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여섯, 새로운 삶
일단, 콜라를 부었어도 지금까지 잘 살아서 내가 이 글을 쓸 수 있게 해 준, 나의 삼성 노트북에게 감사를 표한다. 하루쯤은 실컷 글을 써보는 게 소원이었지만, 시험이 가로막고 있어서 그렇게 하지 못했었다. 이제 2차 시험 결과 발표를 기다리면서 갑자기 너무 많은 시간이 주어졌고, 근 일주일은 공부를 한 것도, 그렇다고 실컷 논 것도 아닌 ‘무중력’상태로 지냈다. 그렇게 이상한 일주일을 보내고, 결과가 어떻게 되든 나는 다시 내 삶을 씩씩하게 살아갈 마음을 먹고 나니, 다시 발이 땅에 닿았다.
서른 여섯, 공부를 시작하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하지만, 막상 발을 담근 후에 공부는 전혀 힘들지 않았다. 언제 이렇게 일년 넘는 시간을 나에게 공부만 할 수 있도록 허락할 수 있을까하는 감사한 마음으로 보냈다. 그렇다고 하루 종일 공부만 했던 것은 아니다.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은 정해져 있다는 걸 너무 잘 알아서일까, 회사를 다니느라(남을 위해 일하느라) 못 잤던 늦잠도 실컷, 원없이 자봤다. 공부를 하면서 힘들었던 점은 오히려 외부의 방해였던 것 같다. 매일 매일 조금씩 느는 독일어가 재밌고, 그 시간을 즐기면서 공부할 수 있어서 참 감사한 시간이었다.
공부에 더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풍동으로 이사오면서다. 딱 반으로 줄어든 집크기 때문에 내가 갖고 있던 짐도(추억도) 최소한으로 줄여서 왔다. 여차하면 독일로 뜰 생각으로 최대한 가볍게 왔다. 하지만, 솔직히 풍동에 와서 한국이 다시 좋아졌다. 우리집이 풍동으로 이사온 건 5월이다. 이사오던 날, 빨간색 장미가 참 많은 동네를 보고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 고급스러운 시골 마을 같았다. 그리고 나무에 스치듯 바람도 많이 불었는데, 나는 그 바람이 좋았다. 그 바람이 다시 나를 어딘가로 데려다줄 것만 같은 포근함에 처음 사는 곳인데도 고향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집은 지금까지 살았던 어떤 집보다 작았다. 내가 가져본 어떤 방보다도 작은 방이 내 방이 되었다. 하지만, 내가 살았던 어떤 방보다 더 예쁘고 편안했다. 커다란 책상은 포기할 수 없었고, 흔들의자 등받이같이 생긴 나무 의자를 새로 샀다. 매트리스 두 개를 깔아 침대를 만들고, 한 쪽 벽에는 프라하에서 사 온 그림을 걸었다. 자주 쓰는 잡동사니를 둘 사다리 책장도 딱 맞게 들어갔다. 책상 앞 흰 벽에는 내가 좋아하는 독일 풍경, 세계지도, 피카소의 그림을 붙였다. 오히려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고, 밤에 작은 조명을 켜면 책 읽기에도 충분히 밝았다.
집이 답답한 적은 거의 없었지만, 마음이 답답해서 나가고 싶을 때는 근처 수영장에 갔다.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라서 집에서 복잡했던 생각을 한 번 정리할 수 있었고, 물 속에 들어가서는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고, 다시 집에 오는 길에는 기분이 좋아져서 돌아왔다. 여유가 되면 집 바로 앞에 있는 성당에서 짧게 기도를 하고 오기도 했다. 유일한 외출인 수영장 가는 길, 버스 안에서 바라보는 풍동은 독일의 가을과 다를바 없었다. 나무가 많았고, 하늘이 잘 보였다. 가을에 들어서면서 온갖 풍성한 단풍을 볼 수 있었다. 아주 노랗고, 아주 빨간 나뭇잎들이 차창으로 스쳐지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서울이면 이런 풍경을 못 봤을 것 같단 생각에 이 시기에 풍동에 살고 있는 게 감사했다. 가을을 온전히 누렸다.
할머니, 할아버지 근처로 이사오면서 가족, 친척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쯤은 적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 자기 이름으로 된 챕터 하나씩이 있다면 재미있지 않을까. 미우나 고우나 가족이고, 나에게는 모두 의미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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