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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Mar 25. 2022

3월 25일 송이재의 하루

오후 반차

오늘은 조금 일찍 출근했다. 유연근무제인 우리 회사는 8시에 출근하면 5시에 퇴근할 수 있었다. 하지만 8시에 출근을 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아침잠이 너무 많아 최대한 늦게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게 일상이었다. 물론 야근을 할 때가 많아 8시에 출근해도 큰 의미가 없어서 그렇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은 8시에 출근했다. 오늘은 오후 반차를 쓴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12시까지 오전 근무만 하면 바로 집에 갈 수 있었다. 게다가 오늘은 금요일이지 않은가? 불금에 일찍 퇴근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우리 회사에서는 금요일 오후 반차를 노리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모두가 금요일 오후 반차를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휴가를 쓴다고 해서 눈치를 주는 회사는 아니었지만 업무적으로 눈치를 줬다. 일이 너무 많고 사람은 적었기 때문에 휴가를 쉽게 쓸 수가 없었다. 내가 쉰 만큼 그다음이 힘들어졌다. 물론 자신이 감당할 수 있으면 휴가는 쓸 수 있었다.  

나도 오늘의 휴가를 위해 지난 한 주 동안 야근을 했다. 금요일 오후 반차를 위해 야근을 하는 것이 과연 좋은 것일까 싶기는 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기왕이면 금요일 전체 연차를 쓰는 것이 좋았지만 금요일 오전에 중요한 미팅이 있었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아침잠이 많은 나였지만 오늘은 일찍 일어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회사로 바로 달려가서 겨우 8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른 아침이라 회사에 출근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래도 있기는 있었다. 그들은 다섯 시에 칼퇴를 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그들의 건투를 빌며 나는 오전 업무를 빠르게 처리했다. 아침 일찍 오니 오히려 더 업무에 집중되는 것 같았다. 

9시가 되자 사람들이 슬슬 출근하기 시작했다. 오늘 미팅은 10시였기 때문에 나는 주어진 시간 동안 남은 업무를 처리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9시 30분이 되었을 때, 나는 미팅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내방 미팅이었다. 외부 미팅이었으면 거기서 바로 퇴근하면 되었지만 아쉽게도 그럴 수는 없었다. 

1시간 남짓의 미팅이 끝나고 나는 미팅 내용을 정리하고 이메일을 보내느라 남은 1시간을 보냈다. 일에 집중하다가 시계를 보니 어느새 12시였다. 나는 슬슬 눈치를 보며 퇴근할 준비를 했다. 내가 오전 일찍 온 것을 모르는 상사가 새로운 일을 시키려고 할 때 나는 오후 반차라는 사인을 계속 보냈다. 그는 나에게 부럽다며 휴가 잘 보내고 오라고 말했다.

바로 나가기는 뭐해서 20분 정도 내 자리에서 눈치를 보다가 퇴근했다. 팀원들에게 주말 잘 보내라는 말과 함께 나는 누가 나를 잡을까 봐 발걸음을 빠르게 하며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퇴근을 완료하고 바깥세상에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오늘 오후 반차를 낸 이유는 친구인 명훈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나의 고등학교 친구인 그는 5년 전 이른 창업을 하고 업계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명훈이와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굉장히 친한 사이라 한참 많이 만날 때는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봤다. 물론 같은 동네에 살았던 학창 시절엔 매일 만났고. 지금은 서로 회사를 다니고 멀리 살기 때문에 그만큼 자주 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2달에 한 번은 보려고 했다. 

1년 전부터 명훈이는 나를 스카우트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가 나랑 같이 일하고 싶어 했던 것은 이번만이 아니었다. 처음 창업할 때도 나랑 같이 하고 싶어 했지만 나는 거절했다. 그냥 월급쟁이로 사는 것이 훨씬 좋았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명훈을 굉장히 부러워하고 있다. 그때 명훈을 따라 창업을 했으면 내 인생도 달라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할 때도 많았다. 

명훈은 오늘도 나에게 이직 생각이 없는지를 물어보기 위해 나를 부른 것이었다. 명훈은 회사가 어떻게 일하는지를 보여주고 회사 사람들도 소개해주겠다고 했다. 명훈의 행동이 무척 적극적이었던 이유는 내 태도 역시 변했기 때문이었다. 이직을 염두하고 있었고 그게 명훈의 회사라면 꽤나 괜찮은 선택이 될 것 같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회사 사람까지 만나는 것은 부담되었다. 

명훈의 회사에 도착하자 명훈은 나를 환영해줬다. 그리고 회사의 부사장과 팀장급 사람 두어 명을 소개해줬다. 그들은 나를 경계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어째서인지 내가 이직하는 것이 확정인 듯이 대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무래도 명훈이 조금 과장한 것 같았다. 

나 역시 그들을 경계하지 않고 친밀하게 대했다. 그들과는 꽤나 코드가 맞았다. 사업에 대한 관점도 비슷했고 그들이 무슨 일을 잘하는지도 짧은 대화에서 유추할 수 있었다. 이들과 일한다면 분명 나에게도 좋은 경력이 될 것 같았다. 명훈은 그다지 말은 하지 않고 내가 임원진과 이야기를 할 수 있게 유도했다. 그저 내가 그들과 친해지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회사 사람들과 이야기를 마치고 명훈은 나에게 회사를 구경시켜줬다. 그리고 나에게 앞으로 할 아이디어를 보여주기도 했다. 꽤나 중요하고 비밀스러운 자료라서 명훈의 태도가 부담스러웠지만 막상 보니 굉장한 아이디어였다. 명훈의 사업이 승승장구하는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이야기를 마친 명훈은 직원들에게 퇴근하다고 말하고 나를 데리고 나갔다. 나랑 같이 술이나 한잔하자고 한 것이다. 회사 근처의 소고기 집으로 데려간 명훈은 꽤나 비싼 음식을 시켜줬다. 가격을 보고 놀라는 나를 보고 명훈은 회사에서 사는 것이니 부담 없이 먹으라고 했다. 

명훈과 술잔을 기울이며 우리는 미래에 대해서 논했다. 내 마음도 어느 정도 기울고 있었다. 명훈은 나와 함께 일하고 싶다고 다시 한번 정식으로 권했고 나는 조금 더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명훈은 시원하게 결정 못 하는 내가 조금 실망스럽다고 했지만 그래도 이해된다고 했다. 조금 오락가락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명훈의 말도 맞았다. 나는 아직 망설이고 있었다. 

명훈과 헤어지고 나는 집으로 갔다. 어느새 하루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친구와 일하는 것이 좋은 것인지 지금 회사에 있는 것이 좋은 것인지 도무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지금 회사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고 친구의 회사가 부러운 것이 사실이지만 막상 친구와 일을 하게 되면 그 사이가 멀어질까 봐 이를 걱정하는 것도 있었다. 어떻게 해아 할까…. 남은 주말 동안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정말 좋은 기회지만 아직 객관적인 판단을 하기가 어렵다. 아주 짧고도 긴 주말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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