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감정은 메마른 것인가?

기쁨과 슬픔, 2025년 10월 25일

by 우주사슴

어제 하루, 세 가지의 일이 한꺼번에 일어났다. 지인의 결혼식, 아내의 공인중개사 합격, 그리고 처형의 반려견 부고.


각각에 대해 인간이라면 자연스럽게 강렬한 감정의 진폭을 만들어야 하는 사건들이었지만, 내 안에서는 그 반응이 예상보다 차분하고 통제된 방식으로 흐르고 있었다. 문득 내가 이상한 사람인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첫 번째, 결혼식


이미 결혼 소식을 알고 있었고, 그날 실제 결혼식이 열리는 날이다. 아내의 중요한 시험일정과 겹쳤고, 지방에서 행해지는 관계로 직접 가지는 못했다. 주변 사람들은 설렘과 축하의 말로 기쁨과 감동을 표현했겠지만, 나는 마음속에서 결혼이라는 의례가 가져올 삶의 변화와 책임, 그리고 조율의 연속을 먼저 떠올렸다.


결혼이란 단순히 축하받는 시작이 아니라, 두 사람이 서로의 삶을 맞추고 조정하며 나아가야 하는 복잡한 과정이다. 나는 그 현실을 너무도 명확히 알고 있었기에, 말로 전하는 “축하한다”라는 말속에는 진심의 열정보다는 사회적 관성에 가까운 축하인사였다. 마음속 진동이 미약했다고 해서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현실의 무게와 예측된 미래를 먼저 계산치가 먼저 떠올랐을 뿐이다.

두 번째, 아내의 공인중개사 시험


시험 당일, 나는 결과를 알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시험 준비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보았기에, 결과는 거의 확정된 방정식처럼 느껴졌다. 체계적인 공부 계획과 그에 따른 수행을 1년 가까이 지켜보면서, 한치도 흐트러짐이 없는 과정이었기에, 당연히 낙방은 상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과정이 완성되어 갈수록 경외심이 생겨났다. 역시 자극을 받아 내 시간이 그에 못지 않게 알차게 보내는 가에 대해 지속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시험 당일 저녁 가채점 결과 안정적인 합격점임을 확인했다. 그 일련의 과정에서 당연의 결과를 확인했고, 합격은 그것에 대한 응당한 보상이며, 그 과정을 수행한 아내 자체에 대한 존경심을 확인했을 뿐 합격의 일반적인 기쁨은 없었던 것 같다.


세 번째, 처형의 반려견의 부고


합격 소식을 알리며 전해 듣게 된 것은, 반려견의 죽음 소식이었다. 10년 이상 넘게 함께해 온 존재였기에 당연히 슬픔을 느껴야 하는 순간이었지만, 내 감정은 폭발적이지 않았다. "몽"(반려견의 이름)이는 이미 평균 수명을 훌쩍 넘겼고, 언젠가 이별이 올 것이라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이번 추석에도 보았을 때 상태가 온전하지 않음을 직감하였고, 이는 수년동안 매번 느꼈던 것이다. 죽음 자체가 놀라움이 아닌 생의 자연스러운 순환으로 다가왔다. 슬픔의 강도가 약했다고 해서 감정이 결핍된 것은 아니다. 생명과 시간의 연속성과 그 안에서 느낄 수 있는 미묘한 정서를 오랜 시간 인식했기에 가능한 차분함이지 않았을까?


이 세 사건은 모두 하루 안에 일어났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다. 내 감정은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했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감정이 메말랐나, 아니면 감정을 경험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른가.


나는 감정을 억압하지 않는다. 단지 사건 앞에서 이해와 분석이 먼저 작동하고, 감정은 그 뒤를 따른다. 감정이 늦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논리적 판단과 인식이라는 ‘필터’를 거쳐 나타나는 것이다.


이 구조가 내 감정의 특징인 듯하며, 내게는 자연스러운 방식이다.

그러나 예술과 마주할 때 상황은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음악을 비롯해 문학, 영화 등 예술 작품에서 내 예상이 깨지거나 새로운 관점을 접할 때, 감정은 확실히 새롭게 살아 움직인다. 여기서 중요한 차이는 사건과 달리 예술은 현실적 결과를 동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결혼이나 시험, 반려견의 죽음과 달리, 예술 작품은 행동이나 선택의 책임, 사회적 맥락, 시간적 결과와 무관한 것이다. 이 때문에 내 분석적 사고가 작동하지 않고, 감정을 순수하게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


예상과 다른 전개, 새롭게 발견되는 해석, 관습적인 사고를 넘어서는 시각은 내 안에 경외심과 감탄을 일으킨다. 특히 음악은 그 강도가 두드러진다. 곡의 예상치 못한 전개, 새로운 리듬, 새롭거나 음색의 절묘한 변화와 조화가 나의 마음을 터치할 때, 나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동과 함께 ‘대단하다’라는 강렬한 감정을 느낀다. 더욱이 그 감상의 상황도 매번 똑같지 않기에 새로이 들리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즐거움이나 기쁨이 아니라, 이해와 예측의 경계를 허물며 감정 그 자체가 순수하게 폭발하는 순간이다. 다른 예술 작품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시각과 해석을 제공하는 작품을 마주할 때, 나의 감정은 한계를 넘어 확장된다.


결국 어제 하루의 사건들은 내 감정이 메말라 있다고 얼핏 생각해 보았지만, 실제로는 감정의 형태의 표현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사건 앞에서는 현실적 결과와 책임을 고려하며 감정이 구조화되고 절제된다. 반면 예술 앞에서는 현실적 부담이 없기 때문에 감정은 순수하게 폭발하며, 경외와 강렬한 몰입을 경험한다.


내 감정의 외적 표현은 건조해 보일 있지만, 내적 인식과 경험의 깊이를 동반한다고 생각한다.

감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의 삶의 사건 앞에서는 분석과 이해를 통해, 예술 앞에서는 현실적 부담 없이 순수한 감정 경험을 통해 그 힘을 드러낸다.


어제 하루의 일들은 내 감정의 구조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하였고, 글로 정리하며 좀 더 나의 감정체계에 대해서 이해하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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