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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Aug 21. 2022

8월 21일 이종윤의 하루

백수의 일요일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신경 쓰이지 않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일요일이다. 예전에는 월요일이 오는 것이 너무나 싫었지만 이젠 상관없었다. 물론 자금에 대한 압박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아직까지는 괜찮은 편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일을 하지 않으면 좀이 쑤신다고 하는데 나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돈만 많으면 영원히 일을 안 하고 싶었다. 그냥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이다. 내 커리어의 발전이나 자아성찰 같은 것은 없다. 

회사를 그만둔 것은 홧김에 한 행동이었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그만두지 않는다면 영원히 후회할 것 같았다. 2주 전, 나는 사직서를 제출했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회사를 나왔다. 이직할 회사도 이직할 생각도 없었다. 그냥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쉬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된 백수 생활은 어느새 2주째에 접어들었다. 매일 아침 무슨 일을 할까를 고민하지만 대단한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고 있다. 

백수가 되고 두 번째 일요일이 찾아왔다. 지난주에는 할 것이 없어서 근교로 드라이브를 다녀왔다. 하지만 오늘은 할 일이 가득이었다. 먼저 점심시간에는 친한 친구의 결혼식이 있었다. 결혼식이 끝나면 친구들과 따로 잠시 수다를 떨 예정이다. 저녁에는 또 다른 친구들과의 술 약속이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하루 종일 밖에 있어야 했다.

일요일에는 늦잠을 자는 것이 좋지만 오늘은 조금 일찍 일어나 결혼식장에 갈 준비를 했다. 준비를 마친 나는 차를 타고 결혼식장으로 향했다. 집에서 결혼식장은 차로 1시간 20분 정도 걸리는 곳이었다. 꽤나 먼 곳이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남는 것이 시간이었다. 

일요일이라 조금 막혔기 때문에 1시간 40분 만에 식장에 도착했다. 그래도 결혼식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있었다. 나는 현금인출기에서 축의금을 뽑았다. 식장으로 가 오늘 결혼하는 친구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했다. 다른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그들이 왔는지를 확인했다. 친구들의 위치를 확인한 나는 식장 안으로 들어가 친구들이 앉아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라 근황을 묻고 시답잖은 농담을 건넸다. 같은 테이블에 앉은 친구들은 나를 제외하고 모두 결혼을 했다. 친구들은 이제 나만 남았다고 나보고 언제 결혼하냐고 물었다. 하지만 나도 모르는 걸 내가 대답할 수는 없었다. 난 그냥 결혼 안 할 거라고 말했다. 

잠시 후, 친구의 결혼식이 진행되었다. 친구는 흡족한 표정으로 당당한 표정을 지으며 신랑 입장을 했다. 우리는 그 친구를 향해 박수를 쳤다. 나도 나지만 저 친구가 결혼할 줄은 정말 몰랐었다. 인기가 없는 친구가 아니라 오히려 인기가 너무 많은 친구라 어느 한 사람에게 정착 못 할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친구는 결혼식 내내 입꼬리가 귀에 걸려있었다. 그의 모습을 보는 우리도 저절로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친구의 결혼식이 끝나자 우리는 근처 카페로 가서 수다를 떨었다. 하지만 수다를 떨 시간은 충분하지 않았다. 다들 집으로 빨리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남는 건 오직 나 하나였다. 친구들이 모두 일어나서 자리를 떠났을 때도 나는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저녁 약속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기 때문에 나는 카페에서 바로 일어날 수 없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다시 차를 몰고 저녁 약속이 있는 곳으로 갔다. 저녁 약속 장소는 우리 동네 근처였다. 그래서 이동하는 게 전혀 부담이 되지 않았다. 아니, 사실 부담이 되어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남는 게 시간이거늘.

저녁 약속은 대학교 시절 때 알던 친구들과 함께였다. 대학교 때는 서로 다른 곳에 살았지만 지금은 우연히도 다들 근처에서 살고 있었다. 그래서 이 모임은 동네 친구 모임이 되었다. 대단한 이유가 있어서 만나는 게 아니라 그저 술을 먹고 싶을 때 모이는 것이었다. 

술을 진탕 마시고 싶지만 친구들은 내일 출근해야 한다며 내뺐다. 결국 많이 마시는 것은 나였다. 친구들은 내일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나를 부러워했다. 나는 내일이 없다는 듯이 술을 들이부었다. 

모임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술을 너무 마셔 머리가 아팠다. 후회가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후회가 되지 않았다. 지금이 아니면 일요일에 이렇게 한량처럼 마실 기회가 앞으로도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씻지도 않고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기분이 좋으면서 묘하게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무슨 기분인지는 모르겠다. 

내일 뭘 할까? 그런 건 정하지 않아도 된다. 내일은 월요일. 월요병 따위는 존재하지 않다 오늘은 모두가 쉬는 날이었지만 내일이 되면 백수인 나의 진짜 백수 라이프가 다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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