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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Sep 14. 2022

9월 14일 안재형의 하루

다툼

“아니 성우님. 일을 이렇게 하시면 안 되는 거잖아요?”


“하아.. 재형님. 내가 뭘 잘못했는데? 우리 프로세스대로 했고 그래서 일을 빨리 하자고 한 건데? 뭐가?”


“아뇨. 성우님. 제가 말씀드린 것은 프로세스 문제가 아니라 다른 건이잖아요.”


“아 몰라 몰라. 재형님. 아무튼 진짜 실망이야. 지금 어디서 목소리를 높이고 그래?”


“아니.. 처음 흥분하신 건 성우님이고…”


“아 모른다니까. 진짜 알았어. 재형님이 맞다 치자. 됐지?”


나는 성우의 말에 표정을 도저히 숨길 수가 없었다. 회사에서 가장 목소리가 크고 막무가내로 일하는 사람. 이 사람의 악명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막상 내가 일해보니 더 심각했다. 나는 최대한 차분하게 성우에게 설명하려고 했지만 이 사람은 처음부터 목소리를 크게 내면서 내 흥분을 유도했다. 그리고 나는 그의 도발에 넘어갔다. 결국엔 내가 나쁜 놈이 되어버렸다.


“재형님. 잠깐 나 좀.”


팀장이 조용히 나를 불렀다. 그는 나보고 옥상으로 가서 따로 이야기하자고 말했다. 나는 군말 없이 그를 따라갔다.


“재형님. 아까는 뭐야? 내가 회사에서 괜히 분란 만들지 말라고 했잖아? 성우님이 그런 성격인 거 몰라? 나도 그 사람 다루기 까다로워서 그냥 조심하고 있는데 재형님 같은 사람이 사무실에서 성우님이라 싸우면 어떻게 해?”


팀장은 옥상에 올라오자마자 나를 꾸짖었다. 팀장의 말이 틀린 것은 없었다. 성우라는 사람은 회사에서 기피하는 1순위의 사람이었고 다들 그와 업무를 할 때는 최대한 조심해서 일했다. 흔히 말하는 똥이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는 수준이었다. 팀장은 이번 업무를 하기 전에도 성우와 싸우지 말라고 나에게 말할 정도였다.


“팀장님. 저도 안 그러려고 했는데요. 아닌 건 아니지 않습니까? 저 사람이 성격이 개같다고 가만히 두고 있으면 어쩝니까?”


나는 팀장에게 항변했다.


“재형님. 아니 재형아. 나도 알지. 알아. 네 마음 내가 모른다고 생각해? 그런데 이러면 너랑 내 입장만 곤란해져. 운이 안 좋으면 우리 팀에게도 피해가 될 수 있지. 그리고 다 떠나서 사무실에서 다른 사람들 다 보고 있는데 그런다는 게 좋은 건 아니지.”


“네. 그런데….”


“재형님. 다 떠나서 재형님도 회사에서 이미지가 그리 좋은 게 아니야. 그건 알잖아?”


“갑자기 무슨….”


“여긴 입구 쪽이라 사람이 좀 많다. 우리 저 구석으로 갈까?”


팀장은 주위를 살피더니 나를 구석진 곳으로 데려갔다.


“재형아. 우리 같이 일한 지도 벌써 5년이 넘었지? 전 회사에 있을 때 똘똘한 너를 내가 지금 회사로 데려온 거고.”


“네. 항상 감사하고 있죠. 그런데 갑자기 왜 그런 말씀을….”


“너 쉽게 흥분하고 항상 다른 사람들이랑 싸우고 하는 거…. 말 많은 거 알잖아?”


“에휴…. 언제 적 말씀을 저 지금은 성질 많이 내려놨고, 지금 회사 와서는 다른 사람들하고 안 싸우죠.”


“가슴에 손을 얹고 그런 말이나 해봐라. 회사 사람들이 너 걸핏하면 사람들한테 언성 높이고 싸우고 다닌다고 한다더라.”


“아니, 회의를 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죠. 일 하는데 어떻게 다 고분고분하게 따라요? 잘못된 게 있으면 바로 잡고, 좋은 방향으로 가게 하는 것이 회사의 직원인 제가 해야 하는 일 아닌가요?”


“그래, 나도 알지. 그런 모습 나도 좋아. 그래서 내가 널 아끼는 거고. 요새 애들은 그런 마인드가 없어서 문제지. 그런데 너는 조금 과해. 내가 예전에도 말했잖아? 사람들이 뒤로 너 욕하고 다닌다고? 지금도 별반 다를 거 없어. 다른 사람들이 네 말에 상처받는다고 하더라. 넌 너무 쉽게 흥분해. 그게 문제야.”


“아니, 팀장님. 진짜 너무하시네요. 제가 뭘 잘못했다는 거예요? 사람들이 하는 말 듣고 제가 나쁘다 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그게 지금 일이랑 무슨 상관인데요? 정말 저 섭섭합니다.”


나는 팀장의 말에 울컥했다.


“봐, 지금도 그러잖아? 사람이 말하다 보면 화낼 수도 있고 짜증 나는 상황이 있을 수도 있는데 너는 그걸 푸는 게 너무 극단적이야. 나랑은 그래도 친하게 지내고 있고 내가 너 봐주고 있으니 괜찮은데 너랑 가깝지 않은 사람들은 네 그런 모습 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거야. 나는 팩트만 말하는 거야.”


“하… 진짜 너무 하네요. 다들. 아니 여긴 일을 하겠다는 곳인가요? 뭐 다 공손하게 ‘예, 예, 다 맞는 말씀입니다.’라고 해야 하나요?”


“말이 안 끝나겠다. 여튼 너에 대한 이미지가 그런 상황인데 성우님이랑 싸운다고 해서 너에게 좋을 게 없다는 거지. 그냥 다른 사람들은 시끄러운 두 사람이 싸운다고 생각할걸? 그리고 성우님은 회사에서 꽤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고 어쨌든 매출가 직결되는 일을 하고 있으니 다들 성격이 개같아도 참고 있는 거야. 전에 이사님도 성우님 욕하면서도 일은 잘한다고 하더라.”


“아니, 말씀이 이상하시네요? 성우님은 그러면 성격은 개차반이지만 일은 잘하니 넘어가고 저는 성격도 개같은데 일을 못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만 나쁜 놈이라고요? 팀장님. 저한테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는 거잖아요.”


“아니, 아니…. 에휴…. 그래 내가 미안하다. 죄송하고요. 네가 일을 못한다는 게 아니고 너한테 피해가 갈 수도 있는 상황이다라고 말하는 거야. 에이, 괜히 말했다. 그냥 너 하고 싶은데로 해라.”


“팀장님. 말은 똑바로 하셔야죠! 지금 저는 성우님이 일을 효율적으로 하지 못하고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 있어서 그걸 지적한 것뿐이에요. 성우님이 미워서도 아니고, 일을 망치려고 그러는 것도 아니라고요.”


“아… 진짜…. 그래, 알았어. 내가 말 잘못했다. 너하고 싶은데로 해. 나 회의 있어서 가봐야 한다. 먼저 간다.”


팀장은 크게 한숨을 쉬며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팀장의 말을 들으니 화가 더 났다. 아니, 그래서 내가 잘못했다는 거야? 나를 이해해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저런 말을 하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배신감도 느껴졌다. 정말 너무하네.


잠깐 화도 식힐 겸 핸드폰을 봤다. 팀장과 이야기하는 사이 업무 메신저 알림이 잔뜩 쌓여있었다. 천천히 메시지를 확인하는데 또 일을 그지 같이 하는 사람의 메시지를 발견했다. 성우님은 아니고 내 부사수의 메시지였다. 아니, 내가 말을 몇 번을 했는데 일을 이따위로 해?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서둘러 내려가서 부사수를 혼내야겠다.


그렇게 바로 내려가려고 하는데 팀장이 방금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러면 팀장은 이런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해주기를 원하는 것일까? 혼낼 상황이 있으면 혼내지도 말아야 하는 건가? 좋게 타이르라는 건가? 아니면 차근차근 박살을 내라는 것인가? 따지고 보면 팀장도 내 태도를 혼낸 것 아닌가? 뭘 어쩌라는 거야…. 나는 크게 한숨을 쉬고 사무실에 있는 부사수를 혼내러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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