 조절할 수 없는 것을 내려놓기. 스스로에 대한 과도한 기대에서 벗어나기. 너무 애쓰기보다 가볍게 즐기기. 돈보다 사람을 생각하기. 이젠 매일 걷지 않으면 마음도 몸도 근질근질해서 참을 수 없다. 정식으로 밖에서 걷든 야매로 집에서 걷든 매일 걷기는 자연스러운 루틴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