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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Jul 28. 2022

7월 28일 최병재의 하루

죽 이야기

나이가 들면서 안 좋아진 것 중 하나는 예전처럼 먹지 못 한다는 것이다. 살이 너무 쪄서, 몸을 만들기 위해 밥을 못 먹는 것이 아니라 그냥 소화 자체가 되지 않아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예전에 먹었던 양만큼 시켜도 절반 정도 먹으면 더 이상 먹기가 힘들어졌다. 피자 1판, 치킨 한 마리를 가볍게 먹을 수 있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피자는 2조각, 치킨은 1/3도 먹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양은 줄었지만 살은 빠지지 않았다. 뭔가 억울했다.

양만 줄은 것이 아니라 소화가 잘 안 되는 때도 많아졌다. 어쩌다 회식을 하면 다음 날이면 항상 배가 아팠다. 혹시나 싶어서 건강 검진을 했지만 특별한 이상이 발견되지는 않았다. 다행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아프긴 하니까 조심해서 먹어야 했다.

어제도 회사에서 회식을 했다. 음식은 잘 들어가지 않지만 술은 잘 들어갔다. 술을 깨기 위해 평소보다 안주를 많이 먹었다. 이미 배가 너무 부른 상황인데도 계속해서 씹을 거리를 찾았다. 그렇게 술을 마시고 집에 가니 속이 안 좋았다. 결국 나는 새벽에 화장실 변기를 부여잡고 구토를 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났는데도 몸은 여전히 나아지지 않았다. 연차를 쓰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밀려왔지만 오늘은 할 일이 많았기 때문에 쉴 수가 없었다. 결국 출근을 해야 했고 회사 근처에 있는 병원에서 간단히 약을 처방받았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니 체한 것은 어느 정도 내려왔다.

점심시간이 되자 동료들은 제육이나 피자, 햄버거, 냉면, 쌀국수 등 다양한 메뉴를 이야기하며 오늘 무엇을 먹을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음식들의 이름을 들으니 속이 매스꺼웠다. 나는 아직 밥을 먹으면 안 되겠다 싶어서 동료들에게 이야기하고 회사 근처의 죽집을 찾았다.

죽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먹을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는 것 같았다. 회사 근처에 이름이 많이 알려진 죽집을 왔는데 메뉴가 다양했다. 나는 아플 때 아니면 죽을 먹지 않았기 때문에 모르겠지만 음식 중 하나로 죽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죽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자극적인 죽들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지금 그것을 고를 수는 없었기 때문에 나는 가장 기본이 되는 전복죽을 시켰다.

죽의 양은 꽤나 많았다. 나 혼자 도저히 먹지 못 할 것 같은 양이었다. 죽을 끄적거리면서 먹는데 그렇게 맛있지는 않았다. 죽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그냥 내가 입맛이 없었던 것 같다. 나는 천천히 죽을 먹었다. 반찬들과 함께 꼭꼭 씹어 먹었다. 하지만 오래 먹을 수는 없었다. 물렸기 때문이었다.

죽을 먹고 있는데 일반 음식들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빨리 속이 괜찮아지면 그런 음식들을 먹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얼마 먹지도 못 할 음식인데 그런 음식들이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죽을 절반 이상 남기고 가게에서 나왔다. 왠지 모르게 내 모습이 처량하게 느껴졌다. 술을 아무리 마셔도, 밥을 아무리 많이 먹어도 다음 날에 쌩쌩하던 그 시절이 그립다. 지금의 나는 죽 하나도 제대로 못 먹고 조금 과음했다고 해서 다음 날 골골거리는 사람이 되었다. 병원에서는 특별한 이상은 없다고 하고 그저 이 모든 것의 원인이 늙음에 있다는 것이 슬펐다. 날이 너무 더워 땀이 뻘뻘 나는 내 모습을 보니 더 쓸쓸하였다. 그렇다고 나이가 아예 많은 것도 아닌데 어쩌다 이런 꼴이 되었을까 싶다. 죽 하나를 먹어도 슬퍼지는 나이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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