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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Dec 19. 2022

12월 19일 유정민의 하루

다 알고 있습니다

“아 그거요? 그거 저도 그거 알죠.”


정민은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을 무엇보다 싫어한다. 그래서 그의 말에는 ‘아 그거요? 저도 알아요!’라는 문장이 항상 있다. 굉장히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정민은 항상 아는 척했다.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할 때, 정민은 항상 그들의 말을 귀담아들었다. 평범한 주제라면 바로 그들의 대회에 끼어들고 만약 모르는 주제라면 적당히 들으면서 상황을 파악하려고 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대화가 파악되면 ‘아아 그거 이런 거 아니에요?’라고 대충 때려 맞추면서 대화에 끼어들었다. 정민은 앞선 대화에서 나온 단어를 반복하면서 대화에 참여하기 때문에 상대방도 정민이 대화 주제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일 것이라 판단했다. 대화가 깊어지려고 하면 정민은 한발 물러서서 다음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사람들의 대화에 집중했다. 그러다가 다시 끼어들 수 있는 타이밍이 되면 정민은 대화에 참여했다. 이렇게 상당히 많은 주제에 대해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가 되니 주변 사람들은 정민이 아는 것이 많다고 생각했다. 

정민은 다른 사람과의 대화에서 주워들은 지식을 뽐내기도 했다. 덕분에 정민은 유식하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정민이 자세한 내용을 아는 것은 아니었지만 보통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는 지식의 겉면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정민은 그런 점을 이용했다. 

하지만 정민은 아는 척을 넘어서 자신이 정말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게 문제였다. 정민은 자신이 아는 것이 맞다며 우기는 타입이었다. 그는 어디서 잘못 들은 지식이나 잘 알지도 못하고 겉으로만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해 이야기하며 남을 가르치려고 했다. 회사 일을 할 때도 이런 태도를 보여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난처할 때가 많았다. 만약 그의 말에 대해서 반박을 하려고 하면 정민은 ‘잘 모르시면서 그래요. 제 말이 맞다니까요?’라고 말하며 상대방을 무안하게 만들었다. 그러다가 정민이 잘못 알고 있다는 사실이 명백해지면 그는 오히려 당당하게 대응했다. ‘그러니까 제 말이 그거였어요! 이렇게 말하는 정민을 보며 정민과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그와의 말싸움에서 이길 자신이 없다고 생각했다. 

정민은 회의 시간에도 계속 아는 척을 했다. 정민보다 직급이 높은 사람이 하는 이야기에 대해서 정민은 항상 자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회의가 끝나면 정민은 부하 직원들에게 회의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말하는데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전하는 것이라 틀린 정보가 많았다. 그런 정민의 성격을 알고 있던 동료는 ‘잘 모르겠으면 질문을 하시는 건 어떨까요?’라고 말했지만 오히려 정민은 ‘아니요. 어떤 말씀인지 다 알겠던데요. 뭐. 걱정 마세요.’라는 반응을 보였다. 

정민과 직접 일할 일이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정민에 대한 평가가 좋았지만 정민과 가까이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의 정민의 평가를 달랐다. 그리고 정민의 상사들은 정민이 아는 것이 많아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정민 때문에 미치는 것은 부하 직원들 뿐이었다. 

하루는 참다 못 한 부하 직원 중 한 사람이 정민이 기분 나쁘지 않게 ‘이 부분은 요새 이렇게 바뀌어서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가 일주일 넘게 정민에게 털렸다. 정민은 흥분하면서 ‘네가 지금 나를 가르치려는 거냐? 네가 아는 것을 내가 모를 거라 생각하냐?’라고 말했다. 

정민이 하는 행동 중 가장 큰 문제는 가짜 정보를 흘린다는 것이었다. 남의 말을 듣고 아는 척을 하다 보니 생기게 된 것인데 그는 흔히 말하는 인터넷의 가짜 뉴스, 가짜 정보를 신봉했다. 그리고 자신이 아는 정보를 다른 사람에게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정민은 자신이 아는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했다. 세상에 대한 소식뿐만 아니라 회사에 떠도는 소문도 대상이었다. 정민에게 익숙한 사람들은 그 말이 거짓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적당히 걸러들었지만 익숙지 않은 사람들은 정민의 말을 믿었다가 피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 이때도 정민은 무적의 논리로 빠져나갈 수 있었다. ‘어? 거 봐요. 제가 말한 걸 정확히 이해해야죠. 제가 말한 뜻은 이런 거였어요.’, ‘상황이 바뀌었나 보네요. 그럴 수 있다고도 들었습니다’라며 자신이 한 말에 대한 책임을 전혀 지지 않았다. 

오늘도 정민은 먼저 대화를 하고 있는 동료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껴서 그들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었다. 그리고 틈이 생기자 그는 평생 동안 그 대화 주제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천연덕스럽게 행동했다. 대화를 하던 상대방은 정민이 역시 아는 것이 많다며 좋아했고 주위에서 정민의 행동을 지켜보던 부하 직원은 정민이 또 저런다며 속으로 혀를 찼다. 다른 사람들의 반응이 어떻든 간에 정민은 평생 계속해서 아는 척하며 살 것이다. 그게 그가 여태까지 살아온 그만의 생존 비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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