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by space bar
IMG_7346.JPG?type=w2


똑딱똑딱.

지금이 지나간다.

초침 소리 들릴 때마다 지금은 지난 시간 되고 다짐하고 준비했던 그때는 이내 지금이 된다.

세상은 많은 얘기들이 오고 가지만 결국은 새벽 이 시간에 내 앞을 지나가는 지금을 다루는 법을 말한다.

지금을 살 줄 알아야 하고, 지금 행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금을 어떻게 장만해야 하나.

앞날의 불안이 몰려오지 않도록 바리케이드 치고, 지난 시간의 후회가 솟구치지 않도록 맨홀 뚜껑으로 눌러서야 온전한 지금이 보이려나.

정작 지금을 보려 해도 내 앞을 스쳐가는 지금에 어지럽다.

어린 시절 길거리 번데기 파는 리어카에서 돌리던 회전판에 제일 큰 금액을 견줘서 송곳 같은 것을 던져 보지만, 대부분 원하지 않던 곳에 송곳은 박혔던 것처럼 지금을 잡으려 견줘 볼수록 엉뚱한 시간이 잡힌다.

강아지가 자신이 행복할 때를 떠올려 보니 꼬리를 흔들 때라는 걸 새삼 발견하고는 그때부터 행복을 잡으려 닿을 수도 없는 꼬리를 입으로 물기 위해 뱅글뱅글 도는 것처럼 무언가를 의도할 때는 잡히지 않는다.

행복도 그러하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언젠가 어느 책에서 "무언 가를 꼭 희망해야 무슨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글귀를 본 적이 있다.

부정적인 말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지금을 대하는 마음자세를 알려 주는 것 같다.

무엇에 대해 어떤 의식과 의도가 들어가면 지금은 가려지고 희생된다.

지금은 다만 그 시간에 움직였던 나의 몸짓으로 증명될 따름이다.


산을 오르다 보면 지금을 느끼게 된다.

지금은, 올라야 할 봉우리를 바라보며 도달과 달성을 외치는 그곳에 있지 않고

무심히 옮기는 한 발 한 발 바로 거기에 자리하고 있었다.

불가에서 명상을 하는 이들의 지금이 들숨과 날숨에 있듯이.


오늘도 소중한 지금이 지나갔다.

자판을 두드리는 내 손끝에서,

설거지하는 고무장갑 낀 손에서,

그리고 강아지 밥 주고 강아지똥 치우고 겨울날 종종걸음 치며 실내로 뛰어 오던 내 발걸음에서

그 지금이 꿈틀거린다.

keyword
이전 20화귀농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