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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Oct 30. 2022

10월 30일 김인성의 하루

부부동반 모임

부부동반 모임은 매주 일요일에 진행됐다. 이 모임은 경제적이나 종교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끼리 친목을 다지기 위한 것이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702호에 사는 사람이에요. 이번에 이사 오신 것이죠?”


처음 702호가 인성네 집을 찾은 것도 일요일이었다. 피곤한 한 주를 보내고 늦잠을 자고 있는 인성네 집에 초인종이 울렸다. 인성은 자신의 휴식을 방해한 사람을 향해 살짝 짜증을 내며 현관으로 갔다. 그는 누가 찾아왔는지 살짝 살펴봤다. 인상이 좋은 평범한 여성이 보였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목적이 있어 보였다. 인성은 전도를 하기 위해 교회에서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는 문을 열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저희 교회 안 다녀요. 괜찮으니 들어가세요.”


말을 마치고 인성은 다시 안방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때 문 밖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에이, 저도 교회 안 다녀요. 저희 그런 거 아니에요. 새로 이사 오셨다길래 저희가 반찬 하나 해서 드리려고 해요. 바로 갈 테니깐 잠깐 인사해요.”


하지만 인성은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인성은 대꾸를 하지 않았다. 잠시 후, 다시 문 밖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에유, 죄송해요. 너무 갑자기 찾아왔죠? 그러면 여기 문 앞에 반찬통 두고 갈게요. 맛있게 드세요.”


인성은 문 밖의 인기척이 사라지기를 기다렸다. 엘리베이터가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여성의 흔적도 느껴지지 않았다. 인성은 문을 열어 주위를 살폈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문을 닫으려고 하니 발아래 반찬통이 보였다. 


‘이사 오신 걸 환영해요! -702호-‘


인성은 정말 702호에서 반찬을 가져다주려고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반찬통을 들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인성의 뒤로 아내가 나타났다.


“무슨 일이야? 밖에 시끄럽던데? 어, 이건 또 뭐야?”


아내는 인성의 손에서 반찬을 뺏어 확인했다. 


“702호? 이거 뭐야? 702호에서 갖다 준 거야?”


“어…응. 난 무슨 전도하러 온건 줄 알았는데 진짜 702호였네….”


“뭐야? 인사드렸어? 지금 가셨나?”


아내는 문밖을 살폈다. 인성은 아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설명했다. 아내는 화를 내며 왜 인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냐며 인성을 나무랐다. 아내의 뒤로는 잠에서 깬 아들과 딸이 무슨 일이 생겼나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자신들의 부모님을 쳐다보고 있었다. 


인성과 아내는 결국 702호로 가서 정식으로 인사하기로 했다. 빈 손으로 가기는 뭐했기 때문에 인성은 추석 때 들어왔던 선물 중 뜯지 않은 것을 하나 챙겼다. 


“안녕하세요. 1501호예요. 아까는 저희 남편이 자다 일어나서 실례를 한 것 같아요. 인사드리려고 왔습니다.”


아내는 702호 초인종을 누르고 그들에게 인사했다. 


“아니에요. 저희가 갑자기 찾아왔으니 당황하실만하죠. 괜찮으시면 들어오시겠어요?”


702호는 인성네가 찾아오자마자 문을 열어 그들을 환영했다. 인성과 아내는 자연스럽게 702호로 들아왔다. 


집 안으로 들어가니 거실에는 10명 정도의 사람들이 있었다. 인성은 처음에는 702호 가족 모임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빨리 인사만 하고 돌아가려고 했다. 


“안녕하세요. 1501 호시라고요? 이사 오신 것 환영해요. 저는 101호입니다.”


갑자기 어떤 남자가 인성에게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인성은 남자가 한 말에 크게 당황했다. 


“101호요? 어…. 101호 분이 여기는 왜….”


인성이 황당해하고 있을 때, 인성의 아내는 또 다른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 자신들을 특정 호수로 소개하고 있었다. 인성은 더욱 혼란에 빠졌다.


“아, 조금 놀랐죠? 저희가 사실 매주 일요일마다 이렇게 아파트 주민끼리 모여서 모임을 하고 있어요. 오늘은 저희 집에서 하는 거고 다음 주는 1102호에서 할 예정에요.”


702호의 여성이 인성에게 말했다. 그제야 인성은 702호가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 알 수 있었다. 인성은 종교보다 더 위험한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에 기겁하며 빨리 집에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인성의 아내는 그렇지 않았다. 방금 봤을 뿐이지만 어느새 집에 모인 다른 주민들과 대화를 자연스럽게 이어가고 있었다. 인성은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서 아내의 손을 붙잡고 나가려고 했다. 


“과일이라도 먹고 가시지. 벌써 가시게요?”


702호의 여성은 집에 가려는 둘을 붙잡으려고 했다. 


“에이, 702호. 오늘 갑자기 이런 모습 보니 얼마나 당황하셨겠어요? 피곤들 할 텐데 어서 들어가요.”


무리 중 가장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가 702호를 말렸다. 그는 1502호, 즉 인성네 부부 바로 옆집에 사는 사람이었다. 


인성은 주민들에게 인사하고 다시 자신의 집으로 갔다. 인성과는 다르게 인성의 아내는 아파트 모임을 흥미롭게 생각했다. 


“신기하네. 요새도 이렇게 다들 모여서 이야기도 나눈다는 거….”


“혹시 거기 갈 생각은 아니지? 나는 절대 반대야.”


인성이 이렇게 소리쳤지만 몇 주 지나지 않아 그들은 결국 아파트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거의 매일 오가며 마주치는 가운데 그들을 완전히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702호를 비롯하여 모임 멤버들의 자식들이 인성네의 아이들과 비슷한 또래였기에 교육과 관련된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다는 것도 한몫했다. 자식들이 같은 학교까지 다니는 마당에 주민들과 친하게 지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모임은 인성의 걱정과는 다르게 아주 평범하게 진행되었다. 집 안에 모여서 밥을 같이 먹기도 했고 가볍게 커피를 마시기도 했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는 화상으로 만남을 가지기도 했다. 밖에서 조금 근사한 곳에서 식사를 한 적도 있었다. 아이들끼리도 친해져서 모임과는 상관없이 서로 만나 놀거나 스터디를 하기도 했다. 겉으로 보기엔 아파트 주민끼리 친하게 지내면서도 서로 긍정적인 영향까지 주는 모임이었다. 그리고 이 모임은 매주 진행되었다. 


모임의 모든 멤버가 매주 참여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매주 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느새 멤버들과 친해진 인성의 아내는 매주 참여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인성은 아니었다. 모임에 참여하고 싶지 않았던 인성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모임에 빠지기 시작했다.


인성이 모임에 빠지고 싶었던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참여하는 사람들의 태도 때문이었다. 인성의 아파트 주민들은 소위 잘 나가는 사람들이었다. 의사, 변호사, 검사, 회사 대표, 고위 공무원 등이 모여있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기는 했지만 모임의 주도권은 대부분 직업적으로 잘 나가는 사람들이 가져갔다. 모임에서 가장 발언권이 강한 702호 역시 부부가 잘 나가는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인성이 보기에 모임에서 몇몇 사람들은 항상 잘난 척하는 것 같았다. 인성은 아주 평범한 기업의 평범한 직급을 가진 사람이었기에 몇몇 사람들이 은연중에 보이는 선민의식을 불편해했다. 인성의 아내는 남편의 그런 반응이 자격지심이라고 했지만 인성은 자신만 불편한 것이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실제로 인성 말고도 몇몇 사람들은 소위 잘 나가는 그룹에게 선민의식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인성은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며 그들만의 연대를 만들려고도 했었다. 그러나 그렇게 느끼는 사람들은 ‘그렇다고 어쩔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우리 자식들도 그쪽 애들이랑 어울리고 이것저것 고급 정보도 얻고 나쁠 건 없는 것 같은데요?’라는 반응을 보이며 인성의 반란을 경계했다. 인성의 아내마저 그런 인성을 나무랐기 때문에 인성은 가급적 모임에 참석하지 않는 방향으로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려고 했다. 


그러나 오늘 모임은 빠질 수가 없었다. 702호는 인성이 몇 달 동안 계속 모임에 참석하지 않는 것에 대해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기 때문이었다. 결국 인성은 3달 만에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인성은 3달 만에 모임에 참여했지만 모임은 3달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었다. 아주 평범한 식사가 계속되고 몇몇 사람들의 잘난 척이 시작되었다. 아부를 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말에 경청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웃으면서 그들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인성은 오랜만에 그들의 말을 들으니 토할 것 같았다. 도대체 자신이 왜 편하게 휴식을 취해야 하는 일요일에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1501호 인성님은 재밌는 이야기 없으세요?”


502호 남성이 인성에게 물었다. 


“아, 예 제 이야기는 너무 평범해서요. 회사에서 특별한 일도 없고, 제 주변에도 특이한 일도 일어나지 않네요. 하하…. 어 저 죄송한데 제가 속이 안 좋아서 먼저 일어나도 괜찮을까요?”


인성에 말에 사람들의 표정이 굳고 순간 싸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인성의 아내는 웃으면서 어떻게든 수습하려고 했지만 그들의 표정을 풀어지지 않았다. 


“아, 그래요. 먼저 들어가세요. 다음 주에 또 봅시다.”


1502호 할아버지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인성에게 말했다. 인성은 할아버지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인성은 뒤도 안 돌아보고 밖으로 나갔다. 인성의 아내는 남편을 쫓아오지 않았다. 


집으로 들어온 인성은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벌컥벌컥 마셨다. 방 안에서는 자녀들이 공부하는 소리가 들렸다. 서울대를 다니는 502호의 장남이 인성의 공부를 도와주고 있었다. 인성은 하필 502호가 말할 때 자신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이 후회스러웠다. 그는 혹시나 자신의 아이에게 불똥이 튈까 조마조마했다. 

인성은 냉장고에서 과일을 꺼내 예쁘게 깎았다. 그리고 과자와 주스를 따랐다. 모든 세팅이 완료되자 인성은 아들의 방문을 노크했다. 아들이 문을 열었다. 


“고생 많아요. 여기 이거 드시면서 하세요.”


“아이코, 벌써 오셨네요?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저희 조금 조용히 하면서 공부할까요?”


훤칠하게 생긴 702호 장남이 일어나 인성이 내온 간식거리를 받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수현이 공부 봐줘서 고마워요. 저 그냥 안방에 있을 테니깐 필요한 것 있으면 말해요.”


인성은 방문을 닫고 바로 안방으로 들어갔다. 인성은 아까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며 702호에게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만 지금 바로 사과 메시지를 보내면 모임에서 자신의 이름이 언급될 것이 뻔했기에 모임이 다 끝나고 아내가 돌아오면 사과하기로 했다. 눈치를 보고 싶지 않았던 인성은 결국 702호의 눈치를 크게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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