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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빛나무 Dec 06. 2022

길 위에 인문학

길 위에서 우리 기억을 만나다.

도시문화연구소 지승룡 대표와 만남


지승룡 대표를 만나게 된 것은 필진들의 모임에서 만나게 되었다.

지승룡 대표는 오래전 민들레영토라는 한국의 스타벅스라고 할 만한 한국형 카페의 창시자다.

사실 민들레영토는 나와 내 아내가 연애하던 시절 종종 이용하던 장소이기도 했다.


민들레 영토에 대한 또 다른 기억은 나에게 지적인 영감과 토론이 생각나는 장소이기도 했다.

그래서 한참 회사에서 사업 발굴이 필요하던 시기 회사 워크숍을 기획할 기회가 주어져서 민들레영토를 빌려 진행했던 기억도 난다. 보통은 워크숍 후 술로 마무리하던 모임을 나는 민들레 영토에서 직원들에게 읽어볼 책을 선물하는 행사를 진행한 적도 있었다.


모임에서 지승룡 대표께 내가 건넨 명함은 회사 명함이 아닌 삼양 리빙랩이라 표기된 개인명함으로 전했다.

내가 개인 명함을 주는 이유는 알려진 회사 이름으로 나 스스로가 평가받고 싶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명함에 나온 삼양 리빙랩이 위치한 삼양동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삼양 리빙랩은 고령층이 많이 살고 있는 삼양동의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생활연구소라고 소개했다.


그전까지는 지승룡 대표께서 부목사 생활을 삼양동에서 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기에 내가 거창하게 삼양동을 미국 실리콘밸리 같은 벤처 단지로 도시 재생사업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지승룡 대표는 삼양동에 대해 너무나 많이 알고 있었고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지승룡 대표는 젊어서 삼양동에서 목회를 하셨다고 한다.


사실 지승룡 대표님으로부터 알기 전 까지는 내가 태어난 서울 역사에 대해 피부에 와닿도록 들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렇기에 삼양동에 주로 살았던 사람들과 그들의 문화에 대한 거의 들어보기 힘들었던 여러 이야기에 놀라기도 했고 너무 귀중한 이야기에 감사했다. 그리고 지승룡 대표께서 오랫동안 산책하던 길을 함께 따라나서면서 우리가 사는 공간의 이야기를 들었고 주변 여러 사람들과 함께 걸어가는 동행이 되기로 했다.


어쩌면 우리가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살아간다는 의미는 바쁘게 부품처럼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는지 모른다.

마치 각자의 섬에서 고립되어 사는 느낌이다. 서로의 기억이 연결되지 않는 서울이라는 공간에서 공동체를 형성하기 어려운 이유인지 모른다.


도시 공간에서 살아가는 구성원들이 도시 공동체의 역사를 기억하고 공감하는 것은 도시 공동체가 결속력을 가지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인지 모른다. 그런데, 우리 서울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마치 이민자들처럼 이 지역의 역사를 거의 잘 모른다. 마치 기억상실에 걸린 사람들처럼 우리는 매일 같이 새로 지어지어지고 있는 도시 속에서 과거를 삭제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자 삶을 담은 길 위에 인문학


우리는 역사를 살고 있는 존재들이다. 당장 먹고 살기 함 든데 그게 무슨 소용 있냐는 푸념이 아닌 역사가 흐르는 물줄기를 보며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길을 잃지 말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 스스로가 살아온 가장 익숙한 곳 역사부터 찾아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내가 자라고 성장한 삼양동은 과거 가내수공업 단지였지만 80년대 이후 중국의 생산기지 강화에 따라 생산도시가 아닌 저소득 주거 단지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현재는 저소득 고령층들이 주로 사는 고령화된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지승룡 대표가 기억하는 삼양동과 달리 내가 기억하는 삼양동은 사실 어릴 적 무조건 벗어나고 싶은 동네였다.

왜냐하면 어릴 적 나를 비롯한 가난한 내 친구들에게삼양동은 삶의 고단함과 모든 결핍으로 상징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삼양동을 달동네라고 부르기도 한다. 달동네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높은 곳에 위치해 달이 잘 보이는 동네를 이야기한다.


삼양동 달동네 형성과정은 해방과 전쟁 이후 피난민들 및 도시 빈민들이 서울 외곽의 산비탈 등에 판잣집을 짓고 살기 시작하면서 형성되었고, 1960년부터 도시 재개발에 내몰린 철거민들과 한강 홍수 이재민들에 의해 형성되었다고 한다.  


비록 삼양동은 도시 빈민촌이었지만 이들의 삶은 무척 능동적이었고. 각종 가내 수공업을 통해 마을을 일구어 왔다.

우리 집 역시 이곳에서 바늘 샘지 공장을 했고 좀 더 넓은 공장을 얻어 렌즈 만드는 공장을 하기도 했다.

손재주 좋으셨던 아버지는 직접 만든 사출기로 옷핀을 만들었고, 직접 제작한 기계로 현미경용 렌즈를 깎았다. 우리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는 직물기계로 직물을 짜는 곳이 많이 있었다.


삼양동은 어쩌면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모여서 노동과 생산을 통해 가치를 창조하는 곳이었고  지방에서 올라온 노동자들이 적은 돈으로 생활할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최근에 알게 되었지만 많은 문인들이 살던 곳이기도 했다. 그렇듯 삼양동은 누군가에게는 적은 돈으로도 서울생활에 적응할 수 있게 하는 출발점이었고 우리 시대 양심과 가치가 살아있던 곳이었다.  






어쩌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기억상실증에 걸려 있는지 모른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집단은 미래를 준비할 수 없다.


무엇보다 반성을 통해 미래에 발생할 문제를 막을 수도 없다. 그런 공감의 기억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 속에서 공동체가 서로 아픔을 나누고 결속력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일들이 우리 주변 곳곳에 흔적으로 남아 있다. 우리는 그런 역사를 기억하고 걸어가면서 과거와 대화를 통해 공동체의 기억을 이어갈 필요가 있다.


우리는 개인이기 전에 공동체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길 위에서 인문학을 공부하고 과거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는 것은 나와 우리 공동체의 본질을 알아가는 행위이고 우리의 자식 세대에게 기억을 전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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