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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Dec 21. 2022

12월 21일 정서진의 하루

종강

“방학 때 뭐 할 거야?”


서진이 지유에게 물었다.


“글쎄? 영어 공부도 하고 그러려고. 너는?”


지유가 무심하게 말했다. 


“영어? 어어 나도 영어 공부하려고.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서진이 머리를 만지며 말했다. 서진은 자신을 쳐다보는 지유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그랬다간 자신의 마음이 들킬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종강날이었다. 대학교 1학년이었던 서진은 1년이 쏜살 같이 흘러간 것이 아쉬웠다. 하지만 그가 정말로 아쉬웠던 것은 짝사랑하는 지유와 당분간은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같은 학교, 같은 과, 같은 수업을 듣는다는 것 외에는 서진이 지유에게 연락할 명분은 거의 없었다. 서진이 지유에게 더 적극적으로 다가갔다면 다른 이야기였겠지만 서진은 1년째 지유에게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서진이 지유를 처음 만난 것은 대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였다. 하지만 처음부터 지유를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 서진에게 지유는 그저 수많은 동기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그런 서진이 지유와 친해진 것은 같은 수업, 같은 조를 하면서부터였다. 서진은 같이 수업은 들으면서 점차 지유가 매력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수업에 대한 이야기 외에는 개인적인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는 사이였지만 서진은 그렇게라도 지유와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그 정도가 끝이었다. 서진이 지유에게 더 다가가면 안 되는 이유도 있었다.  

지유는 같은 과 선배와 사귀고 있었다. 지유가 입학하자마자 그녀가 마음에 들었던 복학생 선배인 준혁은 용기 있게 그녀에게 고백했다. 그렇게 둘은 과 공식 커플이 되었다. 서진이 지유를 마음에 들어 하기는 했지만 그 마음이 깊어지기도 전에 지유가 준혁과 사귀었기 때문에 서진은 빠르게 그녀를 포기할 수 있었다. 여름 방학이 되었을 때 서진은 친구들에게 부탁해서 소개팅을 몇 번 했었다. 하지만 모두 좋은 결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2학기가 되자 서진은 지유와 또 같은 수업을 듣게 되었다. 이번에도 조별 과제가 있는 수업이었고 둘은 같은 조가 되었다. 오랜만에 지유를 보자 서진은 다시 심장이 두근거렸다. 서진은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애써 자신의 마음을 외면하려고 했다. 

그러나 여름 방학 사이에 지유가 준혁과 헤어졌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자 서진은 마음을 더욱 주체할 수 없게 되었다. 서진은 자신에게 기회가 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일부러 지유와 더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 지유는 그런 서진에게 친절하게 대했지만 서진이 느끼기에 어딘가 알 수 없는 마음의 벽이 있는 것 같았다. 

서진은 친구들에게 자신이 지유를 좋아한다고 알리고 어떻게 하면 그녀에게 다가갈 수 있는지 조언을 구했다. 연애 경험이 거의 없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던 서진은 그들에게서 대단한 조언을 들을 수는 없었다. 그나마 괜찮은 방법도 있었으나 소심한 서진의 성격 탓에 그 방법조차 제대로 실행하지 못했고 결국 지유와의 관계는 아무런 진척이 없었다. 그렇게 가을이 지나 겨울이 되었고 종강일이 찾아왔다. 


서진은 학과 선배들이 주최한 종강 파티에 참여하게 되었다. 지유도 마찬가지였다. 서진은 어떻게든 지유의 옆자리에 앉으려고 했지만 성격 좋고 인기 많은 지유 옆을 노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결국 자리다툼에서 밀린 서진은 구석 자리에 앉아 술 잘 마시는 선배들과 함께 술만 계속 마셨다.


“오, 서진이 너 오늘 술 좀 잘 먹는다?”


서진이 술을 계속 벌컥벌컥 마시자 신이 난 남자 선배는 계속 그에게 술을 따랐다. 서진은 술을 마시면서도 시선은 계속 지유에게 가있었다. 그리고 그런 서진의 시선을 눈치챈 사람은 바로 남자 선배였다.


“어? 잠깐. 잠깐. 너 혹시?”


남자 선배는 미소를 지으며 서진을 쳐다보며 말했다.


“네?”


“이 각도는… 음... 곽지유가 있는 쪽이군. 너 지유 좋아하지?”


“앗… 아니에요. 윤호 형.”


“아니긴 뭐가 아니야. 딱 보이는구먼.”


서진이 필사적으로 부정했지만 윤호는 재밌다는 듯 웃으면서 말했다.


“앵? 너 지유 좋아한다고? 야 너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준혁이 아직도 지유 잊지 못하는데.”


진작에 술에 취해있던 서진의 옆자리에 앉은 민아가 갑자기 반응을 보이더니 서진을 흔들며 말했다. 민아는 준혁과 친한 선배였다. 


“잊지 않으면 어쩔 건데. 헤어진 지 꽤 지났잖아? 준혁이가 오늘 여기 오는 것도 아니고. 서진이가 좋아할 수도 있지.”


“아.. 형 누나. 조용히 좀….”


서진은 주위를 살피면서 혹시나 이 이야기가 다른 사람들에게 들릴까 걱정하며 말했다.


“조용히 하는 건 민아가 하면 될 것 같고…. 야 정서진. 잠깐 밖으로 나가자. 산책 좀 하자.”


윤호는 안절부절 못 하는 서진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편의점으로 간 윤호는 담배와 숙취소제를 샀다. 밖으로 나온 윤호는 서진에게 숙취해소재를 건넸다.


“이거 받아.”


“감사합니다. 형.”


“너 담배 피던가?”


윤호가 담배를 하나 꺼내 입에 물며 물었다. 


“아뇨. 담배는 좀….”


“그래? 그럼….”


담배를 입에 물었던 담배를 집어넣었다.


“아, 형 피우셔도 괜찮아요.”


“괜찮아요? 내가 네 허락받고 담배 피워야 하냐?”


“아…죄송해요.”


“됐어. 그냥 피우기가 싫어져서 그러는 것뿐이야.”


“네….”


“보아하니 우리 숙맥이신 정서진 님께서 용기가 없어서 지유한테 못 다가가는 것 같고. 오늘 용기 내서 지유랑 좀 더 친해져보려고 했는데 늑대 같은 다른 남자애들이 지유 옆에 있으니 신경은 쓰이고. 그렇다고 내가 용기는 못 낼 것 같고. 그래서 미칠 것 같고. 보이는 건 술뿐이라 계속 들이켜고 있는 거지?”


“아….”


“뭐가 ‘아’ 야. 아까부터.. 뭐 연애야 누가 조언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고. 결국 당사자한테 달린 일이긴 한데. 그냥 하고 싶은 말은 너무 두려워하지 말라는 거야. 네가 흠… 하고 다니는 스타일은 좀 바꿀 필요는 있기는 한데. 그렇다고 네가 경쟁력이 없는 건 아니니, 그냥 너 다운 것 보여주고. 조금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 너 누구 조언 듣고 계속 그러지?”


“네….”


“그래서 되는 건 있고?”


“아니요.”


“걔들 조언 정확히 그대로 실천은 하고 있고?”


“아… 아니요.”


“거봐. 그럴 줄 알았다니깐. 그냥 다가가세요.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리고 그 결과가 좋을 것이라 생각하지도 말고. 지유가 너 거절할 수도 있어. 그런데 그게 네가 못 나서 그런 건 아니야. 그냥 지유가 아직 너를 좋아할 정도는 아니던가, 아니면 네가 지유 스타일이 아닐 수도 있지. 거절당하면 그냥 몇 번 울고 다른 사람 찾으면 되는 거고, 만약 지유가 ‘오 그래 나도 너 좋아’라고 말하면 땡큐고.  그냥 지금처럼 제대로 용기 내지 못하고 고백 못해서 후회하는 것 보다야 어떤 경우가 돼도 더 좋은 결과인 것 같은데? 에휴… 겨우 너보다 3살 많으면서 뭔 꼰대도 아니고 이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여하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는 거야.”


“네…. 고마워요. 형.”


서진은 고개를 숙이고 땅바닥을 쳐다보며 말했다.


“들어가라. 지금 쯤이면 아무 자리에 들어가도 별 말 안 하니깐. 지유 옆에 좀 앉고 그래. 그 숙취해소제도 꼭 먹고 가. 난 담배 피우고 갈게.”


윤호가 아까 피우려던 담배를 한 개비 물며 말했다. 서진은 윤호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고 술집으로 다시 들어갔다. 안은 더욱 시끄러워졌다. 곳곳에서 술게임을 하고 있었다. 서진은 지유 주변을 살폈다. 마침 지유의 오른쪽 자리가 비어있었다. 서진은 심호흡을 크게 하고 지유가 있는 테이블로 갔다. 


“여~정서진. 이루와, 빨리 와”


지유의 테이블에 있는 사람들이 서진을 환영했다. 그중에는 지유도 있었다. 서진은 바로 지유의 옆으로 자연스럽게 앉았다. 


“정서진.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앉는 게 어디 있어? 사장님~ 여기 잔 하나 주세요. 술 한잔 드셔야죠.”


서진의 앞에 있는 종원이 큰 소리로 말했다. 술잔이 도착하고 종원이 서진에게 술을 따랐다. 서진은 바로 술을 한잔 마셨다. 서진은 너무 많이 마셔서 올라올 것 같았다. 하지만 서진은 겨우 정신을 부여잡았다. 서진은 바로 옆에서 웃고 있는 지유를 쳐다봤다. 서진은 지유의 얼굴만 봐도 기분이 좋았다. 서진은 오늘 어떻게든 지유와 보다 가까워질 생각이었다. 그리고 방학 때도 그녀에게 연락해서 어떻게든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기로 했다. 술기운이 올라와 서진에게는 자신감이 생겼다. 서진은 지유를 잠시 쳐다보고 미소를 지었다. 지유는 그런 서진을 의아해하며 쳐다밨다. 


“자, 그럼 정서진 씨 오셨으니 바로 다음 게임 들어갑니다!”


종원의 큰 목소리와 함께 테이블의 분위기가 다시 달아올랐다. 서진은 집중하기로 했다. 일단 그에게는 지금 이 자리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 끝까지 지유와 함께 있는 것이 최대의 목표가 되었다. 그렇게 종강을 해서 신난 학생들의 목소리와 함께 종강의 밤은 달아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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