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3일 송규만의 하루

어느 직장인의 첫 출근

by 우주 작가

오늘은 규만이 새로운 직장에 출근하는 날이다.

작년 9월, 예상치 못 한 일로 회사를 그만둔 이후 오랜 기다림 끝에 들어간 새로운 직장이었다.


아침잠이 많은 규만이었지만 오늘은 이른 아침에 일어났다.

모처럼 아침운동도 하고 아침밥도 든든하게 먹었다.

준비를 마치고 지하철로 가는 길에 규만은 공기를 들이마시며 오랜만에 느껴는 상쾌한 기분을 만끽하였다.


새로운 회사까지 가는 시간은 불과 20분이었다.

사실 면접을 볼 때의 경험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가까운 거리에 괜찮은 연봉까지 쳐준다고 하니 규만은 망설임 없이 입사를 선택했다. 물론 그렇다고 규만이 여유롭게 회사를 고를 상황도 아니었다.


새로운 회사는 큰 회사는 아니었지만 나름 업계에서 이름을 알리고 있는 곳이었다.

투자 이야기도 많이 나오고 있고 인터넷 기사에서 대표의 인터뷰를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회사였다.


어느새 회사 앞에 도착하자 규만은 인사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윽고 인사담당자가 밝은 표정으로 규만에게 인사하며 문을 열어줬다.


사무실의 공기는 그리 상쾌하지는 않았다. 나름 깔끔하게 되어있지만 어딘가 모르게 너저분한 구석도 있었고 환기를 안 했는지 꿍꿍한 냄새도 났다. 규만은 자기도 모르게 코를 킁킁거렸다.


"여기 앉으세요. 컴퓨터는 여기 있고요. 비밀번호는 여기 있으니깐 우선 앉아 계세요"


밝은 표정의 인사담당자는 꽤나 무미건조한 말을 하고 바로 사라졌다. 규만은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얼마 만에 다시 출근이냐...'


규만은 항상 월요병에 시달리던 사람이지만 오늘만큼은 월요일을 가장 기다린 남자였다. 딱딱한 분위기의 사무실도 오늘 그에게는 편안하게 느껴졌다. 아직 동료들은 출근하지 않은 모양이다. 잠시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곳에 일부 직원들이 있지만 바쁘게 타이핑하는 소리만 들리고 얼굴은 보이지가 않았다.


"안녕하세요..."


잠시 후, 어떤 남자가 커피를 들고 힘없는 목소리로 들어오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인사를 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말 같았다. 그 남자는 규만의 옆자리에 앉아 잠시 핸드폰을 만졌다.


"아.. 안녕하세요! 오늘 입사한 송규만입니다."


규만이 어색한 인사를 했다. 남자는 규만의 얼굴을 슬쩍 보더니 다시 핸드폰을 봤다.


"아.. 네 안녕하세요"


사람을 보지도 않고 인사라니... 규만은 살짝 기분이 나빴지만 오늘은 월요일이기 때문에 다들 기분이 안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안녕하세요!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번엔 조금 밝은 목소리의 여자가 들어왔다. 여자가 들어오자 그제야 회사 사람들이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그 여자는 규만의 앞에 앉았다. 여자는 자리에 앉아 짐을 한참 풀었다. 그리고 조금 지나자 드디어 규만을 발견하고 인사를 건넸다.


"오! 오늘 새로 오신 분인가요? 안녕하세요! 원예리라고 해요"


"아.. 네 저는 오늘 입사한 송규만입니다."


규만이 일어나서 인사를 하자 예리는 규만에게 명함을 건넸다.


"반가워요! 여기 뭐 다들 챙기는 분위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보세요. 옆에 준원 씨한테 말씀해주셔도 괜찮고요."


규만은 그제야 옆의 남자의 이름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이제 모든 직원들이 출근했지만 분위기는 비슷비슷했다.

예리도 엄청 활기찬 것은 아니었지만 현재 직원 중에서는 가장 밝은 사람 같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규만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규만은 책상 앞에 놓인 OJT 문서를 살펴봤다.

OJT라고 해봤자 출근하고 첫날 무엇을 해야 한다라고 적힌 아주 간단한 문서였다.

그냥 말로 하면 1분 안에 끝날 정도의 분량이었다.


규만은 문서에 쓰여있는 메신저 아이디로 로그인했다.

메신저에서도 규만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규만은 컴퓨터 문서 항목을 살펴보았다. 카카오톡 받은 파일.

어이없게도 폴더에는 예전 근무자가 받은 파일들이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개인적인 내용들이 아니었다. 상당수 업무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여기는 개인 메신저로도 업무 지시를 하는 건가... 설마'


출근 후 한 시간이 지났지만 규만은 아직 무언가를 할 수는 없었다.

회사의 홈페이지와 서비스 소개서를 계속해서 보고 있지만 이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때 메신저 알림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인사팀 김명석입니다. 오늘 입사를 축하드립니다. 아래 링크로 접속하시고 말씀해주세요. 아이디는 메신저와 동일합니다."


드디어 아침에 인사했던 사람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명석의 메신저를 보고 링크에 접속하니 회사의 공유 폴더에 접속할 수 있었다.


"오늘은 새해 첫날이라 다들 바쁠 거예요. 죄송하지만 회사 업무 관련한 내용들 보실 수 있으니 그거보고 있으세요. 아마 내일 대표님이랑 면담할 거예요!"


"네! 감사합니다 ^^ 그런데 저희 팀의 팀장님은 오늘 안 오시나요?"


"팀장님이요? 옆에 계신 준원 님이에요"


출근하자마자 인사했는데 자신에게 전혀 관심 없던 사람이 팀장이란 말인가..

규만은 약간 정신이 아찔해졌다. 잠시 슬쩍 준원의 얼굴을 살피려고 했지만 준원은 헤드셋을 끼고 세상 관심 없는 표정으로 일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관심이 없는 것은 준원뿐만 아니었다.

회사 곳곳에서는 시끄러운 타이핑 소리로 이 회사가 노는 회사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지만 누구도 규만에게 말을 걸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절대 가지 않을 것 같은 오전 일과가 끝나고 드디어 점심시간이 되었다.


"규만 님? 오늘 처음 오셨는데 같이 밥 먹아야 하는데 미안해요. 제가 점심때 약속이 많아서요. 준원 님이랑 식사하세요!"


그렇게 말하고 옷을 챙겨 입은 예리는 사무실을 떠났다.

규만은 어색하게 웃으며 준원에게 밥을 먹으러 가자고 권했다.

준원은 아무런 말 없이 규만과 밖에 나왔다.


준원은 밥을 먹는 멤버가 있는 듯했다.

40~50대 정도로 보이고 담배 냄새가 계속 나는 남자와 역시 비슷한 또래이지만 약간 장난기가 많아 보이는 남자, 그리고 준원이었다.


밥을 먹으러 가기 전 그들은 담배를 피우며, 못다 한 안부를 서로 묻고 있었다.


"남부장님. 오늘 새로 오신 분이고요. 저희 팀에서 일하게 되었어요."


규만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을 것 같은 준원이 사람들에게 규만을 소개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야기를 들은 남부장도 역시 규만에게 관심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아.. 네.. 뭐 먹지, 저기 백반집 갈까?"


"백반 말고 나 어제 떡국 못 먹었어. 떡국 먹자. 규만 씨라고 했죠? 여기는 남현권 부장, 나는 정성재라고 해요. 복 많이 받아요"


성재는 규만에게 악수를 청했다. 규만은 성재의 손을 잡았지만 성재는 재빠르게 규만의 손을 뿌리쳤다.


담배를 모두 핀 일행들은 칼국수집으로 이동했다.

밥을 먹는 시간이었지만 규만의 정보를 굳이 캐려고 하지 않았다. 이름과 나이, 사는 곳 정도를 물어봤지만 그들의 흥밋거리가 아니었는지 이윽고 주제는 주식, 코인, 식당에 나오는 뉴스로 옮겨갔다.

규만은 그들의 대화에 이따금씩 리액션을 했지만 그 역시 그리 말이 많은 편은 아니라 그들 무리에 낄 수는 없었다.


밥을 먹고 회사로 돌아왔다.

회사에는 다들 빠르게 밥을 먹었는지 꽤나 많은 사람들이 돌아와 있었다.

아예 잠을 자는 사람도 있었고 몇몇 친한 무리끼리 지난 주말에 있었던 이야기를 말하기도 했고

계속 쉬지 않고 일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규만은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계속 보고 있지만 일을 주지 않으니 미칠 것 같은 심정이었다.

그래도 오늘은 첫날이기 때문에 이럴 것이라 생각만 할 뿐이었다.


오후 일과 중에도 준원이나 예리는 규만에게 일을 주지 않았다.

가끔 말을 걸며 이것저것 요청하는 명석의 메신저도 더 이상 울리지 않았다.


어느덧 오후 6시가 되었다.

10시에 출근하는 회사라 퇴근시간가지 1시간도 남지 않았다.


규만은 물을 마시러 가는 척하며 회사를 둘러보았다.

회사는 활기가 넘치는 부분도 있었다. 회의실에서는 열띤 토론을 하기도 했고

서로 업무를 요청하느라 자리에게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분명 바쁜 회사이기 때문에 규만은 지금의 여유로움을 그리워할지도 모른다.


자리에 다시 앉은 규만이 업무 파일을 다시 보고 있을 때

준원이 규만을 툭툭 쳤다.


"지금 뭐 보고 있어요?"


"네 공유 폴더 접속해서 저희 팀이 그동안 한 일 보며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흠... 뭐 오늘은 따로 할 일은 없으니 계속 보다가 궁금한 것 있으면 물어봐요."


말을 마친 준원은 다시 헤드셋을 끼고 타이핑을 시끄럽게 이어갔다.


규만은 준원을 보며 그러면 궁금한 것 있으면 대답은 잘해줄 거냐라고 묻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기에 다시 자신의 컴퓨터를 바라봤다.


오랜만의 출근이라 오후 시간대에 굉장히 졸리기도 했지만 규만은 어떻게든 잘 버텨냈다.

드디어 7시가 되었다.


오랜만의 첫 출근이지만 오늘처럼 바로 집에 가고 싶은 날도 없었다.

평소에 통화를 싫어하는 규만이었지만 바로 집에 가는 길에 친구한테 전화를 걸어 수다라도 떨고 싶은 기분이었다.

답답해 미칠 것 같은 규만이었다.


7시가 되었지만 그 누구도 일어나지 않았다.

규만은 예의 상 주위 사람들이 오늘은 일찍 가세요라는 말을 해줄 것이라 약간은 기대했지만

누구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7시 30분...

그리고 8시가 되었다.

할 일도 없는데 8시까지 있는 것은 미칠 것 같은 일이었다.


그래도 회사까지 거리가 가까워서 규만은 버티고 있었다.

8시가 되자 몇몇 직원들이 퇴근을 시작했다.


그때 메신저가 울렸다.


예리의 메신저였다.


"안 가고 뭐하세요? 여기 뭐 다들 늦게 가는 분위기인데 오늘은 적당히 나가요^^"


예리의 말에 규만은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컴퓨터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눈치를 보다가 준원에게 말을 걸었다.


"저..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아? 아 네 아직 안 갔어요? 네 내일 봐요"


준원은 헤드셋을 살짝 뺐다가 살짝 인사만 하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규만은 짐을 챙겨 사무실 사람들에게 작은 목소리로 인사하고 나왔다.



사무실 앞에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을 때

아주 작은 소리로 사무실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8시? 오늘 첫날인데 일찍 가네.. 저 사람도 오래 못 버티겠다.."



규만은 의미심장한 말을 듣고 당황했지만 어서 엘리베이터를 탔다.


지하철로 가는 길..

규만은 어두워진 하늘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리고 핸드폰을 꺼내

구직 앱을 살피며 집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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