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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May 30. 2022

5월 30일 유주형의 하루

퇴근하고 싶어

채용 공고에서 가장 믿지 말아야 할 말은 아마 [야근 강요 안 함] 일 것이다. 물론 이 말처럼 회사는 절대 야근을 ‘강요’ 히지 않는다. 다만 야근을 할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환경을 만들 뿐이다. 야근을 할지 말지는 개인의 ‘자유’다. 그 ‘자유’가 우리가 알고 있는 ‘자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잘 다니던 직장을 호기롭게 그만두고 창업을 한 것은 4년 전의 일이었다. 하지만 창업 2년 만에 사업을 거창하게 말아먹었고 운이 좋게 현재 직장으로 이직하게 되었다. 아는 선배가 있어 추천으로 이곳에 들어온 것이라 사실 나는 채용 공고를 제대로 본 적이 없었지만 우리 회사의 공고에도 [야근 강요 안 함]이라는 문구가 있었다. 이 문구를 발견한 것은 내가 회사에 취직 후 한참 야근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때 나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올 뻔했었다. 

나는 회사의 대표로 있을 때부터 가급적 야근을 하지 않는 회사로 만들겠다는 꿈이 있었다. 물론 창업 초창기라 야근이 잦을 수밖에 없었지만 직원들한테는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회사는 꽤나 규모도 있고 직원도 많은 편인데도 여전히 야근이 잦은 곳이었다. 야근은 물론 ‘선택’이었지만 야근을 ‘선택’해야만 하는 암묵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일이 너무 많아 정시에 퇴근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오늘도 월요일 아침부터 일이 미칠 듯이 쏟아졌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처내기도 바쁜데 대표는 자꾸 새로운 일을 시켰다. 데드라인조차도 빡빡한 일이 많았다. 특히 나는 회사에서 팀장으로 있었기 때문에 실무 외에도 조직을 관리해야 하는 임무도 있었다. 최근 팀원 중에 다툼이 있어 이것을 해결해야 했기 때문에 업무 시간에는 내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런 와중에 다른 팀이나 대표가 미팅을 하자고 하면 바로 불려 나가야 했다. 일이 너무 몰려서 8시간이라는 업무 시간이 지나치게 빡빡해 보일 정도였다. 

정규 업무 종료 시간인 6시가 지나면 그때야 회사는 본격적으로 일하는 것 같을 때가 많았다. 야근이 너무 잦으니 오히려 평소 업무 시간에 소홀한 사람도 많았다. 그러니 악순환이 되는 것 같았다. 회사에서 야근 수당을 주고 있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일부러 야근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야근을 하지 않으면 업무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다들 이 회사의 구조에 적응했을 뿐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고 6시가 지나면 ‘이제 일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적어도 야근 시간 중에는 보통 회의는 하지 않아서 업무를 방해받을 것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을 마치고 나니 어느새 오후 11시가 되었다. 아직 회사에는 꽤나 많은 사람이 남아있었다. 내일은 또 외부 미팅이 있어서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지금 시간에 퇴근해야 하는 사실이 너무 힘들었다. 창업을 했을 때는 내 일이기 때문에 야근을 하는 것이 즐거웠고 그마저도 시간이 모자라다고 생각했는데 직원이 되고 나니 그냥 짜증만 날 뿐이었다. 물론 대표나 다른 임원진의 마음이 이해는 가기는 했지만 아닌 건 아닌 것이었다. 

조금 더 일을 해야 할 것이 남아있지만 나는 오늘 중에 퇴근하고 싶어서 컴퓨터를 끄고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집까지는 1시간 넘게 걸리기 때문에 나는 시간 상 내일 도착할 것이다. 벌써 몇 년째 별과 달만 보고 퇴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업무 시간 안에만 모든 일을 마치고 행복하게 사는 법은 정녕 없는 것일까? 야근 없는 세상을 꿈꾸던 나는 야근이 당연한 세상에서 살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신세를 한탄하며 월요일에 퇴근하고 화요일에 집에 도착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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