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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Mar 24. 2022

3월 24일 이성욱의 하루

여유로운 출장

성욱은 회사 일 때문에 2박 3일 동안 부산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오늘 하루만 출장이었지만 성욱은 이왕 부산에 간 김에 휴식이라도 취하고 싶어 금요일 하루 연차를 내고 토요일까지 부산에 있기로 하였다. 성욱이 자주 지방 출장을 다녔다. 정부 지원 사업 서류 제출과 PT를 위해 몇 번 기관이 있는 곳으로 간 적도 있었고 전시회에서 자리를 채우기 위해 출장을 간 적도 있었다. 이번 부산 출장은 단순히 거래처를 만나러 가기 위해서였다. 그러면서 부산에 있는 회사 공장도 둘러보고 오는 간단한 일정이었다. 

성욱은 원래 서울 사무실에 있을 때도 이곳저곳 미팅을 많이 다니기는 했지만 지방으로 출장을 가는 것은 그리 선호하지 않았다. 너무 많은 체력을 소모해야 하고 기차나 자동차를 타고 먼 길을 가는 것도 피곤했다. 그래서 지방 출장을 자처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성욱이 자처한 길이었다. 최근 들어 휴가는커녕 주말에도 출근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잠시 바람이라도 쐬고 싶었다. 그래서 휴가까지 제출하고 부산으로 가기로 했다. 다른 직원이 출장과 휴가를 같이 썼다면 뭐라 하는 사람이 많았을 테지만 그동안 고생한 성욱의 노고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회사도 말리지 않았다. 오히려 회사 상무는 부산의 맛집을 추천해주기도 했다. 

이른 아침잠에서 깬 성욱은 서울역으로 바로 이동했다. 그리고 예약한 KTX를 기다라면서 역 안에 있는 햄버거 집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었다. 멍하니 있던 성욱은 이제 자신이 출발해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자 뛰어서 자신이 열차를 타야 하는 곳으로 이동했다. 

겨우 열차를 놓치지 않고 자리에 앉은 성욱은 주위를 살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서울역에서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었다. 성욱은 오랜만에 기차를 타니 어릴 때 부모님과 기차 여행을 갔던 일이 떠올랐다. 어릴 때 기차를 타고 할머니 집으로 이동한 일, 기차 안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었던 일, 기차 밖에서 처음 보는 풍경들에 감탄했던 일 등 많은 일들이 어린 성욱의 기차 여행을 즐겁게 하는 요인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이제 성욱에게 기차 여행은 엄청 고리타분하고 지겨운 여정일 뿐이었다. 성욱은 핸드폰으로 지난밤 온 메일들을 모두 체크하고 의자에 기대에 잠을 청했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자 성욱은 아직 기차가 대구를 지나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크게 실망했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남았기 때문이었다. 성욱은 이어폰을 꼽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이 지겨운 시간을 버텨보려고 했다. 


다시 잠이 들었던 성욱은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는 소리에 놀라 주위를 살폈다. 이제야 겨우 부산에 도착했다는 것을 깨달은 성욱은 짐을 챙기고 열차에서 내렸다.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성욱은 미리 예약한 렌터카를 픽업하러 갔다. 그냥 하루짜리 출장이었으면 택시를 타고 갈 생각이었지만 기왕 놀러 온 거 사비를 털어서 렌터카를 이용하기로 한 것이었다. 회사 돈을 쓰는 게 아니라 성욱에게는 조금 손해였지만 그래도 2박 3일 간 있을 짐을 가지고 택시를 왔다 갔다 하는 것도 귀찮았다. 

성욱은 렌터카를 타기 전 핸드폰으로 차의 상태를 자세하게 찍었다. 그리고 첫 번째 목적지로 향했다. 목적지는 부산에 있는 거래처였다. 거래처 사장님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식사 자리를 같이 하며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다행히 거래처 사장도 성욱을 좋게 보고 있었기 때문에 일은 수월하게 해결됐다. 식사 겸 미팅을 마친 성욱은 다시 차를 타고 두 번째 목적지로 향했다.

두 번째 목적지는 회사의 공장이었다.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보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공장 점검이라고는 했지만 사실 성욱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성욱은 공장 사람들과 오후에는 거의 잡담이나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부산 공장에서 일하는 정상무는 놀러 왔다는 성욱이 부럽다며 공장일 좀 돕고 가라며 장난을 쳤다. 성욱은 공장 사람들의 비위를 맞춰주며 잠시 그곳에 머물렀다.

그때, 성욱에게 전화가 왔다. 서울 사무실의 상사 전화였다. 상사는 성욱에게 부산에 간 김에 일을 추가로 더 시켰다. 그는 저녁 시간에 다른 거래처와 미팅을 하러 가라고 했고 내일 오전에 또 다른 업무를 해줄 수 있는지를 물었다. 성욱은 저녁은 괜찮지만 오전은 자신이 연차라 어려울 수도 있다고 했지만 상사는 막무가내였다. 그는 오전에 하는 일이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니니 금방 끝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성욱은 자신의 휴가가 망쳐진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위에서 까라고 하니 어쩔 수 없이 일을 하겠다고 말했다. 

화를 진정시킨 성욱은 서둘러 공장을 떠났다. 그리고 잠시 드라이브를 하며 기분을 풀기로 했다. 성욱은 예약한 숙소로 이동했다. 바닷가 근처에 있는 숙소였다. 성욱은 체크인을 하고 짐을 방에 갖다 놨다. 저녁 미팅은 100% 술을 먹을 것이 뻔했기 때문에 성욱은 숙소에 차를 세워두고 택시를 타기로 했다. 숙소의 침대를 보니 이대로 누워서 자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성욱은 방을 뒤로하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저녁 미팅은 김 사장의 회사와의 자리였다. 김 사장은 술을 너무나도 좋아해서 그를 버거워하는 사람이 많았다. 다행히 성욱도 술을 잘 마시는 편이라 김 사장은 성욱을 무척 좋아했다. 성욱은 김 사장을 경멸했지만 그래도 웃으면서 그의 술잔을 받아주며, 그의 술자리 친구가 되어줬다. 그러나 성욱도 오늘은 힘들었다. 어째서인지 오늘은 술이 받지를 않았다. 반대로 김 사장은 오늘따라 술이 더 잘 들어가는 것 같았다. 성욱은 김 사장의 속도를 맞추느라 죽을 것 같았다. 성욱은 술 대신 김 사장의 대화를 더 이끌어내면서 어떻게든 버티려고 노력했다. 성욱은 영업시간 제한이 9시까지였던 때가 갑자기 그리워졌다. 성욱은 빨리 이 자리가 끝나기를 기도했다.

시간이 지나자 드디어 김 사장도 술에 취했다. 김 사장의 주사는 잠드는 것이었다. 성욱은 김 사장을 데리고 택시를 불렀다. 그리고 능숙하게 김사장네 집을 택시 기사에게 말하고 그를 보냈다. 성욱은 이제야 끝났다는 안도감에 다리의 힘이 풀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성욱은 구역질을 하며 한계에 도달했던 술을 내뱉기 시작했다. 성욱이 이렇게 술을 많이 마신 것은 오랜만이었다. 최근에는 저녁에 만나도 술을 거의 먹지 않았는데 김 사장과의 자리에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성욱은 편의점으로 가서 음료수를 샀다. 그는 편의점 밖에서 음료를 벌컥벌컥 들이켜고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술에 너무 취했는데 마스크까지 쓰고 있으니 더욱 심장이 벌렁거리는 것 같았다. 성욱은 이대로 누워서 잠도 잘 수 있겠다 생각했지만 마지막 이성의 끈을 잡고 일어났다. 그리고 택시를 불러 숙소로 이동했다. 

겨우 숙소에 도착한 성욱은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성욱은 내일 일어나서 돼지국밥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잠에 들었다. 부산에서의 첫 하루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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