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가면,

그저 내가 바라보고 싶다.

by 우주사슴

현대에는 수많은 여행 콘텐츠가 쏟아진다. 유튜브를 열면 세계 곳곳의 풍경이 4K 화질로 펼쳐지고, 인스타그램에는 완벽한 구도의 사진들이 범람한다. 하지만 그것은 편집자의 시선과 선택으로 만들어진 산물이다. 촬영 각도, 조명, 음악, 편집의 리듬까지 모두 누군가의 해석이 개입된 결과물이다. 그들이 아름답다고 판단한 순간, 그들이 의미 있다고 선택한 장면만이 화면에 남는다. 실제와 다를 수밖에 없다.


내 눈으로 보는 풍경과 영상에서 보는 모습에는 갭이 존재한다. 영상에서는 멋지게 보였지만, 실제로 가면 기대만큼이 아닐 수 있다. 드론으로 촬영한 해안 절벽은 장엄해 보였지만, 막상 도착하면 관광객들로 북적이고 상업시설이 즐비할 수 있다. 황금빛 석양은 일 년에 며칠, 특정 시간대에만 그렇게 빛날 수 있다. 반대로 여행 중 우연히 마주하는 의외의 풍광이 더 큰 감동을 줄 때가 있다. 계획에 없던 골목길, 우연히 들어선 작은 광장, 예상치 못한 순간의 빛. 이런 것들은 어떤 영상도 미리 보여줄 수 없다. 영상이 만든 기대는 오히려 이런 순간들을 평가절하하게 만든다.


미리 영상을 보는 것은 일종의 스포일러다. 영화를 보기 전에 결말을 듣는 것처럼, 감상자의 해석과 순간의 감동을 미리 빼앗는 행위다. 여행지의 풍광은 책의 클라이맥스와 같다. 그 장면에 도달하기까지의 여정, 그곳에 서기까지의 기대와 긴장, 그리고 마침내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의 전율. 이 모든 것이 하나로 어우러져 감동이 된다. 영상을 미리 보는 순간, 이 서사는 무너진다. "아, 영상에서 본 그곳이네"라는 생각과 함께 비교가 시작되고, 순수한 경험은 평가로 바뀐다.


실제 풍광은 그날의 날씨, 빛, 소리, 내 상태 등 모든 조건과 맞물려 기억된다. 영상으로 본 것과는 결코 동일할 수 없다. 같은 장소라도 아침 안개 속에서 보는 것과 한낮의 강렬한 햇살 아래서 보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경험이다. 바람의 온도, 공기의 습도,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 그 순간 내가 느낀 감정의 결까지 모두 그 풍경의 일부가 된다. 영상은 시각적 정보만 전달할 뿐, 이 층위를 담을 수 없다.


미디어나 트렌드에 휩쓸려 여행하고 싶지 않다. "꼭 가봐야 할 여행지 10선", "인생샷 명소"라는 수식어들은 선택을 제한한다. 모두가 같은 장소에서 같은 각도로 사진을 찍고, 같은 감상을 공유한다. 그것이 진짜 내 여행일까.


꼭 가야 하는 명소라면, 내 눈으로 처음 맞이하며 경험하고 싶다. 타인의 추천이 아니라 내 호기심으로, 타인의 감동이 아니라 내 감각으로 그곳을 이해하고 싶다. 그래야 그것이 온전히 내 여행이 된다.


여행의 핵심은 보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고 느끼는 것이다. 영상은 정보를 제공할 뿐, 내 감정과 기억을 대신할 수 없다. 4K로 촬영된 10분짜리 영상보다, 그곳에서 보낸 10분이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화면 속 풍경은 아름답지만 거리가 있다. 하지만 내가 직접 마주한 풍경은 나의 일부가 된다.


왜 기록보다 경험을 택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내가 지나온 여행의 궤적을 되짚어봐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것들 "사진이 담을 수 없는 것, 영상이 전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영상과 사진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그것은 촬영자의 선택, 편집자의 의도, 기술적 제약이 뒤섞인 산물이다. 16:9 프레임 안에 담긴 풍경은 이미 누군가의 시선으로 재해석된 것이며, 색 보정과 편집을 거친 영상은 실제와는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화면으로 보는 피라미드와 기자에서 올려다보는 피라미드는 완전히 다르다. 화면은 삼각뿔의 이미지를 전달하지만, 현장은 그 규모가 주는 압도감, 주변 사람들의 웅성거림, 뜨거운 태양과 바람, 그리고 그 순간 내가 느낀 설렘까지 모두 포함한다.


문제인 것은 기록에 몰두하는 순간 경험 자체가 부차적이 되는 주객전도 현상이다. 최적의 앵글을 찾고, 노출을 조정하고, 여러 장을 찍어 확인하는 동안, 정작 그 풍경을 온전히 마주할 시간은 사라진다. 기록을 위한 여행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실제로 마주하는 풍경은 시각 정보 이상이다. 그것은 모든 감각이 동시에 작동하는 총체적 경험이다.


히말라야의 설산을 처음 마주했을 때를 떠올린다. 사진은 눈부신 설원과 푸른 하늘의 대비를 보여줄 수 있다. 하지만 그 고도에서 느껴지는 공기의 차가움과 맑음, 발밑의 잔디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 태양빛이 눈에 반사되어 만들어내는 수천 개의 반짝임. 그리고 무엇보다 압도되는 웅장함. 이 모든 것이 결합되어 만들어낸 감동은 어떤 렌즈로도 담을 수 없다. 기억은 이러한 감각의 총합으로 저장된다. 나중에 그 순간을 떠올릴 때, 나는 단순히 이미지를 회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의 온도, 냄새, 감정, 생각까지 함께 불러낸다. 이것이 사진 한 장이 제공할 수 없는 기억의 층위다.


십수 년 전, 나는 열정적인 사진 애호가였다. DSLR과 SLR 2바디에 여러 렌즈를 담은 배낭을 메고 여행지를 누볐다. 표준 줌, 망원, 광각 등 상황에 맞는 렌즈를 선택하고, 빛을 읽고, 구도를 잡는 데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다. SLR로 찍은 사진을 고르고, 보정하고, 누군가에게 선보이는 일련의 과정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작업 도중 바라보는 풍광은 실제로는 아름다웠지만, 이미 작업과 평가에 몰두한 상태라 감정은 무뎌진 채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찍힌 사진은 훌륭했을지 몰라도, 내가 그 순간 풍경을 진정으로 느낀 기억은 희미해졌다. 나는 경험을 기록하려 했지만, 실제로는 기록하는 행위 자체를 경험한 것이었다. 풍경을 마주한 것이 아니라, 풍경을 프레임에 담는 기술적 과정을 수행한 것이다. 이는 전문가에게는 직업적 의미가 있을 수 있지만, 여행자로서의 나에게는 본질적 경험의 상실이었다.


이제 내 여행 가방에는 무거운 카메라 장비가 없다. 휴대폰이면 충분하다. 물론 여전히 사진을 찍긴 한다. 하지만 목적이 다르다. 사진은 더 이상 그 풍경을 '담는' 도구가 아니다. 대신 '내가 그때 무엇을 바라봤는지'를 기록하는 북마크이자, 그때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트리거 역할을 한다. 중요한 것은 순서다. 먼저 충분히 바라본다. 서 있고, 걷고, 앉아서 그 공간을 호흡한다. 그 장소의 리듬을 느끼고, 내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변화를 관찰한다. 그리고 나서, 마치 일기에 한 줄을 적듯, 간단히 셔터를 누른다. 이렇게 찍은 사진은 완벽하지 않다. 구도가 흐트러지기도 하고, 노출이 맞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나중에 그 사진을 볼 때, 나는 정확히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 사진 속 이미지가 아니라, 그때 내가 실제로 경험한 그 순간으로.


물론 이것이 유일한 정답이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사진이나 영상을 통해 순간을 기록하고, 그것을 통해 기억을 되살리며, 다른 이들과 경험을 공유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나는 단지 나에게 맞는 방식을 선택했을 뿐이다. 기록보다는 "다시 올 것을 기약하며 경험을 온전히 마주"하는 것. 그 순간을 최대한 깊이, 완전하게 느끼는 것.


트렌드나 소셜 미디어의 영향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나만의 여행이 시작된다. "인스타그램에서 본 그 장소"가 아니라, 내가 직접 발견하고 감동받은 장소. "유명 유튜버가 추천한 뷰포인트"가 아니라, 우연히 걷다가 마주친 골목의 풍경. 가장 강렬했던 순간들은 대개 계획에 없던 것들이었다. 잘못 든 길에서 마주친 일몰, 비가 와서 어쩔 수 없이 들어간 카페의 창밖 풍경, 지도에도 없던 작은 전망대에서 본 도시의 야경. 이런 순간들은 미리 검색할 수도, 누군가의 추천으로 계획할 수도 없다. 오직 그 순간, 그 장소에서 열린 마음으로 있을 때만 포착된다. 이렇게 쌓인 경험들은 온전히 나만의 것이다. 누군가의 렌즈를 통해 걸러지지 않은, 편집되지 않은, 가공되지 않은 순수한 감각과 감정의 기록. 그것이 내 안에 축적되면서 나만의 여행 서사가 만들어진다.


사진과 영상 없이, 혹은 최소한의 기록만으로 여행하는 것이 주는 가치는 명확하다. 직접 경험의 온전함, 감각의 총체성, 감동의 순수성, 그리고 기억의 깊이. 카메라 렌즈 대신 내 눈으로 바라볼 때, 나는 비로소 관찰자가 아닌 참여자가 된다. 풍경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부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경험은 어떤 해상도의 사진보다, 어떤 프레임의 영상보다 더 생생하게 내 안에 남는다.


적어도 한 번쯤, 카메라를 내려놓고 그저 바라보는 여행을 시도해보길 권한다. 스크린 너머가 아닌 현실에서, 픽셀이 아닌 실재로, 저장된 파일이 아닌 살아있는 기억으로 풍경을 마주하는 경험. 그것이야말로 여행이 줄 수 있는 가장 본질적인 선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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