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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Sep 21. 2022

9월 21일 성유민의 하루

전자책

어렸을 때부터 책을 보는 것을 좋아했고 지금도 서점에 자주 가곤 한다. 책은 모름지기 종이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지만 언젠가부터 전자책을 애용하고 있다. 책장을 넘기는 느낌도 안 나고 종이책에 비해 집중도 안 되는 전자책에 빠진 이유는 편해서였다. 언제 어디서든지 핸드폰만 있으면 원하는 책을 사서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데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전자책과 종이책의 이용 비율을 따지면 3:7 정도가 될 것이다. 여전히 종이책을 좋아하기도 하고 전자책으로 나오지 않은 책도 있어 어쩔 수 없이 종이책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었다. 요약하면 전자책도 좋아하지만 여전히 종이책을 선호하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하지만 서서히 전자책의 비중이 커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특히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전자책이 편의성 측면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보였다. 작은 가방을 들고 다니는 것을 선호하는 내 성격 때문에 내 가방에는 종이책을 넣고 다니기가 불편했다. 그러나 전자책은 핸드폰만 있으면 편하게 읽을 수 있어 지하철에서는 항상 핸드폰으로 책을 읽었다. 

그러나 핸드폰으로 전자책을 보는 것에는 큰 단점이 있었다. 바로 핸드폰의 특성상 전자책 외에 다른 기능을 이용하기가 더 쉽기 때문에 독서에 집중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나도 지하철을 타면 항상 책을 읽는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니지만 지하철을 타는 50분 동안 책을 읽는 시간은 겨우 10분이 될까 말까였다. 나머지 40분은 인터넷 기사를 보던가 커뮤니티 글을 보는데 소비했다. 핸드폰 화면을 켜서 독서 앱으로 접근하기까지 너무나 많은 유혹이 있었다. 아주 옛날 동생이 학원은 안 가고 PC방에 가서 엄마한테 크게 혼난 적이 있는데 동생이 학원에 가지 않은 이유는 학원 가는 길에 PC방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내 동생이지만 한심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마 동생도 지금 나의 마음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다. 세상에는 유혹이 너무 많았다. 심지어 이 작은 핸드폰 안에서도 말이다.

집에는 태블릿도 하나 있었는데 태블릿으로도 책을 보는 경우는 드물었다. 태블릿은 그저 큰 핸드폰이었기 때문에 유혹이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특히 태블릿은 영상을 보기에 최적화되어 있어 더욱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웠다. 세상에는 재미있는 것이 너무 많았다. 결국 나는 태블릿으로 쓸데없는 영상을 보고 있거나 아니면 유혹의 껀덕지도 없는 종이책으로 밀린 독서를 했다. 

며칠 전 나는 전자책에 집중할 수 있는 물건을 하나 구매했다. 바로 이북리더기였다. 가격이 꽤나 비싸지만 배터리도 오래가고 무엇보다 전자책 기능만 있어 다른 일은 전혀 할 수 없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주위 사람들은 그런 것을 사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결국 핸드폰이나 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지만 나는 잘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하며 이북리더기를 장만했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이북리더기가 도착하는 날이었다. 나는 퇴근하자마자 무인 택배함에 보관되어있을 나의 새로운 아이템을 기대하며 서둘러 집으로 갔다. 무인 택배함을 열어보니 생각보다 작은 박스가 나를 반기고 있었다, 나는 박스를 들고 집으로 들어갔다. 

서둘러 박스를 개봉하고 이북리더기 실물을 확인했다. 가격에 비해 여러모로 싼티가 나는 기기였다. 여기서 약간 실망했지만 전원을 넣고 세팅을 해봤다. 서점 아이디로 로그인하고 기존에 구매했던 책을 몇 개 다운로드하여봤다. 요즘 전자기기에서 보기 드문 속도 때문에 굉장히 답답했다. 전자책 액정 특유의 특성 때문에 반박자 느리게 터치되는 것도 속이 터질 것 같았다. 내가 산 이북리더기는 펜으로 필기도 된다고 하는데 이 정도의 성능이면 그냥 원래 가지고 있는 태블릿을 이용하지 이걸 이용할 이유는 없어 보였다. 

모든 것이 실망이었지만 막상 전자책을 이걸로 읽어보니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종이책에 비하면 아쉬웠지만 태블릿으로 볼 때보다는 훨씬 좋았다. 눈도 아프지 않고 글자에 집중하기에도 최적의 환경이었다. 라이트도 나와서 어두운 환경에서 글을 읽을 수 있었다. 기기도 꽤나 가벼워서 들고 다니기에도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속도가 느려 터졌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책에만 집중하기에 너무 좋았다. 

이북리더기 특유의 매력에 빠져 책을 읽다 보니 어느새 잠잘 시간이 훌쩍 지났다. 나는 서둘러 샤워를 하고 잘 준비를 했다. 침대에 누워 잠을 자기 전에도 계속 이북리더기로 책을 읽었다.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들었다. 가격도 비싸고 속도도 느려서 아쉬운 것은 사실이지만 이 기기를 산 본연의 이유를 생각하면 구매하기를 잘한 것 같았다. 내일부터는 이북리더기를 가방에 넣고 매일 지하철에서 책을 읽을 것이다. 핸드폰은 잠시 멀리하고 지하철에서 독서를 할 시간이 찾아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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