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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Aug 20. 2022

8월 20일 서상진의 하루

Never Gonna Let You Go

매우 우스운 이야기지만 학창 시절 나는 어른이 되면 매우 절절한 사랑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남자 중학교, 남자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이성이라고는 만날 기회가 전혀 없었지만 나는 언젠가 어른이 되면 다른 사람들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생길 것이라고 믿었다. 주변에서는 학창 시절부터 인연을 만들어 연애를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숫기가 없던 나는 이성을 만날 기회를 스스로 만들지 못했다. 그러면서 모든 것을 어른이 된 이후로 미뤘다. 물론 이 말은 모두 핑계였다. 객관적으로 나는 인기가 많은 타입은 아니었다.

고등학교 시절, 영어 선생님은 수업 시간 전에 팝송을 들려주곤 했다. 선생님의 취향은 굉장히 올드했는데 가장 최근 음악이 80년대 음악일 정도였다. 대부분은 우리가 모르는 노래였고 우리는 선생님이 영어 노래를 틀어줄 때는 책상에서 졸았다. 선생님도 그 시간만큼은 우리가 하고 싶은데로 행동하게 내버려 두었다. 고작 5분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말이다.

아주 가끔 선생님이 틀어주는 노래 중에는 내 취향인 곡들도 있었다. 선생님은 노래를 틀어줄 때 제목이 뭔지 항상 말해줬지만 딱 한 번만 이야기해줬기에 가수가 누구인지, 노래 제목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수업이 끝나면 선생님에게 수업 전에 들었던 노래가 무엇이었는지 묻곤 했다. 선생님은 나보고 수업에 대한 질문은 안 하고 맨날 노래 질문만 하냐고 핀잔을 주었지만 농담에 가까운 말이었다. 애초에 선생님은 우리를 혼내는 타입은 아니었다. 

그 시절, 선생님이 들려준 노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곡은 브라질의 한 뮤지션이 부른 노래였다. 그의 이름은 세르지오 멘데스였다. 보사노바의 제왕이라 불리는 뮤지션이었는데 선생님이 들려준 노래는 아주 감미로운 발라드곡, “Never Gonna Let You Go”이었다. 그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그냥 흔한 미국 뮤지션의 음악인 줄 알았다. 전형적인 80년대 스타일의 팝송이었기 때문이었다. 

노래를 처음 들은 후, 나는 그 노래에 푹 빠졌다. 세르지오 멘데스라는 사람의 이름의 스펠링이 뭔지도 몰라서 제멋대로 추측해서 검색창에 적은 적도 있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세르지오 멘데스의 노래를 몇 곡 더 들었다. 보사노바의 제왕이라는 별명처럼 그의 음악은 대부분 매우 신이 났다. 하지만 아무래도 내 마음에 가장 든 곡은 바로 선생님이 들려준 음악이었다. 세르지오 멘데스의 원래 음악 하고는 굉장히 동떨어졌지만 그 곡 특유의 애절함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Never Gonna Let You Go”는 내가 태어나기 전인 1983년에 발표된 곡이었다. 세르지오의 원래 노래 스타일과 동떨어진 이 노래가 수록된 이유는 세르지오 개인의 뜻이었다. 그는 이 노래를 수록한 이유에 대해서 “앨범 전체적으로 너무 축제 분위기라서 페이스 조절을 위해 발라드를 수록했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앨범 전체 분위기 조절을 위해서 넣은 곡이라면서 이렇게 대단한 명곡을 수록하다니! 나는 당시에 이 사실을 알고 매우 놀랐었다. 

나는 “Never Gonna Let You Go”를 수백 번 반복해서 들었다. 그러면서 가사와 내용이 너무 궁금해서 가사를 해석한 내용을 봤었다. 노래의 분위기처럼 절절한 가사말이 예술이었는데 떠난 여인을 잡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 노래를 들으면서 언젠가 어른이 되어서 할 연애를 상상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을 떠나보낼 때, 그때 들으면 좋을 노래라고 생각했다. 참 철이 없는 생각이었다. 연인은커녕 이성과 제대로 대화해본 적도 없는 내가 이런 쓸데없는 망상을 하고 있던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굉장히 진지했다. 머릿속으로는 이미 비련의 주인공이 되어서 하루 종일 술을 마시며 울고 있는 내 모습이 그려졌다. 나는 그런 모습을 상상하며 고등학교 내내 이 노래를 정말 자주 들었다. 오히려 이 노래 덕분에 내 학창 시절을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어른이 되어서 벌어질 미래의 쓸데없는 생각을 상상하며 당시에 힘들게 공부를 하는 이유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20살. 

어른이 되었지만 나에게는 인연이 찾아오지 않았다. 영화나 드라마와 같은 일은 나에게 일어나지 않았다. 내 노력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없었다. 물론 생각한 데로 절절한 사랑은 하기는 했다. 짝사랑은 또 수십 번은 했기 때문이었다. 혼자 매우 절절했다. 혼자 찌질하게 울고 혼자 흐느끼며 혼자 술을 마셨다. 하지만 “Never Gonna Let You Go”의 노래는 생각나지 않았다. 그 대신 나는 세상의 모든 찌질한 노래를 들으면서 그 시절을 버텼다.


21살.

마침내 사랑이 찾아왔다. 하지만 이 역시 영화나 드라마와 같지 않았다. 아주 예기치 않게 찾아왔고 아주 예상치 못한 시점에 이별을 경험했다. 생각보다 마음은 아프지 않았다. 나는 그저 그녀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고 위안을 했었다. 역시 나는 찌질했다. 


24살.

복학을 하고 새로운 사랑을 만났다. 격렬하게 사랑했고 격렬하게 헤어졌다. 서로 할 말, 못 할 말 다하면서 싸웠다. 다시는 보지 않을 사람처럼 헤어졌기에 후회라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마음의 상처만 가득했다. 그런데 그때도 나는 찌질했던 것 같다.


30살.

오랜만에 한 연애는 서로 소원해지면서 허무하게 끝났다. 하지만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일이 너무 바빴고 나는 내 커리어를 발전시키는데 더 집중하고 싶어 했다. 나는 내가 찌질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상대는 나를 어떻게 생각했을지 잘 모르겠다.


33살.

결혼까지 약속했던 그녀와 헤어졌다. 모든 사랑이 실패로 끝난 것 같아 괴로웠다. 이제 이대로 독신으로 사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첫날은 괴로웠고 둘째 날은 하루 종일 울었고 셋째 날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지내려고 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괴로운 생각만 들었다. 아직도 나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는 것 같다.


며칠 전, 그녀를 우연히 다시 만났다. 그녀의 회사와 내가 다니는 회사의 위치가 가까웠기에 가끔 이렇게 마주칠 수 있었다.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고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나를 외면했다. 아주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아직도 마음이 아팠다. 그날 밤도 나는 펑펑 울었다. 


어른의 사랑은 내가 생각하는 만큼 로맨틱하지 않았다. 내가 감히 절절한 사랑을 입에 언급할 수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세상에 쉬운 사랑과 쉬운 이별은 없었다. 그걸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오늘 오랜만에 “Never Gonna Let You Go”를 들었다. 학창 시절 듣던 감정보다 수천 배는 더 무거웠다. 이렇게 슬픈 노래였던가? 나는 눈물을 계속 흘리며 노래를 들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누가 보면 진짜 지질하다고 할 것 같았다. 그런데 내 감정이 이런데 내가 어쩔 수 있단 말인가….


노래를 들으며 가사와 해석도 봤다. 모든 것이 내 이야기 같았다. 다시 그녀가 돌아온다면 나는 몇 번이고 그녀를 다시는 보내지 않겠다고 맹세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모든 것은 나의 어린 시절처럼 망상일 뿐이었다. 그녀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나는 또 누군가를 만나 다시 사랑과 아픔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오늘은 눈물과 노래로 위로를 전혀 받지 못하는 밤이었다.



I'm never gonna let you go

난 절대 당신을 보내지 않을 거예요.


I'm gonna hold you in my arms forever

당신을 영원히 안을 거예요.


Gonna try and make up for all the times

당신을 아프게 한 그 모든 시간을


I hurt you so

전 만회하려고 노력할 거예요.



https://www.youtube.com/watch?v=ZtcfEMf3Nx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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