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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Jun 06. 2022

6월 6일 주영수의 하루

손녀

영수는 오늘 휴일을 맞아 오랜만에 손녀를 만났다. 여느 할아버지처럼 영수도 손녀를 매우 아꼈다. 특히 영수는 원래 하나뿐인 아들을 아주 늦은 나이에 얻었는데 그 아들 역시 결혼 후 늦은 나이에 딸이 태어났다. 그래서 영수는 손녀가 무척이나 사랑스러웠다. 영수는 자식 복이 없다고 자신을 탓하던 시절이 바로 얼마 전 같은데 이제는 소중한 손녀까지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하지만 영수는 손녀를 자주 볼 수는 없었다. 아들이 제주도에서 근무를 하게 되며 멀리 떨어져 살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아내도 죽고 홀로 적적하게 집에서 지내는 아버지가 안쓰러웠던 아들은 거의 매일 영수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었다. 그럴 때마다 영수는 손녀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했고 아들은 딸과 아버지가 통화할 수 있게 했다. 일반 전화만으로는 아쉬움이 남아 아들은 영수에게 태블릿도 선물하며 영상 통화를 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그 이후 영수는 영상으로 손녀가 커가는 과정을 볼 수 있었다. 영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손녀를 보고 싶었지만 혹시나 시아버지의 잦은 통화가 며느리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아들이 먼저 전화를 걸 때까지 꾹 참았다. 

오늘은 오랜만에 아들네가 영수를 찾아온 날이었다. 영수는 몇 년 사이에 고생을 해서 삭아버린 아들의 얼굴이 안쓰러웠다. 그리고 연고도 없는 제주도에서 살아야 하는 며느리의 처지도 안타까웠다. 영수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손녀가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으며 영수에게 안겼다. 어느새 6살이 된 손녀는 영상으로 거의 매일 봤던 사이라 할아버지를 무척 따랐다. 영수는 손녀와 함께 어디라도 가고 싶었지만 어딜 가도 사람이 많아 손녀의 건강을 걱정해 그냥 집에서 손녀와 놀기로 했다. 

영수는 손녀를 위해 장난감 인형을 준비했다. 손녀가 굉장히 좋아하던 캐릭터였기에 손녀는 행복해했다. 미리 아들이 정보를 줬기 때문에 영수가 준비할 수 있었다. 손녀는 보답으로 영수에게 소꿉놀이를 하자고 제안했다. 영수는 손녀가 마련한 자리에서 아이의 눈높이 맞춰 놀아줬다. 아들은 딸이 힘이 너무 넘쳐서 영수가 힘들까 걱정했지만 영수는 괜찮다고 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80살이 넘은 영수가 6살 아이의 넘치는 에너지를 감당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영수는 손녀 앞에서 힘든 내색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아이와 이렇게 놀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더욱 그랬다. 

영수의 건강에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이가 나이인만큼 만약의 상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최근 영수의 소원이 있다면 손녀가 대학교를 가는 것을 볼 때까지는 살고 싶다는 것이었다. 앞으로 대략 14년이 남았으니 그때 영수는 95세가 넘었을 때였다. 영수는 욕심이라는 것은 알지만 손녀가 무사히 성인이 되는 것을 보고 싶었다. 

아들은 점차 나이를 먹어가는 영수가 걱정되었다. 게다가 아내도 다른 자식도 없이 혼자 있는 아버지를 언제까지 두고만 볼 수는 없었다. 아내와 상의를 이미 마친 아들은 영수에게 제주도살이를 권했다. 오늘 아들 내외가 영수를 만나러 온 목적이기도 했다. 영수는 늙은 자신을 또 모셔야 하는 아들 내외에게 폐를 끼치는 것 같아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아들은 계속해서 영수를 설득했다. 

아들의 말대로 영수는 더 이상 혼자 지내는 것이 힘들어진 상황이었다. 아내도 몇 년 전 세상을 떠났고 영수 본인이 막내였기 때문에 형제도 남지 않았다. 더 이상 지금 사는 곳에 있을 이유도 없었다. 단지 폐를 끼치는 것이 영수는 싫었을 뿐이다. 영수는 손녀의 재롱을 보며 아들에게 조금만 더 생각해보고 말하겠다고 했다. 아들과 며느리는 생각할 것이 무엇이 있냐며 강하게 이야기했다. 영수는 대답을 안 했다. 

아들네는 다시 제주도로 가야 했기 때문에 이른 저녁을 먹고 영수의 집에서 나왔다. 영수는 아들네가 제주도에서 올라와서 하루도 안 있고 가는 것이 안쓰러웠다. 아들은 조만간 이사 관련해서 다시 연락을 드리겠다고 영수에게 말했다. 영수는 아들에게 알겠다고 하며 졸려하는 손녀에게 인사했다. 손녀는 “할버지 안녕히 계세요”라며 배꼽인사를 했다. 영수와 아들네는 그 모습을 보고 귀여워하며 웃었다. 

아들네가 가고 텅 빈 집을 보니 영수의 마음이 허전해졌다. 사실 영수의 아들이 영수에게 제주도로 가자고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이곳에 있겠다고 고집을 부렸고 아들이 불러주겠다는 가사도우미도 거절했다. 영수는 아내가 없어도 자신 혼자서 아직 집안일이나 끼니를 챙겨 먹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몸은 점점 무거워지고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나이가 되었다. 게다가 점점 커가는 손녀를 자신이 돌봐준다면 아들과 며느리가 자신의 일에 보다 집중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영수는 생각했다. 이렇게 생각한 영수는 아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제주도로 내려가마… 그리고 미안하다…”


 메시지를 보낸 영수는 조용히 모든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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