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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율 Aug 24. 2022

제주에선 인터넷 고치기가 이렇게 어려운가요?

더 이상의 시련은 아니 되옵니다!


어젯밤 행원리 집에 돌아왔다. 시골은 6시만 넘어도 밥 먹을 데(식당)가 없다. 버스가 서는 김녕에서 편의점 김밥 두 줄을 사 왔다. 하나는 불고기 김밥, 다른 하나는 매울 신자가 적혀 있는 돼지불고기 김밥. 안 매운 것만 먹을 것을. 부족해서 매운 것 반 줄을 더 먹은 게 탈이 났다. 먹을 때부터 입안이 홧홧하도록 맵더라니. 먹자마자 배가 살살 아프고 체하는 느낌이었다. 거실에서 한 시간을 걸어 소화를 시킨 뒤 잠을 잤다.



오늘 아침, 여전히 속이 좋지 않았다. 아랫배가 싸르르해서 여러 번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물 밖에 먹을 수가 없구나. 초정탄산수에 미네랄 솔트를 타서 마셨다. 나는 아픈 배를 움켜쥐고 청소기를 돌렸다. 일주일을 비운 터라 먼지가 많이 쌓였다. 빨래도 돌려 널었다. 대충 집을 치우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 남은 제주 생활을 열심히 기록하자고 마음먹었잖아. 정신을 차리고 밀린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두통까지 몰려왔다. 위아래가 동시 공격이군.        


10시에 KT 기사님이 오기로 되어 있었다. 과천 집에 가기 전 미리 인터넷 수리 요청을 해놓았다. KT 서비스센터를 세 번째(나!) 부르는 것이다. 망할 인터넷이 자꾸만 끊긴다. 어떤 날은 되고 어떤 날은 안 되고 난리 블루스. 두 번째 왔던 기사님이 인터넷이 갑자기 안 되면 세톱박스의 전원을 껐다가 다시 켜라고 했다. 최근엔 하루에 열 번씩 전원을 켜야 했다. 그나저나 왜 한 번에 고치지 못할까? 여러 번 오는 건 본인도 힘들 텐데.


이 집은 도대체 멀쩡한 물건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이사 온 날부터 모든 전자제품이 하나씩 고장이 난다. 지들끼리 약속이라도 했나? 보일러, 에어컨, 티브이, 제습기, 청소기, 가스누설경보기까지 정말 '가지가지'다. 과천에서 20여 년 사는 동안 수리한 것보다 제주살이 8개월 동안 수리한 게 더 많았다. 이젠 인터넷 차례. 남은 건 냉장고와 세탁기뿐인데 그것만큼은 무사히 버텨주길.


10시 반쯤 기사님이 오셨다. 이번이 세 번째 수리라고, 제발 더 이상 고장 나지 않게 해달라고 사정했다. 기사님은 세톱박스를 새 걸로 교체했다. 문제는 하필 기사님이 오셨을 땐 인터넷이 멀쩡하게 작동했다. 그래서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단다. 만약에 또 같은 증상이 생긴다면 다시 부르란다. 오 마이 갓. 또 끊길 가능성이 있단 말인가! 제주에선 인터넷 하나 고치는 게 이리도 어렵단 말인가!


"제주의 여름은 언제까지인가요? 9월 되면 좀 시원해지나요? 서울은 많이 시원해졌더라구요."

"10월까진 덥죠. 아 물론 한여름보단 덜하지만요, 여전히 더워요. 11월에도 가끔 덥다가 갑자기 확 추워져요."


일하는 기사님과 나눈 대화. 뭣이라고라??? 10월까지 덥다고! 예전에 여행 왔을 땐 어땠더라? 하긴 잠깐의 며칠 여행은 덥던 춥던 상관이 없었지. 그러거나 말거나 씩씩하게 나돌아 다녔으니까. 기사님은 돌아갔고 나는 기운이 빠졌다. 계속 덥다, 계속 덥다...... 라니.



배가 아픈데 용케 배가 고팠다. 나는 냉장고에 넣어둔 제주산 용과를 잘라먹었다. 심심하고 말랑하고 뒷맛이 달큰한, 자주색 속살도 이쁜. 내가 좋아하는 용과.  그러나 또 배가 찌르르 울렸다. 화장실로 직진, 쏟을 만큼 쏟은 것 같았다. 두통 역시 여전했다. 아아 오늘은 정말. 짜증이 난다. 저녁때 인터넷이 두 번 끊겼다. 내일 또 끊기면 네 번째로 서비스 센터를 불러야 한다. 도돌이표도 아닌 것이 왜 끝이 안 나냐고요오오오?!


문득 모든 게 지겨워졌다. 일 년 내내 고장 나는 이 집안의 물건들도, 제주의 긴 더위도, 혼자 하는 생활도. 가을에 이것저것 하려고 계획이 많았는데 죄다 귀찮아졌다. 다 때려치우고 연세를 승계할 사람 찾아서 집을 뺄까? 당장 과천으로 돌아갈까? 휴가를 마치고 오자마자 다시 가고 싶다니. 오늘 왜 이러니.     


글쓰기를 중단하고 침대에 누웠다. 에어컨을 틀고 눈을 감았다. 두통이 약간 가라앉는 것 같았다. 캄캄한 9시, 종일 요동치던 배 속이 진정되었다. 나는 냉동실에서 옥수수 식빵을 세 쪽 꺼내어 프라이팬에 구웠다. 따끈하고 바삭한 식빵이 눈물 나게 맛있다. 뭘 먹으니 조금 힘이 나는 듯.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오늘의 일기(이 글)를 썼다. 이 밤 자고 일어나면 내일은 기분이 나아지겠지?  

       



다음날 후기:


결국 네 번째로 기사님을 불렀다. 어제 두 번이나 끊긴 게 영 불안하더니만. 다음날도 역시 인터넷은 되지 않았다. 나는 막바로 기사님께 직통 전화를 했다. 전에 온 AS 방문 안내 문자에서 기사님 이름과 연락처, 사진 등이 쓰여 있었다. 마침 근처라며 10분 후에 오셨다.


기사님이 이렇게 저렇게 해도 여전히 먹통.


"인터넷 고치기가 이렇게 어렵나요? 지금 네 번째로 오신 거예요. 제발 다시 부르지 않게 잘 고쳐 주세요."

"원래 이 정도로 수리가 안 되진 않거든요. 중간에 뭔가 걸리는 게 있는 것 같은데......"



기사님의 마지막 처방은 티브이 세톱박스와 인터넷 모뎀을 따로 설치하는 것이었다. 선을 각기 두 개로 뺐으니 잘 될 거라고 한다. 믿을 수 있을까?


"만약에 또 안 되면 어쩌죠?"

"일단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요. 음, 또 문제가 생긴다면 또 AS 신청을 하셔야죠. 별 수 있나요?"


제발 제발 이것이 끝이길! 나는 진심으로 기도하는 심정이었다. 제주의 온갖 신들이시여, 더 이상의 시련은 아니 되옵니다. 아니 받겠사옵니다. 도와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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