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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Apr 11. 2022

4월 11일 전재준의 하루

점심 회식

오늘은 회사에서 점심 회식이 있는 날이었다. 우리 회사의 좋은 점 중의 하나였다. 저녁 회식은 하지 않는 것. 그것은 회사의 원칙이었다. 물론 회사의 행사가 있거나 워크숍이 있는 경우에는 가볍게 저녁과 술을 먹는 경우가 있었다. 그 외에는 공식적으로 저녁에 밥을 먹는 경우는 없었다. 

팀장은 2주 전부터 오늘 점심에 회식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꼭 오늘 이어야 하는 이유는 없었으나 다들 되는 시간을 살펴보다 보니 오늘인 월요일에 회식을 하게 되었다. 무엇을 먹을지는 팀원끼리 투표를 통해 결정하였다. 우리 회사의 회식비는 꽤나 넉넉하였기 때문에 다들 좋은 메뉴를 후보로 올렸고 최종적으로 한우가 선택되었다. 정말 오랜만에 고급진 한우 식당에서 고기를 먹게 되었다.

오늘은 월요일이었지만 점심 회식이 있었기 때문에 기분 좋게 출근할 수 있었다. 출근하자마자 이번 주 업무 리스트를 정리하고 주말 사이에 온 제안 메일들을 검토했다. 그리고 주간 회의를 하고 나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다. 회식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조금 일찍 점심시간을 쓰게 되었다. 

우리 팀은 총 6명이었다. 우리 팀에는 미식가가 많아서 저마다 좋은 음식점을 알고 있었다. 이번에 가는 식당은 얼마 전 입사한 정우님이 추천한 곳이었다. 정우님은 고기를 워낙 좋아해서 실제로 고기와 관련된 사업을 준비하다가 잘 안 되어서 우리 회사에 들어온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우리 회사 근처에서 가장 좋은 고기로 유명한 식당을 우리에게 추천했다. 그렇기 때문에 팀원들은 만장일치로 정우님이 고른 식당을 선택했다. 

정우님이 추천한 식당은 정우님이 원래 알고 있던 곳이었다. 정우님은 식당의 지배인과 종업원에게 간단하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종업원의 안내로 우리는 미리 예약해둔 룸으로 이동했다. 아무래도 시국이 시국인지라 개방된 홀에서 먹는 것보다는 룸을 선호했기에 미리 룸으로 예약했다. 

메뉴판이 우리는 등심과 안심 그리고 육회를 골고루 시켰다. 가격이 꽤나 나갔지만 팀장은 정해진 금액을 넘어가면 자신이 쏘겠다고 말했고 우리는 환호했다. 

맨 처음에는 육회가 나왔다. 예쁘게 만들어놓은 계란과 함께 비벼서 젓가락으로 한 점을 집어 입 안에 넣었다. 정말 입 안에서 녹았다. 너무 맛있었다. 점심 회식이라 술을 못 마시는 게 너무 아쉬웠다. 애주가인 팀장도 이런 점을 아쉬워했다. 그는 우리 회사가 저녁 회식을 못 하게 한다는 점을 가장 큰 단점으로 꼽는 사람이기도 했다. 정우님은 자신이 아는 다른 고기집이 있고 거기는 가격이 괜찮은 편이니 나중에 저녁때 거기서 술이랑 같이 먹자고 제안했다. 물론 정식 회식 자리를 제안하는 것은 아니었고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가자는 소리였다. 팀장은 이미 정우님이 마음에 들었는지 ‘콜’을 외쳤다.

다음으로 메인이벤트인 고기가 나왔다. 우리가 굽는 것이 아니라 종업원 분이 직접 구워주시는 것이라 편했다. 이런 자리는 결국 막내나 고기를 잘 굽는 사람이 식사 시간을 희생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특히 나는 예전에 ‘고기를 잘 굽는 사람’, 이른바 ‘굽신’으로 불리던 사람이라 MT를 가거나 회식 자리를 가면 항상 내가 고기를 구워야 했다. 그런데 아마 지금 구성이라면 정우님이 더 잘 구워주셨을 것 같기는 했다. 종업원 분이 어느 정도 고기를 굽고 이제 먹어도 된다고 말하자 정우님은 ‘잠깐 기다려보세요!’라고 외친 후 자신만의 방법으로 고기를 조금 더 구워서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고기가 원래 좋은 것인지 정우님이 마지막에 더 맛있게 구워줘서인지는 몰라도 고기는 정말 천상의 맛 그 자체였다. 

우리는 고기가 너무 맛있어서 자연스럽게 정우님에게 박수를 쳤다. 정우님은 고기를 먹지 않고 우리들의 반응을 살피기에 바빴다. 우리가 모두 만족했다는 것을 확인한 정우님은 그제야 자기 앞에 놔둔 고기를 한 점 먹었다. 정우님은 오늘 고기 상태가 매우 좋다면서 오늘 온 보람이 있다는 감상을 남겼다. 

밥을 먹고 있는데  종업원 분이 시키지 않은 메뉴를 가져다주셨다. 바로 볶음밥이었다. 이 집은 고기판에 밥을 볶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따로 만든 볶음밥을 판매했는데 볶음밥치고는 가격이 꽤 되었다. 그래서 따로 시키지는 않았는데 이 메뉴를 식당에서 서비스라고 가져다주신 것이다. 정우님은 종업원 분에게 지배인님께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해달라고 했다. 팀장은 정우님 덕분에 좋은 서비스까지 받았다며 기뻐했다. 그리고 정우님과 어떤 인연이 있는지를 물었다. 정우님이 하던 일은 납품일이었는데 그 일을 하게 되면서 현재 식당의 사장님과 지배인 등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몇몇 식당은 사업하기 전부터 자주 들리던 곳이었는데 그중 하나가 지금 식당이었다고 했다. 정우님은 번 돈을 먹는 데에만 투자하는 사람이라 먹는 것에 진심이어서 맛있는 곳은 비싸도 어떻게든 돈을 모아서 왔다고 한다. 이어서 정우님은 자신이 하던 사업이 어떻게 되었고 왜 접게 되었는지를 말했다. 우리는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아쉽게도 사업을 접게 되었지만 그는 정말 고기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가 말하던 사업이 잘 되었다면 우리는 같은 팀원이 아닌 가게 사장님과 회식하러 온 회사 사람들로 만났을 지도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추가로 고기를 더 시켰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다들 배가 불러 고기가 남았지만 나를 비롯해 옆자리에 앉은 성원님은 악착같이 고기를 먹으려고 했다. 이렇게 비싼 고기인데 남기는 것은 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팀장은 술이 있었으면 더 먹었을 텐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다른 팀원들은 너무 맛있는 것을 먹어 행복한 표정이었고 혜원님은 오늘 먹은 고기를 예쁘게 사진으로 찍어 자신의 SNS에 올리고 있었다. 정우님은 그런 우리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점심 회식을 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회사 이야기가 나오곤 했는데 오늘은 그렇지 않고 정말 고기 이야기만 했다. 덕분에 새로 입사한 정우님에 대해 더 알 수 있게 되었다. 

점심을 먹고 나오는 길에 팀장은 자신이 커피를 사겠다고 했다. 조금 더 시간이 있었으면 커피숍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했을 테지만 월요일 점심 회식이라 더 이상 시간을 쓰기가 조금 어려웠기에 우리는 테이크아웃만 하고 사무실로 복귀하기로 했다. 우리는 음료를 주문했고 하나 씩 커피 혹은 음료를 들고 거리를 걸었다. 봄날이라 산책하기 무척이나 좋았다. 이대로 퇴근한다면 좋겠지만 우리는 다시 현실로 돌아가야 했다. 

자리에 앉으니 도저히 일이 집중되지 않았다. 몸에서 나는 고기 냄새 때문에 내가 아직 식당에서 고기를 먹고 있는 것 같았다. 정말 반차라도 써서 퇴근하고 싶지만 그 사이에 쌓인 수많은 메시지와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들으니 그럴 수가 없었다. 점심 회식은 즐거웠지만 나는 다시 평범한 회사원의 월요일을 지내고 있었다. 월요병이 다시 밀려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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