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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는여자 Jul 15. 2024

몰랐던 걸 알았을 때

"불안"과 "정"

"아 아파~대체 너네들은 왜 이렇게 혈관을 못 찾는 거야. 수간호사  오라고 해. 난 혈관 찾기 힘들어서 잘하는 간호사가 해야 한다 말이야"


잔뜩 찌푸린 얼굴로 시퍼렇게 멍든 왼팔을 오른손으로 꼭 누르고 앞에 있는  언니(?)투덜 되기 시작한다.


"여기 있는 사람들 팔 좀 봐  전부 퍼렇게 멍이 안 든 사람이 없잖아. 우리가 얘네 실습하는데 마루타 하는 거라니까"

투덜이 언니가 큰 목소리로 다 들리게 말한다.


그러고 보니, 병실 모든 사람들의 팔은 주사자국으로 한두 군데 이상 다 멍이 들어있었다.  그 멍든 퇴원할 때즈음, 수술 후 통증이 희미해지는 것 마냥 함께 희미해졌다.



 입원첫날,

수술용 바늘을 꽂으려고 남자 간호사가 이마에 땀이 맺힌 모습으로 긴장하며 들어왔다.

'간호사가 많이 긴장했나 보네, 바늘 꼽는 게 처음인가?'


"환자분 지금부터 수액이 들어가요. 수액을 맞기 위한 바늘을 꽂을 거예요."

 

 그러더니, 내 왼팔을 손바닥으로 탁탁탁 치면서 바늘 꼽을 자리를 찾는다.  그리고는 "따끔할 거예요."라고 말한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번, 두 번, 세 번  쑥~족한 바늘이 찔려 들어가는  감각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수술용 대바늘은 야속하게 내 여린 팔뚝에 퍼런 멍자국만 남기고 , 다시 나와 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앗, 아파." 나도 모르게 소리가 나온다.


그렇게 간호사는 바늘이 지나간 내 팔을 꼭 눌러 솜을 대고 지압이 되게 의료용 테이프를 붙어주고 나간다.


나중에 테이프를 떼니, 팔은  그날의 혈관 찾기 기록을 멍 자국으로 남겨 놓았다. 그리고 그 자국은 희미해지며, 가장 아픈 기억도 동시에 희미해졌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다른 간호사가 들어온다. 이번에도 남자 간호사이다.


'이 병원은 정형외과라서 간호사가 전부 남자인가?.'


"여기, 수액 바늘 꽂으러 왔었나요?"

"네, 방금 간호사 한분이 다녀가셨는데요?"

그 말이 나자, 간호사는 나갔다 다시 들어온다.

그리고는 잠깐 팔을 보자고 한다


"아까 바늘 꽂기 실패해서 너무 아파요. 여기 봐요." 나는 야속한 대바늘을 두 번 만나기는 싫어서 미리 말한다.


"아, 네. 보기만 할 거예요."

혈관을 찾기 위해 계속 팔을 탁탁탁 친다. 그리고 핫팩을 가지고 들어와 대고 있으라고 한다.  


 그리고  잠시 후, 등장한 여간호사분이 그날밤, 나의 혈관 찾기 프로젝트를 멋지게 완성해 주고 가셨다. 

 

  이 날, 혈관 찾기의 대상이 된 나를  마루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과정을  절차라고 생각했다.  같은 행위에 '마루타'라는 단어가 언급되니,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수술을 앞두고 불안한 마음을 스스로 달래고 있었는데, 이 단어는 무의식의 불안을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게 했다.

 

 훗날 시간이 지나, 수술의 상처가 없어질 때즈음, 이 시간을 회상하며 그런 단어를 썼다면, 기분은 달랐을 것이다.


 의도된 건지 아닌지 큰 목소리로 불안을 알리는 그 언니 덕분에 우리 병실 환자 모두는 불안을 나눴다. 좋은 의미로는 정보를 공유받았다. 


 나중에 이야기를 나눠보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많은 수술경험이 축척되어, 요구사항이 많았던 것이었다. 거기에 큰 목소리가 더해져 그 요구사항과 불만을 우리 모두가 공유받았다. 더러 불안은 다른 환자와의 싸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어떤 환자는 초보 간호사들의 실습대상이 되어도 좋다고 한다. 그들에게 그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니,  팔을 내어주겠다고,  그 이유는 너그러워서일까? 단순히 절차라고 생각해서일까? 수술 경험이 적어서일까? 그렇지 않은 사람은 경험이 많아서 더 힘든 것이었을까?


 이 작은 현상에서도, 반응이 이렇게 다른데 큰  인생사 많은 일들 앞에서 사람 마음은 다 같을 수 없다. 그저 현명하게 나의 기준을 정하고, 무수한 반응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나이 듦이 주는 선물 아닐까? 더 연륜이 쌓이면, 어떤 반응에도 휘둘리지 않겠지?

 6인실 병실에서 나는 그리고 누군가는  어느 환자의 불안을 강제적으로 나누기도 하고, 누군가의 싸움의 소리와 불편함도 나누었다.


  그뿐 아니라, 요즘은 사라져 가는 사람의 정도 나누었다.

그래서일까? 퇴원한 지금도 그 병실이 생각난다.


 처음, 이 병실에 왔을 때 불만과 싸움의 소리가  싫어 2인실 병실을 옮기려고 했던 것은 안 비밀!!!


 그리고 수술이 끝나고, 내 팔을 시퍼렇게 만들었던 간호사를 만났다. 멍자국이 있는 팔뚝을 보더니,  간호사는 멋쩍게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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