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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Aug 22. 2022

8월 22일 최유철의 하루

허세

유철은 주변에서 허세를 부리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유철이 부리는 허세는 굉장히 다양했다. 사전적 의미 그대로의 허세를 부리기도 했고 행동으로도 허세를 그대로 보여준 적도 있었다. 그리고 지적인 허세도 굉장했다. 무엇보다 유철은 허세를 굉장히 있어 보이게 포장했다. 그렇기 때문에 유철을 처음 본 사람들은 그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몇 번 유철과 대화를 깊게 나눈 사람들은 그가 지금 허세를 부리고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 

유철은 젊은 시절부터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했다. 대화에서 모르는 내용이 나와도 일단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다른 사람들의 대화를 가만히 들으면서 자신이 어떻게 말해야 있어 보이게 될지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적당한 타이밍에 자신이 종합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대화를 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유철이 무언가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40대가 넘은 지금도 유철은 젊은 세대의 언어를 이해하고 싶어 했다. 그리고 스스로를 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젊은 시대의 언어를 마치 알고 있는 것처럼 사용했다. 유철처럼 나이가 있는 사람들은 그의 그런 행동에 깜빡 속아 넘어갔지만 젊은 직원들은 유철이 또 모르는데 용어를 막 쓰고 있다는 것을 바로 간파했다. 

유철은 자신을 직접적으로 모르는 불특정 다수에게도 허세를 부렸다. 현실에서의 유철은 그냥 평범한 기업의 과장이었다. 연봉은 적당했지만 여유롭게 쓸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커뮤니티 공간에서의 유철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커뮤니티에 올리는 글에 따르면 유철은 연봉 2억이 넘는 굉장히 성공한 전문가였으며 고급 스피커로 음악을 듣고, 비싼 장비로 골프를 치고 다니는 사림이었다. 유철은 단순히 글을 올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진까지 올렸다. 그러면 커뮤니티의 사람들은 유철이 대단하다는 식의 댓글을 달았다. 유철은 그런 리액션에 행복해했다. 유철이 올리는 사진은 대부분 사기이거나 실제로 유철이 구매한 물건들이 담긴 사진이었다. 유철은 이 허세 사진을 위해 거짓말을 하거나 자신의 급여 수준에서는 다소 무리가 되는 물건까지 구매했다. 이런 글을 올려서 유철이 얻는 것은 댓글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커뮤니티 공간에서의 반응은 결코 현실의 반응이 될 수 없었다.

유철은 젊은 시절에도 자신의 SNS에 허세 가득한 연출 사진과 오그라드는 글을 올렸다. 유철의 친구들은 그런 그가 부끄럽다고 했지만 그를 모르는 사람들은 그런 유철의 글에 환호했다. 지금도 유철은 SNS에 외제차 사진을 올리며 자신의 재력을 과시하고 있다. 그런 유철의 게시글에는 좋아요가 가득했다. 유철은 자신의 팔로워 수를 보며 자신도 인플루언서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유철은 오늘도 SNS와 커뮤니티를 위한 글을 올리며 가상공간에서의 자신을 세팅했다. 현실은 상사에게 혼나고 후배들에게는 험담의 대상인 직장이었지만 가상에서의 그는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냉철한 엘리트 전문직이었다. 그는 절대 자신의 힘든 일을 올리지 않았다. 모든 것은 허세이고 거짓말이었지만 그는 자신의 정체를 철저히 숨기고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절대 지인과 허세요 SNS 계정을 공유하지 않는다. 그는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허세요 SNS 계정을 보며 위안을 얻었다. 

유철은 점심시간에는 자신의 지적 허세가 통하는 직장 상사들과 밥을 같이 먹으러 나갔다. 직장 상사들은 유철이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고 유철은 신이 나서 자신이 알고 있는 잘못된 지식을 그럴싸하게 포장해서 말했다. 상사들은 그런 유철의 이야기를 즐겁게 들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유철이 현실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만족감을 느끼는 때였다.

퇴근 시간, 유철은 회사에서 받은 모든 스트레스를 커뮤니티에 올리는 글로 해소했다. 오늘 그는 자신을 연봉이 2억이지만 평범한 백반 식당에서 술과 함께 소소하게 즐길 줄 아는 사람으로 세팅했다. 이를 위해 그는 실제로 백반 식당에서 술을 시켜 사진을 찍었다. 글을 올리자마자 유철은 그가 생각한 데로 달리는 댓글 반응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집에 돌아가면 유철은 평범하지만 약간 모자란 남편이자 아버지가 되었다. 그의 아내는 유철이 또 분수에 안 맞는 물건을 샀다고 그에게 화를 냈다. 유철은 아내에게 모르는 소리 말라며 큰 소리를 쳤다. 엉엉 우는 아이도 제대로 달래지도 못하는 유철이었지만 그는 방으로 들어가 육아와 가정에도 충실한 연봉 2억짜리 남자로 가장한 글을 SNS에 또 올렸다. 유철은 또 글에 대한 반응을 보며 남은 하루를 기분 좋게 마무리했다. 남편의 SNS를 알고 있는 아내는 그런 유철이 한심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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