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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Mar 23. 2022

3월 23일 김수한의 하루

치과

며칠 전부터 이빨이 시렸다. 처음엔 물을 마실 때 시린 느낌이 들더니 이젠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도 이가 시렸다. 불안한 느낌이 들었지만 나는 애써 외면했다. 치과를 가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치과에 가는 것이 너무나도 싫었지만 그렇다고 안 가면 더 큰 화를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친구의 말에 결국 치과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회사 주변을 검색하니 다행히 야간 진료를 하는 곳들이 있었다. 점심시간을 쪼개서 가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 나는 평이 괜찮은 병원을 찾아 전화를 했다. 그리고 오늘 7시에 치과에 방문하기로 했다. 

평소라면 퇴근 시간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겠지만 오늘은 치과를 가야 했기에 퇴근 시간이 다가오는 것이 싫었다. 치과 진료비가 얼마 나올지, 이빨을 어떻게 해야 할지, 이제 나이가 들어 그 이상의 치료를 받아야 할지라는 현실적인 두려움부터 이빨을 치료할 때 느껴지는 그 특유의 기계 소리와 냄새와 함께 찾아오는 공포까지…으.. 상상만 해도 정말 싫다. 그러는 와중에도 이빨이 너무 시려 빨리 치료를 받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마침내 퇴근 시간, 나는 그리 서두르지 않고 치과로 향했다. 회사에서 치과까지는 걸어서 단 5분. 치과까지는 너무 가까웠다. 저녁 시간이라 그런지 치과에는 사람이 많이 없었다. 이 병원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간단한 접수증을 썼다. 잠시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데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났다. 이빨 상태를 보기 위해 촬영을 해야 한다고 한다. 이때부터 몸이 급격하게 긴장되기 시작했다.

촬영을 마치고 나는 본격적인 치료를 위해 유니트체어에 앉았다. 앉자마자 등을 젖히고 입만 남겨놓고 얼굴 전체를 가리기 때문에 나는 누가 지금 나를 진료하고 있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중후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의사 선생님이 온 것 같았다. 선생님은 나보고 입을 벌리라고 하더니 아픈 부위가 어딘지 체크했다. 잠시 보더니 설명을 하겠다며 다시 의자를 올렸다. 그제야 나는 의사 선생님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마스크를 가려 잘 보이지는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꽤나 베테랑의 포스가 났다. 선생님은 미리 촬영한 사진을 같이 보며 나에게 왼쪽 사랑니 부분에 충치가 생겨 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다.

하필 사랑니라니…. 나는 사랑니를 뽑아야 하는 것이냐고 선생님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뽑으려면 뽑아도 되지만 워낙 내 사랑니가 잘 만들어진 편이라 지금 단계에서는 충치 치료 정도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휴우… 나는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했다.

나는 여태껏 사랑니를 뽑은 적이 없었다. 내 사랑니는 정말 기적적으로 4개의 이빨 모두 번듯하게 자라고 있었다. 그래서 치과를 가면 다들 사랑니 치료를 굳이 안 해도 되어서 축북받았다고 말했다. 사랑니를 뽑지 않고 사는 것에 대해 내 나름데로의 프라이드가 조금 있었다. 그러나 사랑니였기 때문에 칫솔이 잘 닫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결국 충치가 있었고 어떻게든 치료를 해야 했다.

충치 치료에 대한 설명을 듣기 위해 나는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서 치료 방법과 가격에 대한 설명을 충분히 들었다. 그리 심한 충치는 아니라 레진 방식으로 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에게 오늘 바로 치료할 것인지를 물었다. 갑자기 나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니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다음으로 미뤄도 되는 것인가? 순간 고민했지만 결국 치료를 해야 하고 충치를 가만 내버려두는 것도 문제였기에 오늘 바로 치료를 받기로 했다.

나는 마취를 받고 치료를 받을 것이니 괜찮겠지 하고 있었는데 레진 정도는 마취 없이 해도 된다고 한다. 앗… 마취 없이???

갑자기 손에서 미칠 듯이 땀이 났다. 마취 없이 한다고? 이빨도 갈고 막 부수고 뭐 붙이고 그러는 거 아닌가? 이걸 마취 없이? 난 울고 싶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정말 마취 없이 하냐고 의사 선생님에게 물었다. 의사 선생님은 원하면 해드리는데 금방 끝나서 괜찮을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어린애들도 마취 안 하고 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음…. 그… 그럼 어쩔 수 없지.. 그냥 해주세요 ㅠㅠ

의사 선생님은 나를 안심시키시면서 의사를 젖히고 치료를 시작했다. 지나치게 소름 끼치는 기계 소리가 들리면서 내 이빨 쪽에 닿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없는 도구, 내 이빨에 직접 닿아 아픈 듯 너무 아픈 기분, 입을 계속 벌리고 있어 턱이 빠질 것 같은  느낌까지…. 치과의 모든 경험은 언제나 최악이었다. 악… 아니 마취 안 해도 괜찮. 다…. 면… 서… 요

너무 아프다. 살려주세요. 나는 본능적으로 왼팔을 들었다. 그러자 소음이 멈췄다. 선생님이 내 안부를 물었다. 


“너무 아프세요? 괜찮아요. 금방 끝나니까”


이러고 다시 굉음이 들리며 내 이빨을 부수기 시작했다. 아니 안 괜찮다니까요. 선생님….

이대로 그냥 정신을 잃어 눈을 뜨면 집이었으면 좋겠다. 

사실 아프지 않은 것 같지만 이 느낌이 너무 아프다. 너무 싫다. 살려줘.

치과 싫어. 단거 안 먹을게요….


마치 1시간과 같은 10분~15분 정도가 지나고 어느새 시술은 마무리 단계였다. 이젠 이빨보다 턱이 더 아팠다. 진심으로 턱이 빠질 것 같았다. 선생님은 이제 마무리 단계라며 나를 안심시켜줬다. 조금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인지 잠이 조금씩 왔다. 이대로 여기서 잠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마무리 시술이 끝난 후 준비된 물로 입을 헹궜다. 몇 번을 헹궈도 입 안의 찝찝함은 가시지 않았다. 목구멍에 뭐가 넘어가도 만 건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렇게 나는 한 10번 정도를 입을 헹구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접수대로 가서 주의 사항을 듣고 오늘 진료 및 시술에 대한 비용을 지불했다. 내가 이빨만 잘 관리했으면 안 나갔을 돈인데 조금 아쉬웠다. 선생님은 이제 환자가 없는지 나를 보러 나오셨다. 선생님은 계속 주의하라고 말씀하시고 다음에 또 충치가 나면 그때는 이빨을 뽑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하셨다. 나는 선생님에게 감사하다는 의미로 인사를 하고 병원을 떠났다. 밖에 나오니 어느새 8시가 넘었다. 너무 힘든 저녁을 보냈더니 단 음식이 당겼다. 뭘 먹고 갈까 하다가 충치 치료하고 이런 것을 먹으면 안 될 것 같아 그냥 집으로 가기로 했다. 아…. 치과는 정말 다시는 오고 싶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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