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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Sep 20. 2022

9월 20일 정미주의 하루

아이의 그림 

“엄마 이거 봐봐”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한 후, 채린이는 거의 매일 자신이 그린 그림을 나에게 보여줬다. 원래도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매일 그림을 그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엄마라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봐도 채린이의 그림은 나이에 비해 굉장히 훌륭했다. 단순한 낙서가 아니라 인물이나 동물을 어떻게 그렇게 잘 묘사하는 건지 신기했다. 나는 채린이가 그린 그림을 사진으로 찍어 엄마한테 보여줬다. 그러면 엄마는 다시 자신의 친구들에게 손녀의 그림을 자랑했다. 채린이는 모르겠지만 나와 엄마 주위 사람들에게 채린이는 어떤 유명한 화가보다 더 대단한 화가가 되어있었다.

올해 채린이는 초등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수록 채린이의 그림은 더욱 성숙해졌고 재능은 날이 갈수록 발전했다. 학교 선생님도 채린이가 미술에 소질이 있는 것 같다며 나에게 한번 진지하게 재능을 키워주는 것을 고려하는 게 좋다는 말을 했다. 

나는 그런 채린이가 대견스러우면서도 걱정되었다. 하루 종일 그림만 그리고 있어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은 상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채린이의 성향 상 누구에게 먼저 다가가는 성격은 또 아니라 여러모로 우려스러운 점이 많았다.  

채린이의 그림에는 항상 나와 아빠,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만 있었다. 친구들의 모습을 그려주는 것은 거의 보지 못 했다. 나는 채린이가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밖에 나가서 친구랑 놀 것을 제안하기도 했고 일부러 키즈 카페에 가서 또래와 어울리는 것을 유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채린이는 계속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 혼자 노는 것을 선택했다. 처음에는 너무 답답해서 채린이를 다그치고 혼내기도 했지만 결국 채린이의 마음에 상처를 줄 뿐 어떤 것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친구들을 만나고 주변에 상담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가기도 했다. 여러 방면으로 알아본 결과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우리 양육 방식 혹은 아이의 기질을 내가 인정하지 않은 탓인 것 같았다.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지 않을 뿐 채린이는 누구에게나 친절했다. 또래보다 약간 성숙하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전혀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었다. 채린이는 아직 친구를 사귀는 법을 모르고 아직은 마음에 맞는 친구를 찾지 못했을 수도 있다. 지금 당장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지만 천천히 채린이가 친구들에게 마음을 열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려고 한다. 

이렇게 생각하니 그림을 그리는 행동이 채린이에게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어떻게든 채린이에게 용기를 주고 좋아하는 그림을 더 많이 그릴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채린이가 더 좋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나는 채린이의 그림책을 만들어주기로 했다.

채린이가 그동안 그린 그림을 모아봤다. 굉장히 많은 그림이 있었다. 나는 아이가 그림을 줄 때마다 그림 위에 날짜를 기록하고 있었는데 이것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 나는 우선 아이의 그림을 연령별로 분류해봤다. 채린이가 2살 때 그린 것, 3살 때 그린 것, 그리고 이제 8살 때 그린 것 등. 그림을 하나하나 분류하며 나는 추억 여행을 떠났다. 그림 하나하나에 채린이가 무슨 말을 하며 나에게 줬는지, 그날의 날씨가 어땠는지, 어떤 상황이었는지 등 모든 것이 기억났다. 그렇게 나는 며칠 동안 아이의 그림을 분류했다. 

분류를 끝내고 하나하나 스캔을 해두었다. 나는 가급적 모든 그림을 책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하나라도 놓치기 싫었다. 모든 그림을 스캔하는데도 한세월이 걸렸다. 

모든 스캔이 끝나자 다음으로는 책을 만들 업체를 찾는 일을 했다. 괜찮은 가격에 그림책을 만들 수 있는 업체를 찾았고 주문을 했다. 분량이 많아 한 권으로 끝나지 않고 여러 권을 주문해야 했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그림책이 집에 도착했다. 책을 먼저 열어보려고 하다가 이것은 나의 몫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아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 

아이가 도착했다. 아이에게 그림책을 내밀었다. 아이는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엄마 고마워요’, ‘엄마 사랑해요’를 외쳤다. 어떤 그림은 부끄러운지 민망한 표정을 하며 넘겼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을 핸드폰 카메라로 담았다. 나와 아이에게 굉장히 소중한 시간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 같다. 

아이의 그림책은 우리 집의 영원한 보물이 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채린이가 그리는 그림은 계속해서 그림책으로 만들어서 아이에게 매년 선물할 생각이다. 모든 것을 인정하고 아이가 하고 싶은데로, 그리고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발전시켜줄 예정이다. 언젠가 채린이는 내 걱정과는 다르게 많은 친구를 사귈 수도 있고 정말 마음에 맞는 소수의 친구를 만들 수도 있다. 어떤 것을 선택해도 그것이 나쁜 길만 아니라면 아이를 응원하고 아이가 바르게 성장할 수 있게 옆에서 도와줄 것이다. 나에게 채린이는 그만큼 중요하고 소중한 아이이자, 자신의 인생을 마음껏 살 수 있는 유채린이라는 아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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