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간 이사에 준하는 집 정리를 했다. 단순히 버리고 정리하고 재배치를 했을 뿐. 공간이 몇 평쯤 넓어진 것 같았다. 이 집에서 6년을 살았다. 벽이 두터워 방음과 난방이 잘 된다.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니 집 자체는 제대로 지은 듯하다. 단 하나, 평수가 작았다. 많지도 않은 세 식구가 살기에 너무나 좁고 불편했으니까. 그런데 드디어 집이 쾌적해졌다. 빼기의 효과였다.
어쩌면 인생에서 무언가를 더하는 것보다 빼는 게 더 중요할지도 모르겠다. 넘치는 것과 불필요한 것을 빼고 단순하고 상쾌하게 살기. 일명 '빼기의 생활'을 해보기로 했다. 몇 년 전 '빼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가 흐지부지된 후 재도전 하는 생활이다. 한 달 동안 한 가지를 빼 보자. 10월 첫 도전은 매일 아침 내려마시는 커피였다.
하필 커피를 끊어보기로 한 이유는 거창하지 않다. 우연히 인터넷 기사를 보았다. 기자는 커피를 3개월 동안 마시지 않았다. 처음엔 카페인 금단 현상으로 심한 두통이 생겼다. 두통이 올 때마다 나가서 달렸더니 일주일이 지나자 사라졌다. 그 후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자게 되었다. 소화도 잘 되었다. 커피와 곁들이는 빵, 쿠키 같은 간식과 자연스레 멀어졌고 덕분에 살이 빠졌다. 엄청난 효과에 만족한 나머지 앞으로도 커피를 완전히 끊기로 했단다.
나는 첫 도전이 크게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커피는 보통 하루에 한 잔, 가끔 두 잔을 마신다. 빈도보다 맛을 깐깐하게 따지는 편이다. 취향에 맞는 원두(주로 에티오피아 산)를 조금씩 사서 내려 마신다. 즉 핸드드립 파. 내가 내린 커피가 웬만한 카페의 아메리카노보다 훨씬 맛있다. 솜씨가 좋아서가 아니다. 핸드드립은 원두만 신선하다면 똥손이라도 괜찮은 맛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커피 홀릭이 아닌 나에게 기자처럼 극적인 변화를 기대할 순 없었다. 그래도 뭔가 긍정적인 효과가 있지 않을까? 밤에 잠이 잘 온다던가 소화가 전보다 잘 된다던가 하는. 약간의 기대를 안고 일단 남은 원두를 9월 말까지 모두 사용했다. 10월 1일, 원두 제로 상태. 지금부터 시작이다!
아이고, 이틀 만에 위기가 왔다. 아들이 알래스카로 떠나는 날 10월 2일. 인천 공항으로 가는 도중 시간이 남았다. 휴게소 카페에 들른 것이다. 나는 습관적으로 아메리카노를 골랐다. 우웩, 똥맛이다. 반도 못 마셨다. 휴게소 커피치고 맛난 커피를 본 적이 없다. 내 드립 커피가 간절히 떠올랐다.
이후 커피를 마시지 않는 건 생각보다 쉬웠다. 의외로 커피가 당기지 않았다. 어쩌다 생각이 나도 이미 집엔 원두가 한 알도 없었다. 욕구는 곧 사그라들었다. 그래도 아침에 일어나면 뭔가를 마시는 습관이 사라지진 않았다. 그동안 눈길도 안 주었던 차를 꺼냈다. 각종 허브 차, 녹차, 홍차, 보이차까지. 우리 집에 차가 이렇게 많았다니. 마침 날도 선선한 가을 아닌가. 따끈한 차가 어울렸다.
처음엔 아들이 놓고 간 티백 허브 차를 종류 별로 마셨다. 다음은 홍차를 우렸다. 그때부터 찬장에서 잠자던 다기가 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 홍차를 마시다가 문득 밀크티가 생각났다. 진한 홍차에 우유와 설탕만 넣으면 밀크티 아닌가벼. 달달한 밀크티가 질릴 때쯤 보이차를 꺼냈다. 누군가에게 선물 받곤 거의 마시지 않았던 것이다. 보이차가 그렇게 몸에 좋다던데 먹어보자고. 커피 외에 다양한 차를 즐기게 되었다.
일이 있어 돌아다니다가 좀 쉬려고 카페에 갔을 때, 유독 커피의 유혹이 강했다. 휴식과 커피는 서로 끌어당기는 자력이 있다. 머리에 새겨진 이미지도 몸에 익숙한 입맛도 커피가 딱이지 않은가. 물론 커피 외에 대안은 많았다. 과일차와 허브차가 있으니까요. 나는 주로 자몽차, 레몬차 등을 주문했다.
10월 한 달 동안 커피를 총 세 번 마셨다. 아들이 떠나던 날, 남편과 브런치를 먹던 날, 혼자서 카페에 갔던 날. 오랜만에 먹는 것치고 만족도가 상당히 떨어졌다. 전에는 간혹 맘에 차지 않는 커피라도 개의치 않고 마셨다. 집에서 맛난 커피를 매일 만들어 먹으니까 아쉬움이 없었던 것 같다. 이젠 오히려 입맛이 더 까다로워졌다. 맛없는 커피라면 차라리 먹지 않으련다.
우선 내가 카페인 중독이 아니라는 걸 확인했다. 커피를 마시지 않고 생활하는데 문제가 없었다. 그 외 수면의 질이나 소화력이 좋아지진 않았다. 살이 빠지지도 않았다. 다만 평소 있던 두통이 줄어들었다. 즉 불편함이 없었던 만큼 긍정적인 변화도 거의 없었다는 이야기. 애매한 결과로다.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두통이 감소한 게 과연 커피 끊기의 결과일까, 아니면 우연일까? 그것이 알고 싶다. 계획, 원두를 최소 단위인 200g만 산다. 그걸로 소율 표 핸드 드립 커피를 마신다. 두통이 재발하면 커피가 원인일 테고 아니라면 커피와 상관없다는 증거겠지. 일종의 생체 실험인 셈이다.
별도로 11월의 빼기 생활은 계속된다. 두 번째 빼기는 '빵, 과자, 라면' 먹지 않기. (밀과 소금으로만 만든 비건 빵은 제외) 10월보다 난도가 높다. 지난달이 쉬웠으니 조금 어려운 일에 도전! 어떤 변화가 있을지 기대가 된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