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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Sep 07. 2022

9월 7일 하규만의 하루

회사의 DJ

규만이 다니는 회사는 10명 남짓의 직원이 있는 아주 작은 규모의 스타트업이었다. 사무실도 크지 않아 직원들의 책상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점심을 먹거나 회식을 하면 전 직원이 함께했다. 그 덕분에 직원들은 서로 친하게 회사를 다녔다. 

일을 하는 동안에는 사무실에서 끊임없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적막이 흐르는 사무실 분위기가 싫었던 누군가가 처음으로 음악을 튼 이후로 이어져온 일종의 전통이었다. 처음 음악을 틀었던 직원은 퇴사했지만 그 이후로도 누군가가 그 역할을 이어받았고 아침이 되면 회사의 BGM을 틀었다. 그리고 규만이 현재 회사에서 음악을 트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규만의 업무는 마케팅 일이었지만 그의 또 다른 직무는 회사의 DJ였다.

규만은 어려서부터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했다. 단순히 음악을 듣는 것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악기 연주를 하는 밴드 활동도 했었다.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음악을 추천하는 것도 좋아해서 고등학교 때는 방송반 DJ를 하기도 했었다. 그의 어린 시절에는 항상 음악이 함께였다. 이제는 음악과 전혀 관련 없는 일을 하고 있었지만 규만은 여전히 좋은 노래들을 많이 알고 있었다. 그런 그가 회사에서 DJ 역할을 하게 된 것은 어쩌면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회사에서 처음 DJ 역할을 맡았을 때 규만은 정말 좋은 선곡의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서 직원들에게 들려주었다. 하지만 직원들이 일을 하면서 듣고 싶어 하는 노래과 규만이 추천하고 싶은 노래 간에는 괴리감이 있었다. 결국 일주일 만에 규만은 직원들이 듣고 싶어 하는 노래를 신청받기 시작했다. 규만이 잘 듣지 않는 스타일의 노래도 많았지만 규만의 취향만을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 이후로 규만은 유튜브에서 무난한 플레이리스트를 선정해서 아침마다 틀었다. 사무실의 노랫소리는 아주 시끄럽지 않은 정도로만 틀 수 있었다. 규만은 한 번은 너무 시끄럽게 틀었다가 이사의 잔소리를 들은 적도 있었다. 

규만은 처음 노래 선곡을 맡았을 때는 옛날 생각도 난다면서 좋아했지만 지금은 노래를 트는 행위 자체가 귀찮았다. 노래가 별로면 별로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볼륨을 아무리 작게 해도 너무 크다는 사람, 너무 작다는 사람, 자신이 원하는 노래를 틀어달라고 강요하는 사람도 있었다. 고작 10명도 안 되는 직원이었지만 그들의 취향은 너무나 다양했다. 그리고 규만은 어느 순간부터 그들의 요구를 맞춰줘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 규만은 자신이 해야 하는 업무도 있는데 이런 것 때문에 신경을 쓰고 시간을 써야 하는 것이 화가 나기 시작했다.

한 번은 규만이 노래를 틀지 않은 적도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의외로 그에 대해서 신경 쓰지 않았는데 한 직원이 왜 노래를 틀지 않냐고 규만에게 물어봤다. 규만은 그 말을 무시하려고 했지만 그 말을 한 직원은 다름 아닌 이사였기에 그럴 수가 없었다. 결국 규만은 다시 노래를 틀었다.

지난 몇 달 사이 규만이 다니는 회사는 투자를 받아 직원들을 여러 명 채용했다. 어느새 직원은 30명 가까이 불어나게 되었고 회사는 새로운 사무실로 이전했다. 새로운 사무실은 예전보다는 넓어졌지만 직원이 거의 3배가 늘어났기 때문에 여전히 직원들의 책상은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그래도 예전처럼 한쪽에서 하는 이야기가 반대쪽에서 다 들리지는 않았다. 

회사의 규모가 커지고 새로운 사무실로 이전하면서 규만에게도 좋은 것이 하나 생겼다. 바로 이제 규만은 더 이상 DJ 역할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대표의 명령으로 이제 노래를 스피커로 듣는 것이 금지되었기 때문이었다. 회사의 규모가 커지면서 이제 한 사람이 스피커로 노래를 틀면 사무실 전체에 들리지도 않았고 외부 손님도 많아져서 조용한 사무실 분위기를 유지하고 싶다는 대표의 생각이 이유였다. 규만은 속으로 박수를 치며 이 정책을 환영했다. 

규만은 이제 매일 아침 출근해서 남을 위한 노래를 고르지 않는다. 그는 이어폰을 끼고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신나게 틀었다.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하기 위해 볼륨은 여전히 낮게 설정했지만 자신만의 주제곡이나 힘을 나게 하는 노래를 듣고 있기 때문에 그는 저절로 흥이 났다. 그리고 회사 일도 예전보다 더 집중해서 할 수 있게 되었다. 규만은 노래를 들으면서 일을 할 수 있는 회사의 분위기에 감사했다. 규만은 오직 자신만을 위한 플레이리스트와 함께 오늘도 힘차게 일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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