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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Oct 27. 2022

10월 27일 김민범의 하루

정치질

“저는요 정치질 하는 걸 제일 싫어해요. 왜 회사에서 그런 걸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일만 열심히 해도 하루가 모자라는데….”


민범의 옆 부서에는 송차장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송차장은 자신이 사내 정치를 하는 것을 싫어한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녔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송차장은 회사에서 정치질을 가장 많이 하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민범은 원래 송차장과 같은 부서였다. 민범은 처음 송차장을 만났을 때 그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송차장은 화를 내는 법이 없었고 항상 주위 사람들에게 잘해주려고 했다. 혹시 다른 사람이 실수를 하더라도 그는 허허 웃으면서 너그럽게 넘어갔다. 일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나쁘지 않게 하는 편이라 민범은 송차장을 자신의 선배라 생각하고 그의 태도에서 배울 것이 있으면 배우려고 했었다. 송차장도 그런 민범의 마음을 알았기에 더욱 그에게 잘해줬다. 

하지만 송차장은 쉬운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눈 밖에 난 사람은 철저하게 짓밟으려고 했다. 민범이 처음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송차장을 알게 된지 4개월 정도가 지난 시점이었다. 


“민범 씨. 정시현 대리 알지? 어우, 난 그 사람이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 다들 그 사람을 안 좋게 생각해도 나는 좋게 보려고 했거든. 그런데…. 에휴 아니다. 괜히 김대리가 정대리 안 좋게 보겠다.”


송차장의 흔한 대화 방법이었다. 누군가 타겟을 정하고 그 사람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살짝 한다. 하지만 본인은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괜히 이야기했다’고 한다.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궁금하게 만드는 것이다.


“어? 무슨 일인데요?”


민범처럼 물어보는 사람이 있으면 송차장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타겟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한다. 


“이 이야기 어디 가서 하지 말고. 정대리 좋은 사람이에요. 괜히 나 때문에 편견 가질까 봐 정대리한테 미안하네.”


모든 이야기가 끝나면 송차장은 다시 선을 그으면서 ‘자신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이 이야기를 들어도 너는 그 사람을 안 좋게 생각하지 마라’라고 말했다. 이렇게 자신은 쏙 빠지고 말을 들은 사람에게는 타겟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었다. 처음에 송차장을 좋게 보던 민범은 순진하게 송차장의 말을 믿었었다. 


그리고 송차장은 이 이야기를 다른 회사 사람들에게 전파했다. 송차장의 말을 믿지 않는 부류도 있었지만 민범처럼 넘어가는 사람들도 있었기에 송차장은 신나서 타겟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을 심기 위해 노력했다. 


“송차장님이 이상한 말 하고 다니는 거죠?”


어쩌다가 정대리와 밥을 같이 먹게 된 민범은 정대리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아…. 아니에요. 차장님은 대리님 좋게 보시려고 했어요.”


민범은 정대리가 혹시나 오해할까 봐 서둘러 송차장을 쉴드치려고 했다.


“칫. 대리님이 송차장이랑 일을 많이 안 해보셔서 그런 거예요. 걔 원래 그래요. 뭔 말을 하든 그냥 넘어가세요.”


정대리는 익숙한 듯 무심하게 말했다. 민범은 말없이 정대리를 쳐다봤다. 두 사람은 말없이 밥을 먹었다. 


민범은 이날 이후 송차장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주변 동료들에게 송차장에 대해서 물었다. 대부분 돌아오는 대답은 비슷했다. ‘엮이지 말아라.’ ‘업무적으로만 대해라.’ ‘괜히 눈 밖에 나지 마라.’ 민범은 그들의 대답을 듣고 송차장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송차장은 소문의 진원지였다. 그 앞에서 한 말에는 비밀이 없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소문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그 소문은 꼭 어딘가 왜곡되어있었다. 꼭 누군가가 악역이 되었다. 감이 좋은 사람들은 이것이 송차장의 의도가 숨어있다는 것을 간파했지만 그런 것을 눈치 못 채는 사람들도 있었다.


송차장은 일반적인 정치질도 잘했다. 그는 힘이 있는 윗사람한테 친한 척했고 가능하면 그들과 골프나 등산 같은 것을 나가기도 했다. 송차장은 회사의 실세 라인과도 가까웠기 때문에 그가 다른 사람들한테 하는 정치질은 때론 치명적인 칼날이 되기도 했다. 그의 모함으로 인해 회사를 그만두게 된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며칠 후.


“부서이동이요? 김대리가요?”


송차장이 흥분해서 말했다. 


“응 애가 똘똘하더만. 위에서 다른 일 시킬 게 있다고 해서 보내는 거니깐 너무 서운해하지 말고.”


송차장의 상사인 유부장이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제가 민범 씨랑 일단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몇 달 전, 민범은 새로 만든 부서로 이동하게 되었다. 민범이 원해서 간 것은 아니었다. 송차장은 민범이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을 반대했지만 그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있었다.


“그래도 회사에서 정대리 능력 믿고 그런 거야. 나도 부장님이 시키는데 반대를 할 수는 없고.”


부서 이동이 확정된 날, 송차장은 민범에게 술 한잔 하자고 했다. 그는 민범에게 술을 따르면서 다른 부서에 가서도 일을 잘하라며 격려해줬다. 민범은 송차장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래도 자신에게는 잘해주는 사람이라 그가 고마웠다. 며칠 후부터 돌기 시작한 다른 소문을 듣기 전까지는….


며칠 뒤부터 회사에는 새로운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민범이 신규 부서로 이동하고 싶어서 내부적으로 정치질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송차장이 이를 말리려고 했지만 민범의 의지가 너무 강해 결국 보내줬다는 내용까지…. 어느 순간 민범은 이상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아니, 이해가 안 가네. 내가 안 좋게 이동한 것도 아니고. 술까지 사주면서 잘하라고 해놓고 왜 뒤로는 저런 말을 하고 다니는 거죠?”


소문을 들은 민범은 답답해하며 정대리와 따로 술을 마시며 말했다. 정대리 모함 사건 이후 민범은 정대리와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


“제가 말했잖아요. 원래 그렇다고. 이번엔 좀 심하긴 했지만….”


정대리는 덤덤하게 말했다.


“아니, 부장님이 저 보낸다고 했는데 부장님이 이 소문 들으면 송차장님 혼내지 않을까요?”


“아뇨. 부장님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하던데요. 위에서 보내라고 명령이 들어와서 이전시킨 건데 그런 사정이 있는지 몰랐다면서…. 아마 송차장은 부장한테 제일 먼저 이야기했을걸요?”


“진짜 어이가 없네….”


민범은 연거푸 술을 마시며 계속 헛웃음을 지었다. 민범은 다시는 송차장과 엮이기 싫어졌다. 



.

.

.


오늘 민범은 회사 엘리베이터에서 송차장과 마주쳤다. 민범은 송차장을 쳐다보기도 싫어서 핸드폰을 하는 척했다.


“김대리. 잘 지내지?”


송차장이 민범에게 말을 걸었다. 


“아. 네. 그렇죠. 잘 지내시죠?”


민범은 힘없이 송차장에게 말했다.


“에휴…. 나는 민범 씨 없어서 힘들어. 우리 부서에 민범 씨만 한 사람이 없다. 내가 일 요새 다한다니깐.”


“하하… 그렇군요. 고생 많으시겠어요.”


“고생은 무슨. 둘 다 고생이지 뭐. 쯧쯧”


송차장은 혀를 차며 슬쩍 민범을 쳐다봤다. 민범도 송차장을 보고 있었기에 둘은 눈이 마주쳤다. 민범은 그것이 싫어 시선을 아래로 향하게 했다.


“여하튼 오늘도 고생해요. 나중에 술 한잔 하죠.”


송차장은 민범의 어깨를 두드리며 엘리베이터에서 나갔다. 민범은 뒤에서 입으로 욕하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민범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송차장이 다시 민범의 어깨를 잡았다.


“아 맞다. 그거 알아요? 송차장님 있잖아요. 그 사람이 글쎄….”


민범은 그 와중에 또 다른 사람 흉을 보기 시작하는 송차장이 어이없었다. 민번은 정말 이 사람과는 다시는 엮이지 말아야겠다고 다시 속으로 결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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