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는 나의 탄생
클로즈업. 조직 폭력 단체 행동대원 용식이다. 일처리를 제대로 못해 보스 앞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용식아….” 보스는 감정을 억누르며 도움닫기 하듯 말한다. 그리고 분노를 삼킨다. ”이 새끼 일 똑바로 처리 못 해?"라는 말 대신 존재를 상징하는 그 이름을 응징하듯 독을 꾹꾹 눌러담아 발산한다.
”용식아아아!!"
사랑을 잊은 목소리
아이의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해서 눈물이 핑 돌곤 한다. 아이는 현명하다. 어떤 선택을 하든 자랑스럽다. 나도 잘 살아왔으니 나보다 나은 너도 잘 살아내리라는 믿음이 있다. 이런 사랑 나도 받고 싶다. 사랑한다고, 넌 나에게 소중한 존재라는 얘기를 듣고 싶었다. 엄마에게 해달라고 할 순 없고, 자존감을 높여주는 확언을 하며 내 이름을 불러줬다. 넌 소중한 존재야. 나에게 와줘서 고맙다, 확언을 녹음한 뒤 다시 들었다. 내가 부르는 이름인데 엄마의 훈계조가 재현되는 듯해 깜짝 놀랐다. 가슴이 아파오는 톤도 있었다. 내 목소리가 부르는 이름은 타인의 색감만 가득했다.
너와 나를 바꾸다.
영화 ‘Call Me by Your Name(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봤다. 내 이름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부르는 건 어떤 느낌일까. 내가 느낀 건 이렇다. 나를 무쟈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너를 사랑한다는 의미기도 하고, 나를 불러 너를 더 사랑하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자기 존중감이 웬만해선 이런 제안을 할 수 없다.
나는 T에게 서로의 이름으로 우리를 불러보자고 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내 이름으로 부르는 건 눈물 나게 슬프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름 끝에 물결 붙여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름을 불러본다. 상민아~
네 이름으로 나를 불러봐.
모임에서 알게 된 친구가 내 이름이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름만 봤을 땐 중성적이고, 돌림자를 써서 별 의미를 두지 않았다. 한자를 좋아해서 한자명상을 하며 내 이름을 다시 보니 재목을 고르기 위해 나무 위에 올라가 세상을 살피고, 보석 같은 글을 쓰라는 아름다운 뜻이 담겨있다. 친구는 “듣고 보니 이름 좋네.” 하고 말했다. 그 친구는 자기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아 영어이름을 쓴다고 했다. 나는 콜미바이유어네임 영화 이야기를 해주었다. “네 이름으로 나를 불러봐, 어떤 느낌이 드는지.”
잃어버린 시간, 재탄생
내 이름이 처음 불릴 때는 사랑이 담겨있었을 것이다. 자라면서 혼내고, 통제하고, 평가하는 감정이 덧입혀지며 이제 엄마가 부르는 내 이름은 아픈 말처럼 들린다. 뭘 시키려고, 뭘 물어보려고, 말 좀 들어라! 하는 억누른 감정에 저항하느라 회피기제가 형성된 듯하다.
고양이 테슬라에게 내 이름을 불렀다. 아무런 판단도, 훈계도, 상처 주는 의도 없이 테슬라를 부르며 쓰다듬을 때 “이렇게 사랑스러운 존재구나” 하고 느낀다.
이름은 사물을 지칭하는 소리가 아니다. 존재에 도달하는 직통 라인이다. 세상 누구보다 다정한 목소리로 자기 이름을 불러줄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다. 스스로 이름을 부를 수 있을 때, 이름 안에 갇힌 과거의 상처가 풀려 나온다. 잊고 있던 ‘사랑받는 나’가 탄생한다. 자기 이름을 따뜻하게 불러본 사람은 친구의 이름도 따뜻하게 부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