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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Sep 08. 2022

9월 8일 유채정의 하루

조기 퇴근

오늘 아침 출근길에는 평소보다 사람들이 많이 보이지 않았다. 사무실 역시 마찬가지였다. 명절을 앞두고 오늘부터 휴가를 쓴 사람들이 몇몇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팀장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덕분에 나는 오늘 굉장히 편안한 마음으로 출근할 수 있었다.

사실 휴가를 쓸 이유는 없었다. 우리 회사는 명절 전날이면 무조건 오전 근무만 하고 조기 퇴근을 시켜주는 곳이었다. 그렇지만 우리 팀장처럼 하루를 온전히 쉬고 싶은 사람은 휴가를 쓰기는 했다. 물론 고향이 너무 멀어 어쩔 수 없이 휴가를 쓰는 사람도 있었다. 그에 비해 나는 고향에 내려갈 일이 없었다. 부모님과 처가댁 모두 서울에서 살고 계시기 때문에 명절에는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 같은 날은 절대 휴가를 쓰지 않고 오전에 편한 마음으로 일했다.

지금 회사에 이직한 것은 5년 전일이었다. 지난번 회사는 명절 전날이라고 해도 절대 조기 퇴근을 시켜주지 않았다. 회사는 어차피 빨간 날이 있는데 그동안 고향에 다녀오고 하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전 회사에는 명절 전날 휴가를 내는 사람이 굉장히 많았다. 명절 기간이 길면 그나마 나았지만 기간이 짧을 때는 하루 정도 시간이 더 없으면 고향을 다녀오는 것이 힘든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전 회사는 그런 사람들의 입장을 전혀 봐주지 않았다. 다녀본 내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 아마 그 회사는 명절에 쉬는 것 자체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 회사는 직원을 소모품처럼 생각했기에 칼퇴를 하거나 주말 출근을 하지 않는 것을 못마땅하게 대하는 것이 너무 보였기 때문이다. 다니는 동안 그 회사 특유의 분위기가 너무 싫었고 내가 그 회사를 퇴사하게 만든 결정적인 원인이기도 하였다.

그에 비해 이 회사는 모든 면에서 자유로웠다. 명절 전날 조기 퇴근을 시켜주는 것도 놀라웠는데 가장 놀라운 것은 12월 25일부터 1월 1일까지 회사 전체 직원들에게 연말 휴가를 준다는 점이었다. 회사 전체가 쉬는 기간이라 이 때는 회사 건물에 출입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크리스마스 전까지는 12월 업무를 모두 마무리해야 한다는 단점 아닌 단점이 있었지만 막상 연말에 쉬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여하튼 우리 회사는 쉴 때는 쉬고 일할 때는 열심히 일하는 것이 모토였기 때문에 업무가 조금 힘든 대신 휴일은 잘 챙겨줬다.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모닝커피를 마시며 오전 업무를 간략하게 마무리했다. 명절 전에 해야 할 일은 어제까지 모두 끝내 놨기 때문에 오늘 해야 할 일은 거의 없었다. 나는 오늘 출근한 다른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명절에 어딜 가는지를 물었다. 대답은 거의 비슷비슷했다. 시댁이나 처가댁에 가서 각자의 어르신들을 만나는 유부남, 유부녀의 이야기도 있었고 여전히 제사를 지내는 집 때문에 남편과 갈등이 있는 사람, 짧은 연휴 기간 동안 국내 여행을 간다는 사람도 있었다. 지난 설 때도 비슷한 대답을 들었던 것 같다.

나에게도 명절은 그리 특별하지는 않았고 항상 반복되는 일의 일부였다. 명절 당일에 처가와 부모님 댁을 모두 도는 것 외에는 대단한 일은 없었다. 아마 아내와 드라이브를 하면서 어디 문 연 가게에서 밥 먹고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 외에는 뭘 하기에도, 어딜 가기에도 조금 애매한 것 같다.

12시가 되었다. 점심시간이지만 지금부터는 퇴근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는 밥을 먹지 않고 먼저 집에 가기로 했다. 집에 가는 길에 백화점에 들러 아내와 함께 저녁때 먹을거리나 사갈 예정이다. 아주 짧은 시간 일을 하고 집에 가니 뭔가 기분이 좋았다. 어느새 상쾌해진 가을바람과 맑은 가을 하늘이 조기 퇴근하는 나를 반기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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