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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Jun 01. 2022

6월 1일 김성현의 하루

꿈속에서 만난 형

꿈을 꾼다. 평소에 꾸는 꿈을 모두 기억하지는 못 하지만 아주 가끔가다 기억에 남는 꿈이 있다. 대부분 꿈이라는 것을 인지 못 하지만 단 하나의 꿈은 내가 꿈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꾸고 있다. 바로 죽은 형에 대한 꿈이었다.


형은 내가 아주 어릴 적 죽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몸이 안 좋았던 형이라 내 기억 속의 그는 항상 병원 있었다. 형이 죽은 날, 나는 그게 형을 영원히 보지 못 한다는 뜻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냥 형이 조금 더 먼 병원으로 갔다고만 생각했다. 언제라도 병문안을 가면 형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형에 대한 꿈을 꾼 것은 내가 10살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형이 10살에 죽었으니 나와 형의 나이가 같아진 시점이었다. 꿈속에서 형은 울고 있었다. 나는 오랜만에 형을 봤지만 그것이 신기하지 않았다. 꿈 속이라 그런지 항상 형이 옆에 있는 것처럼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형한테 왜 우냐고 물었고 형은 어떤 것도 대답하지 않았다. 잠에서 깨고 나서 나는 부모님한테 형을 봤다고 소리쳤다. 내가 갑자기 죽은 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니 부모님은 나를 걱정하면서도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 엄마는 나를 폭 안아줬다. 엄마는 서글프게 울고 있었다. 죽은 형이 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날 이후 나는 몸이 아파 잠시 입원을 하게 되었다. 부모님은 혹시나 남은 아들마저 어떻게 될까 봐 계속해서 울고 있었다. 다행히 내 몸은 금방 회복되었고 바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아마 꿈에서 형이 울었던 것은 내가 곧 아플 것이라는 일종의 경고가 아니었을까 한다. 물론 이를 깨달은 것은 한참 지나서였다. 

그 이후로도 형은 가끔가다가 내 꿈에 계속 나왔다. 형은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나와 함께 놀아주는 친절한 형의 모습일 때도 있었고 불같이 화를 내는 모습일 때도 있었다. 그리고 용으로 변해 나와 함께 하늘을 같이 날기도 했다. 형이 꿈에 계속 나오자 나는 부모님에게 이 일을 말했지만 부모님은 죽은 사람이 꿈에 나오는 것이 그리 좋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며 나를 크게 걱정했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형이 꿈에 나온 이야기를 잘하지 않게 되었다. 


중학교 때까지 계속해서 형에 대한 꿈을 꿨지만 그 이후로 한동안 형은 꿈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나는 어른이 되었고 군대까지 다녀와서 이제 사회인이 되었다. 첫 회사에 입사하기 전날, 아주 오랜만에 꿈에 형이 나왔다. 나는 이제 28살이 되었지만 형은 여전히 10살이었다. 이제 형이라고 부르기엔 아주 작은 꼬마였을 뿐이었다. 형은 나를 보고 박수를 쳐줬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형과 함께 오랫동안 이야기했다. 나는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형에게 말했고 형은 가만히 듣고 있었다. 이야기를 한참 듣고 있던 형은 갑자기 나에게 꽃을 내밀었다. 나는 형에게 감사를 표하며 꽃을 받았고 그 장면에서 꿈은 끝났다. 아마 형은 첫 출근하는 나를 축하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첫 출근길, 걸어가고 있는데 익숙한 꽃 하나가 보였다. 꿈에서 본 그 꽃이었다. 사실 꽃 자체는 흔했지만 나는 너무나 신기했다. 마치 형이 현실에서 나에게 선물을 준 것 같았다. 그 이후로 나는 출근할 때마다 꽃이 있는 곳을 향해서 인사하고 있다. 마치 형이 그곳에 있는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 나는 36살이 되었다. 그 해에는 결혼을 앞두고 있었고 결혼 전날, 또 꿈에 형이 나왔다. 형이 나를 축하해줄 것이라 생각했지만 형은 이상하게 울고 있었다. 꿈은 상당히 불길했지만 결혼식은 무사히 마쳤다. 우리의 결혼 생활은 아주 행복했고 내 나이 38살 때 아이가 태어났다. 우리 가족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형은 그날 이후 내 꿈에 잠시 나타나지 않았다. 


내 나이가 45살이 되었을 때, 나는 이혼을 했다. 아내가 없는 집을 보고 나는 문득 결혼 전날 꿨던 꿈이 떠올랐다. 그리고 형이 괜히 원망스러웠다. 형이 나에게 저주를 내린 것 같았다. 이대로 다시는 형이 꿈에 나타나지 않기를 바랐다. 


47살. 내 아들이 10살이 되었을 때, 형은 다시 내 꿈에 나왔다. 형은 이제 내 아이와 같은 나이였다. 나는 형을 보고 싶지 않았다. 형이 나오면 꿈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나는 빨리 꿈에서 깨고 싶었다. 나는 어떻게든 꿈에서 깨려고 몸부림쳤고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혹시나 아이에게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닐까 해서 아이가 있는 방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아이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나를 보고 아이가 오히려 나를 위로해줬다. 


60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리고 64세가 되었을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형은 내 꿈에 나타나지 않았다.


내 나이는 이제 77살이 되었다. 형이 죽은 지도 어느새 70년이 지나있었다. 아들은 나와는 달리 화목한 가정을 얻어 잘 살고 있고 나는 가끔 집에 오는 손주들의 재롱에 기뻐하는 할아버지가 되었다. 아들네 가족이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면 나는 집에 혼자 남겨져있었다. 옛날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몸이 점점 무거워지고 기억조차 가물가물해지고 있기 때문에 더욱 형이 보고 싶어졌다. 내가 이기적이지만 형이 다시 보고 싶어졌다. 


오랜 기억을 더듬어서 첫 출근을 하던 길로 가보았다. 아주 예전에 형이 줬던 꽃을 보면 형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거리는 완전히 변해있었다. 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새로운 것들을 파는 가게들로 변해있었다. 세상은 무척 많이 바뀌었다. 나는 갑자기 변해버린 세상이 너무나 두려워 그대로 바로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와 바로 잠에 들었다. 꿈속에서 아주 익숙한 풍경이 펼쳐졌다. 내가 어릴 적 살던 동네였다. 어릴 적에 같이 놀던 친구들이 그 당시의 모습으로 나와 함께 뛰어다녔다. 그리고 그 무리 중에 10살짜리 아이가 한 명 보였다. 바로 형이었다. 형은 나를 보고 밝게 웃어주었다. 할아버지와 손자 같은 모습이지만 나는 오랜만에 형과 재미있게 놀았다. 꿈속 세상이라 그런지 관절도 안 아프고 몸이 훨씬 가벼워진 것 같았다. 형은 나에게 지금 모습은 너무 힘들지 않냐고 물었다. 그러더니 내 모습은 어느새 형과 똑같은 10살 정도의 아이가 되어있었다. 나는 너무나 기뻤다. 다시 형과 함께 신나게 놀았다. 그리고 형은 예전처럼 거대한 용으로 변신해서 나에게 세상을 구경시켜줬다. 상쾌하고 좋은 기분이 들었다. 꿈에서 깨고 싶지 않았다. 이런 기분은 정말 오랜만이었기 때문이었다. 


저 멀리 거대한 문이 보였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문을 활짝 열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문을 향해 손을 뻗었고 그 모습을 본 형은 갑자기 내 손을 때렸다. 그리고 형은 무서운 표정으로 나를 노려봤다. 형은 나에게 아직은 안되니까 돌아가라고 소리쳤다. 그 소리와 함께 내가 서있던 땅이 꺼졌다. 땅이 무너지면서 나는 꿈에서 깼다. 


꿈에서 깨니 다시 쓸쓸한 집이었다. 아무래도 그 문은 죽음과 관련된 문인 것 같았다. 그 문을 열었으면 나는 어쩌면 다시는 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래, 지금은 때가 아니겠지. 나도 아직은 죽고 싶지 않다. 


앞으로도 죽은 형에 대한 꿈은 계속 꾸게 될 것 같다. 아무래도 형은 나와 놀고 싶어서 나의 꿈 세계를 맴돌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 늙어버린 나에게 형은 나를 위로해주고 함께 놀아줄 수 있는 존재인 것 같다. 언젠가 꿈속의 문을 열고 나면 나는 영원히 형과 놀 수 있는 세계로 갈 것이다. 만약 그곳에 가면 형에게 내 꿈에 계속 나타난 이유를 물어볼 것 같다. 나에게 고통과 기쁨을 준 이유가 무엇인지, 왜 내 곁을 맴돌았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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