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주 작가 Oct 28. 2022

10월 28일 김호준의 하루

주인의식

호준은 누구보다 열심히 회사 생활을 하고 있지만 항상 위에서는 호준에게 주인의식을 가지고 업무를 하라고 강요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호준은 억울했다. 호준은 생각했다. 


“뭘 어쩌라고?”


호준의 회사 대표는 항상 직원들에게 동기 부여를 줬다. 매월 1회씩 전체 직원들을 모아서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갈지 공유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잘해줘야 회사가 더 성장할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도와주세요.’라며 직원들의 능동적인 자세를 요구했다. 대기업에서 20년 가까이 일한 대표는 항상 이른 새벽에 나와서 늦은 밤에 퇴근했다. 그는 직원들이 야근을 잘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했는데, 저 사람들은 왜 일을 안 하지? 우리가 대기업도 아니고. 한 명 한 명의 역할이 중요한데 왜 저럴까?”


대표의 불만은 이런 식이었다. 그래서 그는 끊임없이 직원들을 채찍질했다. 대표는 전 직장에서 이른바 일을 잘하는 에이스였다. 그의 기준은 항상 본인이었다. 본인처럼 직원들이 일을 한다면, 회사는 무서울 것 없이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한 달에 한 번은 직원 전체에게,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팀장급 이상인 사람들을 모아 계속해서 자신의 생각이라는 이름의 갈굼을 공유했다. 그렇게 팀장들이 대표에게 깨지고 나면 팀장들은 자기 부서로 와서 대표의 말을 어느 정도 가공해서 ‘이런저런 일이 있으니 일 좀 잘 하자’라고 말했다. 호준은 아무리 일을 잘해도 어느 것 하나 만족하지 않는 회사의 분위기가 이해가지 않았다. 

호준 역시 꼰대 중 하나였기 때문에 밑의 사람들이나 최근에 들어온 젊은 직원들이 업무를 대하는 태도에 불만이 많았다. 그 역시 자기처럼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해주기를 원했지만 호준이 느끼기에 몇몇 직원들은 월급만 받으러 출근하는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위에서는 주인의식을 가지라고 하고 밑에서는 자기 뜻처럼 행동해주지 않으니 호준도 호준 나름의 고충이 있었다. 


“이런 것들이 있으면 말이야. 호준 님이 먼저 챙겨야죠. 대표님도 말하잖아요. 주인의식을 가지라고. 이런 건 신경 안 쓰는 건 호준 님이 일을 대충하고 있다는 것 아닐까요?”


호준은 오늘도 팀장에게 혼났다. 아주 작은 실수를 세상의 가장 큰 실수로 만들어버리는 팀장의 화법에 호준도 짜증 났다. 그리고 억울했다. 


‘실수를 줄이는 게 주인의식이랑 뭔 상관이지? 컨펌 라인이 여러 개 있으면 그냥 위에서 확인하고 이런 실수가 있었으니 다음에 더 잘하자고 하면 되는 것 아닌가?’


호준은 혼나는 내내 머릿속으로 회사가 말하는 주인의식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했다. 


.

.

.


“뭐 보상이라도 하나라도 준데요? 직원은 70명이 넘는데 다 주인이면 회사가 어떻게 굴러가는 거지?”


매사에 불만이 많은 유연이 호준과 밥을 먹으며 말했다. 유연은 회사에서 손꼽을 만큼의 인재였다. 머리도 빠릿빠릿하게 돌아가고 남들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캐치해서 일을 효율적으로 하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도 회사의 방침이나 태도에 대해서는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유연은 이를 참지 않는 성격이었다. 유연이 한마디를 시작하면 주변의 사람들도 입을 모아 회사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원색적인 비난은 아니었다. 유연과 사람들이 하는 말은 회사가 더 잘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나오는 불만이 많았다. 


유연의 의도와는 다르게 회사에서는 몇몇 직원들이 불만만 늘어놓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임원들은 직원들이 주인의식은 가지지 않고 받아먹고 누리려고만 해서 저러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들은 불만이 있는 직원을 어떤 식으로든 내보내려고 했다. 일을 잘 하든 못 하든 상관하지 않았다. 임원들은 회사에 분란만 야기하는 사람은 회사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게 다 회사에 애정이 있으니깐 그러는 거죠. 대표님 말대로 주인의식이 있어서 이런 말도 하는 거 아닌가? 이걸 이해를 못 하는 게 더 이해가 가지 않네요.”


유연은 이런 말을 남기고 회사를 떠났다. 제일 목소리가 큰 유연이 사라지자 회사에는 더 이상 불만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어졌다. 임원들은 흡족해했다. 


오늘은 회사의 회식 날이었다. 호준은 금요일에 회식을 하는 회사가 이해되지 않았지만 참석을 안 할 수는 없었다. 그는 조용히 구석에서 고기와 술을 마시며 가만히 있었다.


“호준 님은 왜 혼자 먹어요?”


하나 둘 취하고 호준 앞에 있던 사람들도 다들 어딘가로 갔을 때쯤, 회사의 전무 역할을 하고 있는 진태가 술병을 들고 호준 앞에 앉았다. 


“진태님. 오셨군요. 제가 술 한잔 올리겠습니다.”


호준은 진태에서 술 올릴 준비를 했다.


“진태님…. 제가 예전에 있던 곳에서는 부장님, 과장님, 전무님. 이렇게 불렀는데 요새는 그런 트렌드가 아니라면서요? 우리도 대표님이 깨어있으신 분이라 님 문화 적용했는데 괜찮은 것 같지요?”


호준은 진태의 꼰대스러운 멘트를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듣고 있었다. 진태가 지난번에 있던 회사는 굉장히 군대 같은 곳이었다. 그 문화를 그대로 흡수한 진태는 회사에서 가장 꼰대스러운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었다. 호준은 그런 진태를 어려워했다. 


“팀장님들한테는 이야기했지만 말이야. 우리는 주인의식이 있어야 해요. 대표님도 그래서 여러분들이 더 잘했으면 하는 거고. 우리 호준 님은 일 잘한다고 여기저기서 칭찬이 많더라고요. 그래도 우리 호준 님도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해야 해. 이게 내 회사다. 내가 대표라면 어떻게 할까? 이런 생각을 해야 해요. 나도 전에 있던 회사에서는 그런 게 다 무슨 소리야! 했는데 막상 대표님 따라서 회사 오고 임원하고 하니깐, 도통 잠이 안 와요. 회사 걱정이 되어서…. 뭐 우리처럼 그러라는 건 아니지만 우리 직원들도 우리 마음을 이해하고 일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얼마나 든든할까? 얼마나 행복할까? 이런…. 생각을 한단 말이지. 잘하는 것도 맞는데 주인의식을 가지고 우리 화이팅을 하자 이거야. 어? 호준 님 잔 비었었네? 잔 줘봐요. 내가 드릴게요. “


갑작스럽게 연설을 하던 진태는 호준의 잔을 빼앗아 술을 따랐다. 소주와 맥주의 비율이 거의 1:1이었다. 


“바로 이런 거야. 주인의식. 나도 호준 님 잔이 빈 것을 캐치하고 이걸 내가 호준 님한테 따라줘야…겠다.라고 바로 생각한 거지. 직원들을 돌보는 게 내 일이니깐. 내가 주인이면 손님한테 어떻게 해야 해? 먹을 것도 주고 술도 주고 하는 거지. 이런 거예요. 주인의식이라는 게. 우리가 말하는 게 어려운 게 아니야. 일을 할 때도 계속 지켜보다가 어? 이거 해야 하지 않나? 하면 …. 바로 하는 거야. 호준 님. 알겠어?”


호준은 그거 어이없게 진태의 말을 듣고 있었다. 중간중간에 ‘네’, ‘네’, ‘어우 그럼요.’라고 추임새를 넣으며 어서 진태가 자기 앞에서 사라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바람과는 다르게 진태는 1시간 넘게 호준 앞에서 자기 이야기를 했다. 호준은 너무 괴로웠다. 


.

.

.


“오늘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젊은 사람들끼리 술 마시려면 마시고. 너무 늦게 가지 말… 아요.”


“진태님. 너무 취했네요. 내일 주말이니깐 푹 쉬고 월요일에 봐요.”


“대표님, 진태님. 안녕히 가세요.”



술자리가 끝나고 각자 정신없는 상황 속에서도 인사를 하고 직원들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까 진태님 계속 상대하고 계시던데 괜찮으세요?”


호준과 친한 동료 중 하나인 준영이 호준의 안색을 살피면서 물었다.


“어휴… 말도 마세요. 술을.. 윽… 너무 마셨네.”


호준은 토할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가다가 편의점에서 뭐 좀 사가죠.”


“괜찮습니다. 그냥 집에 바로 가서 쉴래요.”


“에휴.. 쯧쯧 저 꼰대가 또 헛소리 하죠?”


“하루 이틀인가요 뭘. 또 주인의식 뭐라 하던데요.”


“자기가 주인 아닌가? 직원들 갈구는 게 주인이 하는 일이래요?”


“하하…. 몰라요. 미친놈이 헛소리 하는 거지 뭐.”


호준은 어이가 없어서 웃었고 준영도 따라 웃었다. 


“아. 호준 님. 주인의식이 뭔지 알 것 같아요.”


준영은 무언가 생각난듯한 표정으로 호준에게 말했다.


“뭔데요?”


“주인의 의식을 파악하자. 그러니깐 대표의 의식과 동기화해서 그분이 원하는 데로 살아라…. 그냥 이거 같아요. 그래서 ‘주인’, ‘의식’… 어때요?”


“하하! 그것 참 명답이네요. 내가 대표가 아닌데 어쩌라는 건지 참. 어이없는 곳이네요 여기도.”


호준은 집에 가는 내내 준영의 말을 생각했다. 주인의 의식을 제대로 알고 그대로 행동하는 것. 그거 생각하기에도 현재 회사에서 말하는 주인의식이란 그런 것 같았다. 계속 그 말을 곱씹어 보던 호준은 주인의식에 대한 자신만의 대답을 내렸다. 


“하 좆같네.”


그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이전 05화 10월 27일 김민범의 하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