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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Mar 29. 2022

3월 29일 김유찬의 하루

새로운 팀장

며칠 전, 새로운 팀장이 왔다. 그는 며칠 동안 팀원들을 한 명 한 명 불러 깊은 대화를 나눴다. 팀장은 점심시간에 팀원을 데려가서 같이 이야기도 나누고 커피도 마시고 그렇게 2시간이 넘게 면담을 진행했다.  

우리 팀은 총 7명의 사람이 있었다. 하루에 한 명 하고만 면담을 나웠기 때문에 팀장은 7일 동안 팀원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다.

오늘은 내 차례였다. 친한 다른 동료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물어보니, 그냥 사는 이야기만 한다고 했다. 그리고 업무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평범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크게 부담이 가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팀장은 부정적인 단어 자체를 싫어하기 때문에 대답할 때 그런 성향이 나타나지 않게 조심하라고 동료는 충고했다. 나는 면담인데 부정적인 단어가 나올 것이 있을까 싶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팀장은 나에게 무엇을 먹고 싶은지를 물었다. 나는 중국집에 가고 싶었다. 팀장은 좋다며 근처 중국집으로 이동했다. 나는 짜장면을 골랐고 팀장은 어제도 밀가루를 먹어서 오늘은 볶음밥을 먹겠다고 말했다. 나는 팀장에게 미리 말했으면 다른 곳을 갔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팀장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팀장은 탕수육도 같이 시켰다. 

음식을 시킨 팀장은 나에 대해서 묻기 시작했다. 어디에 살고 있는지, 지금 회사는 언제 왔는지 등 아주 간단한 정보에 대해서 물었다. 그리고 이 회사에 왜 왔는지에 대해서도 물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음식이 나왔다. 여기 중국집은 회사 근처에서도 알아주는 곳이었다. 나는 아주 맛있게 음식을 먹으며 계속해서 팀장이 묻는 질문에 대해서 대답했다. 대화가 이어진다기보다는 팀장이 계속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만 해서 그냥 식사 면접 자리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밥을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다. 그 정도로 팀장의 질문은 굉장히 많았다. 팀장 역시 식사 자리에 대해 그리 흥미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단지,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의 표정만 있었다. 

겨우 겨우 밥을 다 먹고 나는 서둘러 일어났다. 어서 장소라도 옮기고 싶었다. 나도 팀장에게 궁금한 것이 많았다. 그런데 이곳은 아니었다. 옆 테이블은 너무나 시끄러웠다.

음식값을 계산하는 팀장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나는 근처의 괜찮은 카페로 그를 데려갔다. 이번에는 내가 커피를 사겠다고 하니 팀장은 이번에도 자신이 사겠다며 카드를 먼저 종업원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무엇을 마시겠냐고 나에게 물었다. 나는 마시고 싶은 것이 있었지만 아무래도 팀장이 계속 사는 게 눈치 보여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결정했다. 팀장은 커피를 안 마시는지 따뜻한 허브티를 시켰다. 그리고 아직 배고픈지 조각 케이크도 2개나 시켰다. 나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팀장은 서둘러 케이크까지 계산했다. 

커피가 나오자 드디어 우리는 조금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이번에는 질문이 아니었다. 팀장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팀장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창업을 했던 사람이었다. 나름 잘 나가던 시절도 있었지만 철저하게 망한 사람이기도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그는 눈을 낮추어 아주 작은 회사의 사원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그는 어린 나이에 한 경영은 경력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작은 회사에서 경력을 쌓아 팀장 자리에 올랐고 중견 기업으로 이동해서 능력을 인정받았다고 한다. 그렇게 15년이 넘는 경력을 쌓게 되었고 지금 우리 회사에서 연락이 와서 이곳으로 이직을 했다고 했다. 수많은 회사에서 그에게 경영진의 자리를 약속하기도 했지만 그는 젊은 시절의 사업 실패가 아직 트라우마로 남아 임원이 아닌 팀장 자리까지만 아직 하고 있다고 했다. 자신이 경력을 쌓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그 이상 올라가야 하는 것이 맞지만 아직 그럴 용기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팀장은 자신이 부정적인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부정적인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결과를 도출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실제로 그가 처음 회사를 차렸을 때는 모든 것이 부정적이었다고 했다. 같이 일하는 동료뿐만 아니라 자신도 부정적인 입장으로 일을 했다고 한다. 그때는 그것이 신중하고 똑똑한 결론을 내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과는 실패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그 이후로 부정적인 마음이 결국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부정의 단어를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팀장도 부정적인 상황을 만나게 되고 절망적인 상황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고 그러려고 노력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사실 이 말을 들었을 때, 조금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 역시 많이 부정적인 사람 중의 하나라 항상 밖에 나가면 부정적인 말을 할 때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모든 것을 어둡게 전망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강한 부정으로 강한 긍정의 에너지를 얻는다…라고 하는 내 나름의 철학이 있어서 그랬지만 이 팀장한테 그런 말을 했다가는 내가 괴로워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은 정말 조심해야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팀장은 계속해서 자기 이야기를 이어갔다. 팀장은 자신이 이렇게 하루에 한 명만 면담을 하는 이유는 생각을 어지럽히지 않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하루에 몇 명을 상대하게 되면 처음 면담했던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체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결국 무의미한 결과만 나온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조금씩, 천천히 팀원들을 파악하고 돌아와서는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진다는 것이었다. 

팀장은 분명 인간적이고 친절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계속해서 남을 감시하는듯한 차가운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면담을 하는 내내 그리 좋은 인상을 받지는 못했다. 내가 한마디 한마디 할 때마다 머릿속으로 정보를 처리하려고 하는 기계 같은 모습이 보였다. 대화를 하면 할수록 특별히 조심히야겠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 사실 이건 나만의 의견은 아니었다. 면담을 미리 마친 다른 사람들의 공통적인 이야기였다. 

팀장은 다시 나에게 대해서 몇 가지 궁금한 것을 물어봤다. 내가 평범한 답변으로 이야기하자 그는 다시 자신이 팀을 어떻게 이끌지, 어떤 식으로 팀원을 관리하는지에 대해 소개했다. 모든 것은 꽤나 합리적이었다. 아니, 지나치게 합리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불안해졌다. 그런 원칙이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2시간이 넘는 면담을 마치고, 우리는 사무실로 복귀했다. 팀장은 나에 대해서 어떻게 판단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대충 알 수 있었다. 그의 비위를 맞추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의 원칙대로 내가 행동한다면 나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원칙이 자신의 잣대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내가 그가 원하는 데로 행동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의외로 잘 지낼 수도 있지만 이 팀장이 있는 동안은 뭔가 피곤한 일이 많아질 것 같다. 조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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