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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율 Dec 22. 2022

살려고 그러는 거죠

새벽에 잠 깨는 이유

<2022. 12. 22>

"살려고 그러는 거죠. 안 그러면 죽을 것 같으니까요."

지난주에 이어 두 번째 듣는 말이다. 그때는 그런가? 했는데 오늘은 '정말 그렇구나!'하고 인정하게 되었다.

기 요가를 한지 3주째. 동네 친구가 소개를 해주어 나도 시작했다. 선생님이 마침 우리 동네에 사신다. 걸어서 10분이면 도착하니 이 아니 좋을 수가.

친구는 몇 년째 하는 중이고 나는 초짜 회원. 실은 문화센터 요가를 등록하려다 문득 기 요가가 떠올랐다. 오래전부터 알고는 있었는데 이번 겨울 유독 하고 싶어진 것이다.

처음엔 선생님이 팔과 다리, 목과 어깨를 꾹꾹 눌러 주신다. 마사지인가 착각하지 마시라. 절대 아닙니다요. 이건 살짝 고문에 가깝다. 두 눈이 질끈 감기고 진땀이 나면서 비명이 흘러나오니까.

"눈 뜨시고요, 눈 뜨세요. 흐흐흐"

내 비명에 나도 웃고 선생님도 웃는다. 아 진짜 아프다니까요. 

나는 어릴 때부터 평생 위장이 좋지 않아 소화불량이 심했다. 유방암 치료 이후 심각한 불면증을 달고 산다. 요즘엔  두통이 잦고 그외 자잘한 증상들이 따라다닌다.

몸 부위 부위를 누르면서 선생님은 여긴 위장 쪽, 저긴 비장 쪽 등등 알려주신다. 눈치챌 수 있듯 많이 아픈 부위가 많이 안 좋다는 뜻이다. 특히 글 쓰는 사람들은 머리에 열이 많아 두통이 흔하게 생기고, 무의식이 밤에도 쉬지 않고 깨어 있어 불면이 생긴단다.  

'유사 고문 시간' 후엔 일명 빨래 짜기(누워서 양 손등을 바닥에 대고 고개와 세운 무릎을 반대로 돌리는 동작)를 한다. 




오늘은 나무판을 밟고 서서 팔 돌리기와 스쾃을 했다. 특히 스쾃은 두세 번 만에 자세를 잡았다. (비록 나일론 회원이었지만) 이래 봬도 헬스장에서 PT를 받았던 경험이 있다. 아마 그래서 수월했나 보다.

선생님은 크게 기뻐하며 이렇게 금방 스쾃 자세가 되는 경우는 드물다고 했다. 몸은 오래전에 했던 것일지라도 다 기억을 한다며 예전에 PT를 받은 건 참 잘한 일이라네?

나는 스쾃을 잘한다고 칭찬을 듬뿍 받았다. 늙어도 젊어도 어려도 칭찬 앞에선 춤추는 고래가 되는 것이여. 크크. 심지어 '몸을 다루는 감각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세상에, 늘 몸으로 하는 일은 꽝이라고 단정 지었거늘.  

타고난 능력이 없다고 미리 실망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하는 기특한 생각마저 들었다. 뭐든 연습과 훈련을 반복하면 중간은 갈 수 있겠다 싶었다. 

전에 PT 받을 땐 너무 헐렁하게 한 탓에 체중도 못 줄이고 근육 양도 늘리지 못했다. 아무 소용이 없다고 치부했는데 이게 돌아돌아 나중에 도움이 될 줄이야.

나 같은 몸꽝이 오십 대 중반에 이르러 (몸짱은 아닐지언정) 감각이 있다니, 평생 처음 들어본 말이었다. 별것 아닌 말에 너무 흥분하는 것 아니냐고? 이보세요, 나에겐 상전벽해와 같은 상황이랍니다.

일희일비 전문인 내가 또 심하게 '일희'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놀라운 날이었다.

기 요가를 한 번 하고 나서 바로 소화가 잘 되는 게 느껴졌다. 설마, 겨우 한 번에 효과가 일을 리가. 그런데 설마가 맞았다.

그리고 점점 얼굴색이 밝아졌다. 첫 번째 주와 오늘 세 번째 주와는 확연히 차이가 났다. 신기했다.

한편 소화가 잘 되면 잠도 잘 자야 하는데 이상하게 계속 새벽 서너시에 깬다. 몇 주째 통 잠을 못 잤다. 그 얘길 했더니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바로 저거였다. 몸이 살려고 그러는 거라고.

자는 동안 다리 끝까지 혈액순환이 안 되어 (죽을 것 같으니까) 머리를 깨우는 거란다. 잠이 깨는 순간 몸이 움찔 놀라면서 전신에 피가 확 돈다고 한다.

"그러면 앞으로 잠이 깰 땐 '에고, 이놈의 까다로운 몸뚱어리야' 불평하지 말고 '니가 나를 살리려고 깨웠구나, 고맙다' 이래야겠네요."

"그렇죠, 그렇죠."

선생님이 매주 툭툭 던지는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묘하게 가슴을 때린다. 실로 내공이 장난 아닌 분이여. 

비명을 지르며 오가는 대화 속에서 뭔가 수행 비슷한 걸 하는 기분이 든다. 이 겨울 만나는 사람마다 울림을 주는 게 참으로 신비하다. 깜짝 선물처럼 올해 막바지에 숨은 복이 좀 있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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