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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Jun 11. 2022

6월 11일 김성후의 하루

싫음의 표현

“싫은 것을 표현하는 것도 중요해요!”



언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어린 시절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던 것 같다. 같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내가 살면서 이런 말을 제대로 하는 사람을 잘 보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선 ‘싫다’라고 말하면 안 되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생님이 이런 말을 했겠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중학교 때 정말 ‘싫어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어쩌다가 그런 말을 하게 되었는지는 도저히 기억이 안 나지만 내 머릿속에는 그 말을 하자마자 내 귀싸대기를 때리는 선생님의 얼굴만 떠오른다. 그때 처맞고 나서 생각했다.


‘아… 다시는 이러지 말아야지….’


‘싫다’고 말하지 않게 되니 나는 어느새 모범생이 되어있었다. 예스맨이 되니 학교는 적응하기 정말 좋은 곳이었다.


“학생이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


이 말을 들으면 정말 그대로 행동하면 된다. 학교라는 망할 시스템은 공략법이 아주 쉽다. 그냥 공부만 잘하면 내 인성이 어떻든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다. 심지어 공부를 너무 잘해서 대학교마저 좋은 곳을 가면 현수막에 이름까지 올려준다. 이른바 업적 달성이라고 할까?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라는 팔자 좋은 말은 진짜 정답이다. 여기에 선생님 말까지 잘 들으면 그야말로 우주 최강의 모범생이 탄생하는 것이다. 나는 이 공략법대로 학창 시절을 보냈고 좋은 대학까지 가자 학교 선생님들은 앞다투어 나를 칭찬했다.


“역시 성후가 해낼 줄 알았어.”


“성후가 참 똑똑하고 착해.”


“너는 내가 가르친 학생 중 제일 똑똑한 애다.”


공부를 잘하는 게 최고인 교육 기관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를 보내는 학생들의 삶을 전담하고 있으니 공부만 잘하는 인성 쓰레기들이 생겨나는 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이 말을 하는 나도 그리 인성이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여하튼 대학교를 가서도 예스맨으로 사는 것은 이래 저래 도움이 되었다. 이젠 공부를 꼭 잘할 필요는 없었지만 누군가의 말에 토를 달지 않고 행동하는 것만으로도 대학 생활은 편하게 할 수 있었다. 유일하게 ‘싫다’를 표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그것은 당시 학생회에서 주최하던 각종 시위, 학생 운동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싫어요’를 표현할 수 있는 이런 집회에 참여하는 것을 ‘싫어했다.’ 그런 일에 관심이 없기도 하거니와 내 인생이 도움이 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군대에 가니 이젠 ‘싫어요’를 표현하면 죽을 수도 있는 환경에 놓이게 되었다. 여기서는 정말 군말 없이 선임의 말을 들었고 내가 맡은 일만 열심히 했다. ‘대체 이걸 왜 하지?’라는 생각은 사치였다. 그렇게 생활하니 군대 생활도 비교적 쉽게 끝낼 수 있었다.


사회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내가 있는 조직은 굉장히 보수적인 곳이라 ‘싫어요’는 절대 용납이 되지 않았다. 솔직히 나는 사회에서도 이럴 줄은 몰랐다. 주어지는 업무가 가능성이 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되게 하는 것이 내 임무였다. 가끔 회사 내에서 ‘싫어요’나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들의 의견은 묵살되거나 결국 좌천되는 결과를 많이 봤다. 그렇기에 나는 굳이 무리해서 반박할 필요는 없었다. 미팅 자리에서도 우려되는 부분이 있더라도 어떻게 해내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나도 꼰대가 되어있었다. 부하 직원이 ‘싫다’라는 것을 표현하면 그렇게 화가 날 수가 없었다. ‘요새 젊은 직원들은 다 그래’라고 나를 진정시키는 동료도 있었지만 나는 그런 것이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았다. 상사가 시키면 ‘알겠습니다!’라고 해야 하는 것이 정상이 아닌가? 아무리 사회가 변했다고 하지만 나는 그런 것은 용서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말하니깐 나도 정말 개꼰대네.


‘싫다고 말해도 되는 용기’는 교과서나 아주 대단한 업적을 남긴 위인들이나 하는 영역에 불과한 것 같다. 우리처럼 소시민들은 그저 예스만 외쳐주는 것이 최고다. 처음에는 반발감이 들겠지만 계속해서 이렇게 살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저 그렇게 살면 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그런 구조가 되었다.


나는 오늘도 주말에 출근했다. 그 어떠한 반대의 말도 못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주말에 출근하라는 말에 군말 없이 나온 것이었다. 솔직히 나라고 짜증이 안 나는 것은 아니지만 평생을 이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나는 오늘도 수긍하고 회사에 충성하는 모범 직원으로 살고 있다.


“싫은 것을 표현하는 것도 중요해요!”


이 말을 나에게 했던 선생님, 본인은 어떻게 살았을까? 나와 결국 똑같은 삶을 살았고 지금도 살고 있지 않을까? 이 말이 통용되는 사회는 무엇일까? 모두가 싫다고 한다면 사회가 돌아가기는 할까? 전혀 모르겠다. 이렇게 살아보지를 않았으니…. 나는 늙어 죽을 때까지 아마 단 한 번도 ‘싫다’라는 말을 하지 못할 것 같다. 이렇게 사는 게 솔직히 너무 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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