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재활은 끝났다.
6주간은 절대 무릎에 중력을 실을 수 없으니, 그 기간 동안 나의 오른쪽 발바닥은 땅과 만나지 못했다.
덕분에 내 오른 다리는 수술한 무릎을 전면에 내세워 귀한 대접을 받았다. 나와 가족들은 마치 걷지 못하는 돌도 안된 여린 아기를 안고 다니는 부모의 시선으로 수술한 다리를 보았다.
안겨있는 여린 아기가 다치지는 않을까 싶어, 등을 둥그렇게 말아 생긴 가슴의 틈에 아기를 안전하게 품고, 두 팔로 아기를 감싸는 엄마의 마음. 그리고 안겨있는 아기와 눈을 맞추며 미소 짓는 엄마의 시선. 바로 그 마음과 시선을 수술한 다리에 전한다.
그동안 무심하리 만치 의식하지 않고 무관심하게 대했던 세월에 사과라도 하고 싶은 마음일까? 다시 건강한 다리를 만날 기회를 얻고 싶음일까?
그렇게 6주간 따뜻한 시선을 받은 소중한 몸의 일부는 그 소중함을 등에 업고 공중부양기간을 끝낸다. 그리고 그 기간을 인내한 대가로 진급을 하듯 한 계급 올라섰다. 끝은 곧 시작이 아니던가? 이제 걸음마를 시작하는 돌쟁이 아기가 된다. 다른 눈높이로 새롭게 보이는 세상을 눈에 담으며 설렌다.
기어 다니며 그 눈높이로 세상을 보던 돌쟁이 아기는 천천히 일어나, 반듯하게 서서 세상을 보며 다른 눈높이로 맞이하는 세상이 마냥 새롭다. 부족하고 미흡하지만 절뚝거리며 온 세상을 누빌 수 있을 것 같은 벅찬 기분만으로도 기쁘게 하루를 다 채울 수 있다.
퇴근하고, 내가 걷는 모습을 본 남편도 오랜만에 환하게 웃었다.
" 걷는 모습을 보니, 정말 기분이 좋네."
그날, 나는 돌쟁이 아기가 첫걸음을 떼는 기분으로 그걸 보고 기뻐하는 가족들로 행복했다.
하지만 이 행복과 설렘 뒤에는 커다란 벽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