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비야의 랜드마크, 세비야 대성당(Sevilla Cathedral). 유럽에서 세 번째로 큰 성당이며 콜럼버스의 묘를 만날 수 있는 곳. 성당 내부에 들어서면 웅장하고 아름다운 자태에 넋을 놓게 된다. 모든 것이 다 멋지지만, 대성당과 연결되어 있는 히랄다 탑(Torre de la Giralda)을 가장 좋아한다.
비스듬한 오르막길을 34번, 빙 둘러 올라가면 탑 꼭대기에 도착한다. _히랄다 탑은 말을 타고 올라갈 수 있도록 계단이 아닌 경사로 되어 있다_ 헐떡이는 숨을 고르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바라보는 도시는 분주함을 잊은 듯 천천히 흘러간다.
탑 정상에서 바라보는 전경도 좋지만 밖에서 바라본 히랄다 탑 자체의 모습을 더 아낀다. 대성당 자리에는 먼저 이슬람 사원이 있었는데 16세기 기독교가 다시 들어오면서 사원을 부수고 지금의 대성당 지었다. 그러나 이슬람 사원의 첨탑은 아름다워 없애지 않고 기독교식 종루를 덧붙여 지금의 히랄다 탑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현재 스페인에서 가장 이슬람적인 건축물로 꼽힌다.
집에서 대성당으로 가는 길. 구시가지 중심으로 나가는 방법은 시청에서 트램길로 이어지는 큰길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간편하고 대표적이다. 숙박하는 여행자에게도 이 루트를 알려준다. 실은 집에서 산타크루즈 지구 골목길을 빠져나가면 좀 더 빠르고 시원하게_골목길이 좁아 항상 그늘이 있기 때문에_이동할 수 있지만 미로처럼 얽혀 있어 길을 잃기 쉽기 때문에 먼저 물어보지 않는 한 굳이 알려주지 않았다.
나도 처음에는 길을 잃었다. 복잡함을 알고 있어 길을 헤매려고 들어갔다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발 닿는 대로 골목을 헤집고 다니면서 길을 익혔다. 길을 잃을수록, 낯선 길을 만날수록 세비야와 맨 살이 닿는 느낌이었다.
골목을 알고 있다 방심한 순간 위기가 찾아왔다. 그날은 골목에 숨겨놓은 보석 같은 가게들을 탐닉하는데 몰두하다, 아뿔싸 길을 잃은 것이다. 어찌 됐든 길을 이어져 있고 가다 보면 길은 나오겠지만 그 날은 시간의 여유가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빠르게 길을 찾아야만 했다.
구글 맵도 헤매는 경우가 많아 지도에서 히랄다 탑 쪽으로 방향만 잡고 가다가 갈림길에서 망설이는 찰나, 한쪽 골목 끝에 히랄다 탑의 옆 태가 슬쩍 보였다. 어찌나 반가운지. 그렇게 골목 틈으로 보고, 그 틈이 막히면 고개를 들어 탑 꼭대기를 찾으며_ 세비야 구시가지는 히랄다 탑보다 더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없도록(메트로폴 파라솔 제외) 규정되어 있어 웬만한 곳에서는 히랄다 탑을 볼 수 있다_ 미로 같은 골목을 벗어났다. 마치 북극청처럼 히랄다 탑을 쫓으며 걸었다.
그일 이후로 어디를 가든 습관적으로 히랄다 탑을 찾게 되었다. 메트로폴 파라솔(전망대)에 오를 때도, 엘 꼬르떼 잉글레스 루프 탑에서 맥주를 마실 때도, 하물며 우리 집 옥상에서 빨래를 널 때조차. 도시 어디에 있어도 보이는 히랄다 탑은 왠지 모를 안도감을 주었다.
안녕. 오늘은 기분이 어때. 어제 비가 와서 그런지 조금 힘들어 보이네. 머리 끝에 걸린 구름이 너무 예쁘다. 축제 기간이라 예쁜 옷을 입었구나.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언제나 그 자리에서 눈 맞추는 히랄다 탑을 향한 혼잣말이 늘어갔다.
세비야에서 시간들은 많은 여행자와 함께 했지만 결국 혼자였다. 모든 순간이 외롭진 않았지만 종종 덮쳐오는 외로움은 온전히 혼자 감당해야 했다. 괴로운 일 보다 감사하고 즐거운 일이 더 많았지만 마음에 생채기가 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어쩌면 혼잣말로 건넸던 인사는 스스로에게 묻는 안부였을지도. 괜찮다고 다독이는 위로였을 지도 모르겠다. 조금씩 지쳐갈 무렵, 마음의 길을 잃지 않기 위한 북극성이 필요했고 히랄다 탑이 그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