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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Apr 12. 2022

4월 12일 성민재의 하루

인사팀 직원

민재는 현재 다니는 회사의 유일한 인사팀 직원이었다. 팀원도, 팀장도 아닌 정말 인사팀 그 자체였다. 민재가 하는 일은 무척이나 다양했다. 직원들의 근태관리, 인사 업무 지원, 회사의 자잘한 이벤트 기획, 채용, 그리고 복지까지가 민재가 해야 하는 모든 일이었다. 물론 완전히 민재 혼자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민재의 일을 도와주는 사람이 회사의 대표라는 것이 문제였다. 특히 채용에 대해서는 대표가 놓지 않고 신경 쓰고 있었다. 그리고 총무 역시 대표와 그의 아내가 일을 도맡아서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재가 신경 써야 하는 것은 무척 많았다. 민재가 처음 회사에 입사했을 때는 겨우 직원이 10명이 안 되었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지만 회사가 급속도로 성장하며 50명을 넘어가자 민재도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든 채용에 있어 인사팀에 대한 충원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대표는 인사팀보다 당장의 돈을 벌 수 있는 부서의 채용을 원했다. 그래서 민재와 함께 일할 동료는 단 한 번도 고려된 적이 없었다. 

민재의 업무 중 하나인 사내 복지는 원래 민재의 업무가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민재의 회사에서는 복지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정수기와 탕비실의 빈약한 과자, 그리고 직원들은 전혀 좋아하지 않고 시간만 잡아먹는 쓸데없는 행사 등이 전부였다. 대표는 복지라는 것에 신경 쓰는 것이 일의 효율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임원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회사가 성장하며 외부에 많이 알려지자 대표는 인터뷰를 많이 하게 되었다. 인터뷰를 하게 되면 꼭 나오는 질문이 ‘회사의 자랑할만한 복지가 무엇인가요?’였고 대표는 ‘남들 하는 만큼 해요’라고 대답했다. 그 이후로 대표는 회사의 보여줄 만한 복지를 원하기 시작했다. 직원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고 그저 보여주기 식 복지를 만들고 싶어 했다. 그런데 누가 할 것인가가 문제였다. 대표의 머릿속에서는 좋은 아이디어가 안 떠올랐다. 그러다가 대표의 눈에 들어온 것은 민재였다. ‘복지는 원래 인사팀이 하는 거야’라는 말이 대표가 민재에게 일을 더 주면서 한 유일한 말이었다. 민재의 업무는 그렇게 갑작스럽게 늘게 되었다. 

민재는 주변 회사의 사례를 찾아보고 몇몇 복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대표에게 보여줬지만 대표는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정말 보여주기에 적합한 복지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민재 역시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자 민재는 대표에게 회사 사람들에게 의견을 청취해서 복지를 만들겠다고 했고 대표는 ‘산뜻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와’라고 민재에게 명령했다. 

그날부터 민재는 매일매일 회사 사람 한 명씩 돌아가면서 밥을 먹고 있다. 민재는 회사 사람 한 명 한 명의 의견을 듣고 싶어 했다. 그래서 이제 회사에 들어온 인턴서부터 조금씩 위로 올라가며 회사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려고 노력했다.

오늘은 민재의 1:1 점심이 시작된 지 열흘을 맞이하는 날이었다. 오늘은 회사에 입사한 지 8개월이 지난 정민과의 점심이었다. 정민은 매사에 진지한 타입이었다. 민재는 정민이 딱히 회사에 대한 불만도 없는 사람 같아 보였기 때문에 오늘은 그리 좋은 대답을 듣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회사의 필요한 복지가 무엇이라고 생각해요?”


민재가 벌써 10번째 반복하고 있는 문구였다. 민재는 별 기대를 안 하고 정민에게 묻고 있었다.


“뭐 대표님은 말하면 할 의향은 있데요?”


정민은 다소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동안 정민이 불만이 없다고 생각했던 민재는 그의 대답톤이 다소 의아했다.


“아…네 해주실 의향은 있어요. 그런데 뭘 좋아하시는지 모르겠는게 문제지만요.”


“그러니까요. 대표님은 보여주고 싶은 복지를 하려고 할 텐데 제 아이디어 들어봤자 재미없을걸요.”


“일단 말씀해 주세요. 저도 의견 종합해서 보고를 하는 거라…”


“휴가 비용 지원해주셨으면 좋겠고요. 지금은 좀 그렇지만 나중에 코로나 많이 풀리면 주변에 헬스장도 이용할 수 있게 했으면 합니다. 생일자 조기 퇴근이나 명절 상여금. 장기 근속자는 리프레시 휴가 혹은 휴가비 지원 정도도 괜찮겠네요.”


평소 조용하던 정민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말을 하자 민재는 놀란 표정을 했다. 하지만 정민의 말을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개인 복지 카드나 교육비 지원, 하다 못해 책을 한 달에 어느 정도 살 수 있게 해줬으면 합니다. 더 필요하실까요?”


정민이 묻자 민재는 생각에 잠겼다. 민재가 생각하기에도 몇 개는 충분히 현재 회사에서 고려해볼 만한 것이었지만 대표가 허락하지 않을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아… 정민님. 좋은 아이디어가 많으세요, 다 좋습니다. 제가 잘 정리해서 보고할게요. 고마워요. 잘 말씀해주셔서요.”


“보고…. 안 할 거죠? 민재님이 지금 제가 말한 것들을 대표님에게 말을 안 했을리가요.”


정민이 핵심을 찌르는 말을 하자 민재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복잡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휴…. 그럼 이런 거 말고 적어도 이거는 해줬으면 합니다.”


정민은 한숨을 쉬면서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냥 과자 많이 넣어주세요. 인원이 몇 명인데 아직도 20~30명 있던 시절만큼만 과자를 사줍니까?”


“어.. 그거는 지금도 할 수 있을 거예요. 다른 것도 혹시 있으세요?”


민재는 정민의 제안이 다소 어이없었다. 그래서 정민에게 다른 답변을 유도했다.


“아직 부족하군요. 민재님. 대표님이 원하는 것은 어차피 보여주기 식 아니에요? 결혼지원금이나 출산지원금 같은 거 좋겠네요. 뭐 이런 것은 인터넷이나 주변에 찾으면 꽤 많을 거 같네요.”


“흠… 저도 고민이기는 해요. 말씀하신 데로 대표님이 좀 보여주기 식 좋아하는 것도 맞고요.”


“저희 작년이랑 올해 매출 날이 갈수록 성장하고 있고 직원도 계속해서 늘고 있죠. 제가 입사했을 때랑 고작 8개월이 지났는데도 많이 달라졌어요. 하지만 그만큼 그만두는 사람도 많아지고 있어요.”


“아.. 그거 그래서 대표님이 복지를 좋게 하면 그만두지 않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시더라요.”


“무슨 바보 같은 소리를…. 아 죄송해요. 민재님 잘못이라는 건 아니에요. 이 회사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나 무자비할 정도로 많은 업무량, 그리고 이간질을 하는 사람들, 그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니 회사를 떠나는 사람이 많아지는 거예요. 회사의 성장? 그것도 보여주기죠. 언론 보도가 많으니 회사가 좋아지는 것 같지만 안은 극심한 부작용이 생기고 있어요. 보여주기 식 복지? 그게 지금 무슨 소용일까요?”


거침없는 정민의 말에 민재는 다시 할 말을 잃었다. 정민의 말이 맞았기 때문이었다. 민재는 말없이 자기 앞에 있는 밥을 입에 넣으며 생각에 잠겼다.


“미안해요. 불만을 토로하는 직원이 되어버렸네요. 하아…. 민재님.”


정민이 갑자기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민재를 불렀다. 민재는 무슨 일인가 싶어서 정민을 쳐다봤다.


“네? 또 무슨 하실 말 있으세요?”


“저 그만두려고요. 우리 팀장에게도 아직 이야기 안 했는데, 그냥 미리 말할게요. 저 그만둘 거예요. 그래서 좀 말 많이 해봤어요.”



식사 자리를 마친 민재와 정민은 말없이 걸으며 사무실로 복귀했다. 민재한테 회사를 그만둔다는 사람이 한 두 명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오늘 회사가 잘 되자는 취지에서 마련한 자리에서 그만둔다는 사람의 말을 들은 민재는 다소 충격에 빠졌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이 일이 매우 의미 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민재는 정민이 의견을 제시한 복지 아이디어 파일에 정리했다. 그곳에는 지난 열흘간 10명의 직원들의 의견이 담겨있었다. 정민은 그 아이디어를 훑어보며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봤다. 오만가지 생각이 민재의 머릿속을 스쳐갔다. 민재의 속도 모르고 대표는 민재에게 메신저로 다른 회사의 복지 정책이 잔뜩 담긴 파일을 보내줬다. 민재는 파일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잠시 멍하게 파일만 바라보던 민재는 잠시 바람 좀 쇨 겸 자리에서 일어나 옥상으로 갔다. 오늘 같은 날은 회사의 발전을 위해 애쓰는 민재에게는 꽤나 괴로운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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