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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May 31. 2022

5월 31일 김정미의 하루

인턴

지난 1월부터 하고 있던 스타트업에서의 인턴이 오늘부로 종료된다. 올해로 22살인 나는 학교 공부가 너무 재미없고 알바보다는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싶어 무작정 여러 회사에 인턴을 지원했었다. 다양한 회사를 넣었지만 지금 다니던 회사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스타트업이었고 최근에 투자를 많이 받고 있던 기업이라 배울 것이 많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내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앱을 서비스하고 있었기 때문에 팬심으로 지원한 것도 있었다. 

처음 면접을 보러 갈 때 너무나도 떨렸던 것이 기억이 난다. 내가 즐겨 사용하던 서비스를 하는 곳에서 나한테 면접을 보라고 제안한 것이 신기했고 굉장히 자유분방할 것 같은 사무실 분위기가 생각보다 삭막한 것 같아서 놀랐다. 내가 면접을 볼 때 면접관은 총 2명이었다. 한 명은 나와 일할 마케팅 팀장이었고 한 명은 기획팀장이었다. 내가 지원한 직군이 마케팅인데 기획 팀장이 온 것이 의아했지만 회사에서는 협업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가장 밀접하게 일하는 팀 사람들이 면접관으로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기왕 기획팀장을 본 김에 나는 서비스를 위한 아이디어를 몇 개 제시했다. 거창한 것은 아니고 사용자 입장에서 아쉬웠던 점을 개선하자고 이야기한 것이었는데 말을 하고 나니 선을 넘은 것은 아닌가 해서 아차 싶었다. 하지만 기획팀장은 내가 제시한 아이디어를 메모하고 궁금한 것도 물어봤다. 그리고 그는 이 아이디어를 내부 검토하고 면접 합격 유무와 상관없이 업데이트되면 꼭 알려주겠다고 나에게 말했다. 회사가 유저를 대하는 태도를 볼 수 있어서 나는 이 회사가 더욱 마음에 들었다. 내가 정규직으로 다닐 회사는 아니지만 이곳에서 경험을 쌓게 되기를 엄청 바랐다. 

며칠 후 나는 합격 소식을 전달받았다. 날아갈 것 같았고 부모님은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나를 걱정하시면서도 자랑스럽게 생각하셨다. 출근은 새해 첫 영업일부터 하게 되었다. 인사팀에서는 인턴 기간은 3개월이었지만 상황에 따라 연장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첫 출근을 할 때는 면접을 볼 때보다 더욱 떨렸다. 일을 하게 된다는 것이 기대가 되었지만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을까가 걱정되었다. 그러나 나의 걱정과는 달리 동료 직원들은 나에게 굉장히 잘해주었다. 우리 회사의 평균 연령은 꽤 낮은 편이었는데 막내 직원이 나보다 겨우 1살이 많을 정도였다. 우리 팀 팀장은 나보다 6살 정도가 많았고 무엇보다 회사의 대표님은 나보다 12살이 많았다. 대부분 20대, 30대로 이루어져 있어서 흔히 말하는 꼰대는 많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물론 이것은 첫날 느낀 감정이었고 실제로 다니면서 세상에는 젊은 꼰대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회사는 꽤나 체계가 잡혀있는 곳이었다. 회사에서 친해진 선배의 말에 따르면 2년 전까지만 해도 회사는 체계가 전혀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1년 전부터 조직 문화 및 체계를 잡는 이사님이 와서 회사의 내부 시스템을 개선하는 일을 했다고 한다. 이사님은 대표님보다 5살이 많은 사람으로 회사에서 가장 고 연령자였다. 그래 봤자 그의 나이는 고작 39살이었다. 여하튼 그분이 온 덕분에 외적으로 성장만 하던 회사는 내적으로도 발전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입사 첫날은 회사의 시스템을 숙지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는 서비스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신기했다. 사무실을 계속 돌아다니면서 다른 사람들과 인사를 해야 했고 그럴 때마다 그 사람들은 나를 진심으로 환영했다. 회사의 분위기가 참 좋은 것 같았다. 둘째 날은 팀장 면담을 진행했다. 원래는 첫날 해야 하는 것인데 너무 바빠서 말을 하지 못했다며 팀장은 나에게 미안해했다. 팀장은 굉장히 차분한 성격이었다. 이제 28살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굉장히 젊은 나이에 팀장 자리에 오른 것이었지만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항상 인지하고 그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팀장은 나를 굉장히 아꼈다. 그녀 역시 나처럼 대학교 시절 인턴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무엇을 배우고 싶어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팀장이라고 하지만 언니 같을 때가 많았다. 무엇보다 우리 언니와 그녀가 동갑이라 더 그렇게 느껴진 것 같았다. 그녀는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업을 했고 지금 회사에는 작년에 스카우트되어서 팀장 자리를 처음 맡고 있어 자신이 부족할 수도 있으니 불편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자신에게 말하라고 했다. 나는 그런 팀장이 너무 감사했다. 

팀장과의 면담이 끝나니 이번엔 기획 팀장이 나를 불렀다. 나는 의아해서 우리 팀장에게 내가 가도 되는 것인지 물었고 팀장은 괜찮다고 했다. 

기획 팀장은 직급은 팀장이라 불리지만 실제로는 회사의 지분까지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대표님과는 같은 학교를 나왔고 기획 팀장이 오히려 1살 선배였다. 아이디어의 대부분을 기획 팀장이 냈기 때문에 회사에서는 이른바 실세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기획 팀장은 어떨 때 보면 굉장히 나이스 한 사람이었지만 어쩔 때 보면 굉장히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사람이었다. 또한 여자를 밝혀서 회사에서 이런저런 안 좋은 소문이 들리는 사람이라 나는 그의 실체를 알고 나서는 가급적 그를 피하고 싶었다. 아무튼 이 날 기획 팀장이 나를 부른 이유는 내가 면접 때 제시한 아이디어가 너무 좋아서 실제 개발에 들어갈 예정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마케팅 직원이었지만 종종 나에게 기획 관련 업무 보조를 시킬 수도 있다고 했다. 그때 나는 이런저런 경험을 쌓기 위해서 이 회사에 온 것이라 그런 것도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 이후로 나는 마케팅 일도 하면서 어떤 날은 기획팀 보조도 하게 되었다. 두 가지 일 모두 재미있었다. 기획팀장이 싫어진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지만 그 사람 외에 다른 직원들은 굉장히 친절했고 서로 생각하는 결도 맞아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었다.

3개월 인턴이 끝나갈 때쯤 팀장은 나에게 인턴 연장을 제안했다. 어차피 1학기를 휴학하기로 했기 때문에 나는 흔쾌히 허락했다. 회사 일도 재미있고 기왕 하는 거 반년 이상은하고 싶었다. 그리고 욕심 같아서는 졸업 후 회사 정직원으로 취업하고 싶었다. 

그렇게 2개월 더 연장해서 나는 5월 31일까지 근무를 하기로 했다. 일은 여전히 재미있었지만 회사에는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얼마 전 서비스 대규모 업데이트가 있었는데 치명적인 이슈가 생기면서 유저들의 불만이 폭주하고 언론에까지 보도되는 사건이 있었다. 공식적으로 회사에서 사과를 하긴 했지만 한 번 떠난 유저의 마음을 되돌리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유저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마케팅을 해야 했다.

회사의 외적인 이슈는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었지만 더 큰 문제는 내부의 이슈였다. 이곳은 젊은 조직이지만 은근히 정치적인 곳이기도 했다. 특히 창업 멤버끼리도 계파가 나누어져 있었기 때문에 경력직으로 돌아온 시니어급들은 각자 자신의 라인을 선택해야 했다. 창업 멤버들은 대부분 동기, 선배, 친구들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조금씩 그들끼리 사이가 안 좋아지면서 정치적인 견제까지 하고 있었다. 우리 팀장 같은 경우는 그런 것에서 최대한 멀어지려고 노력했지만 내부적으로 압박이 심했던 것 같다. 최근의 사건 때문에 팀장을 공격하는 목소리가 많아졌고 우리 팀의 입지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우리 팀은 아니지만 정치적인 공격을 받은 다른 팀에서 집단 퇴사를 하는 등 내부적으로 굉장히 혼란스러운 시기가 시작되었다. 

특히 방점을 찍은 것은 기획 팀장이었다. 여자 문제로 말이 많았던 기획 팀장은 결국 이로 인해 큰 실수를 저질렀고 회사의 핵심 멤버이자 자기의 선배라서 그를 봐주고 있던 대표님마저 폭발하게 만들었다. 기획 팀장의 행동은 내부에서 처리하는 식으로 끝내서 외부에는 말이 세어 나가지는 않았지만 나는 회사의 대처에 실망했다.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실망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아무튼 이런저런 일이 겹치면서 나는 회사에서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었다. 5월 중순 또다시 인턴 연장 제안이 들어왔지만 거절했다. 거의 5개월. 이만하면 되었다고 생각했다.

오늘 모든 일을 정리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팀원들과 헤어질 생각을 하니 슬퍼졌다. 나의 첫 직장, 첫 동료들이라 언제 어디에 있든 간에 그리울 것 같다. 특히 때로는 친언니처럼 나를 챙겨준 팀장과의 이별도 아쉬웠다. 이대로 헤어지기는 아쉬워서 오늘은 팀원들과 회식을 하기로 했다. 힘든 일도 많았지만 재미있었고 내 인생에서 영원히 기억될 추억이 돼준 그들과 회사에게 나는 항상 감사할 것이다. 내일부터는 다시 회사의 유저로 돌아가서 유저로서 그들을 응원할 것이다.


안녕, 나의 첫 회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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