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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Dec 20. 2022

12월 20일 이재우의 하루

노래의 마지막 멜로디

재우의 기억 속의 아버지는 돈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다. 성공한 사업가였던 재우의 아버지는 집에도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사업이라는 이유로 주로 해외를 떠돌았다. 어린 재우는 아버지가 그리웠다. 하지만 보상은 확실했다. 잘 나가는 아버지 덕분에 재우의 집안은 한 번도 돈걱정을 한 적이 없었다. 재우의 어머니는 매일 백화점에 쇼핑을 하러 다녔고 재우도 원하는 것을 거의 다 얻을 수 있었다. 재우의 아버지도 가족들의 소비 습관에 대해서 터치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가족들의 소비 패턴에 신경 쓸 시간도 없었다.

그런 아버지가 유일하게 신경을 쓴 것은 재우의 음악적 재능이었다. 거의 집에 들어오지 않는 재우의 아버지였지만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전화를 해서 재우의 피아노 실력을 물었다. 재우가 콩쿠르에 나가는 날이 되면 재우의 아버지는 모든 일을 재쳐두고 아들의 공연을 보러 왔다. 재우는 그래서 더욱 피아노를 열심히 쳤다. 자신의 아버지를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재우는 피아노를 치는 것을 싫어했다. 재우가 피아노에 흥미를 느꼈던 시절은 처음 피아노를 접했을 때뿐이었다. 재우가 피아노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아버지는 재우를 혹독하게 트레이닝시켰다. 한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피아노 선생님을 붙여서 재우의 피아노 실력을 키우려고 했다. 재우는 아버지를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더욱 노력했다. 자신이 열심히 해야 아버지가 자신을 바라봐준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재우의 아버지는 아들이 피아노를 잘 치면 칭찬해주는 타입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재우의 피아노 실력을 만족스러워하지 않았다. 재우가 상을 받아도 마찬가지였다. 그럴 때마다 재우의 아버지는 “더 열심히 해야 한다.”라고 말할 뿐이었다. 반대로 재우가 수상을 못 하거나 피아노를 잘 치지 못했을 때 재우의 아버지는 역정을 냈다. “이런 쓸모없는 녀석!” 어린 재우가 들었던 말 중 가장 충격적인 말이 자신이 사랑하는 아버지의 입에서 나왔다. 처음에 재우는 울었지만 그것으로는 아무것도 나아지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재우가 아버지를 실망시키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피아노를 더욱 열심히 치는 것뿐이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재우는 세상에는 자신보다 더 재능이 많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래보다 피아노를 잘 친다고 칭찬받던 재우는 언젠가부터 주위에 경쟁하는 사람들에 비해 평범해졌다. 재우는 처음에는 절망했고 더욱 열심히 하면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럴수록 경쟁자들과의 실력차는 더욱 벌어졌다. 재우는 그때 ‘세상에는 노력만으로는 되지 않는 것이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재우는 점점 피아노를 피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결국 아버지의 꾸지람으로 돌아왔지만 사춘기에 접어든 재우는 그런 아버지에게 저항했다. 부자 사이는 점차 멀어졌다. 

아버지는 재우가 음대에 가기를 원했다. 재우는 자신의 실력으로는 음대에 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끝까지 재우의 음대행을 밀어붙였다.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재우는 어떻게든 음대에 가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또 다른 불행의 시작이었다. 

재우는 음대를 다니는 동안 행복하지 않았다. 이제 완전히 격차가 벌어진 상대들과 경쟁을 해야 했고 재우는 음악으로 밥을 먹고살 수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괴로워하는 것은 재우뿐이었다. 친구들은 그런 재우가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넌 돈 걱정 없지 않아?”, “너는 아버지가 피아노 학원이라도 차려줄 테니깐 좋겠다.”, “넌 음악은 취미지? 너 나중에 아버지 사업 물려받을 거지?” 친구들의 반응은 이랬고 재우가 아무리 고민을 말해도 그들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친구들이 생각한 데로 재우의 진로가 결정되었다. 자신의 아들이 음악가로서 더 활동하기에는 애매한 재능이라는 재능이라는 것을 이제야 인정했다. 재우의 아버지가 하던 사업이 기울어 이제 그에게는 돈은 없었지만 그는 여태까지 자신이 모은 재산으로 아들에게 피아노 학원을 차려줬다. 아들의 의사는 중요하지 않았다. 재우의 아버지는 아들이 그렇게라도 음악가의 길을 걷기를 원했다. 재우는 별말 없이 아버지의 뜻을 따랐다. 재우는 속으로 ‘친구들의 말이 맞았네.’라고 생각했다. 

재우는 아버지와 진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재우의 아버지가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고 나서야 부자는 서로 같이 보내는 시간을 늘릴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서먹했지만 재우가 먼저 아버지에게 다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재우가 살아온 길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재우가 어떤 고민이 있었는지. 재우는 모든 이야기를 자신의 아버지에게 말했다. 재우의 아버지는 그런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재우가 아버지의 눈물을 본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재우는 아버지로부터 의외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바로 아버지의 꿈이었다. 재우의 아버지는 어린 시절 음악을 하는 것이 꿈이었다. 재우의 아버지는 대중 가수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기타를 배웠고 공연을 하는 사람들을 따라다녔다. 재우의 아버지는 동네에서 노래를 곧잘 한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막상 진짜 가수들의 노래를 듣고는 자신의 재능이 얼마나 부족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재우의 아버지는 2년 정도 음악을 하려고 했지만 결국 그것이 자신의 길이라는 것을 깨닫고 음악을 포기했다. 그 이후로 그는 사업을 했고 지금의 자리에까지 올라올 수 있었다. 

재우의 아버지는 아들이 태어났을 때, 아들이 원하는 것을 하게 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아들이 어쩌면 음악의 재능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마음속 깊은 갈망이 생겼다. 그리고 그 갈망은 집착이 되어 재우의 목을 옭아매었다. 재우의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의 못다 한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재우의 아버지도 아들이 대단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는 인정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더욱 아들에게 채찍질을 했다. 어떻게든 아들이 진짜 재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러다가 대학생이 된 아들이 괴로워하는 것을 봤고 결국 재우의 아버지는 모든 것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때는 자신도 아들도 남은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려줄 사업도 없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그동안 모든 재산으로 아들에게 피아노 학원을 차려줬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재우는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그래서 그는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이후로 아버지를 찾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가 자신의 인생을 완전히 망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재우의 아버지가 몇 번이나 그에게 전화를 했지만 재우는 받지 않았다. 

그렇게 반년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재우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재우는 자신의 행동이 후회됐다. 아버지의 영정 사진 앞에서 재우는 펑펑 울었다. 부자의 이야기는 서로 제대로 화해하지도 못하고 끝나갔다. 

며칠 후, 재우는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오랜만에 집으로 갔다. 아버지의 방에는 아버지가 살아온 모든 흔적이 남아있었다. 그러다가 재우는 방구석에 놓여있는 작은 상자를 발견했다. 박스를 열어보니 아주 낡은 노트들이 가득했다. 재우는 노트를 펼쳐봤다. 그곳에는 악보가 적혀있었다. 수십 곡, 아니 수백 곡 이상의 노래들의 악보였다. 재우는 처음에는 아버지가 즐겨 부르던 노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악보에 적힌 노래들은 세상에 나온 적이 없던 음악이었다. 재우는 다른 상자 안에 들어있던 아버지의 일기장을 보고 나서야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바로 아버지가 젊은 시절부터 죽을 때까지 습작으로 만든 악보였다. 재우의 아버지가 젊은 시절부터 노래하고 싶었던 모든 멜로디가 그 악보에 담겨있었다.

재우는 아버지의 악보를 가지고 자신의 집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피아노로 아버지의 악보를 연주했다. 대부분의 음악은 엉망이었다. 멜로디가 매끄럽게 이어지지도 않았고 어디서 많이 들었던 노래들도 많았다. 재우는 아버지의 음악을 연주하며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러니깐 아버지가 자신이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구나.’ 재우는 아버지가 어떤 마음이었을지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그는 그러면서도 이렇게 평생 노래를 만들려고 했던 아버지의 노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재우는 그렇게 몇 날 며칠 동안 아버지의 노래를 연주했다. 

며칠 동안 아버지의 악보를 연주하던 재우는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에 다 달았다. 재우는 잠시 그 페이지에서 멈칫했다. 악보에 제목이 적혀있었기 때문이었다. 제목은 ‘아들’이었다. 재우는 마지막 페이지에 눈물 자국이 묻어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어렴풋이 이 노래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라 짐작했다. 재우는 음악을 연주했다. 이제까지 찾아보기 힘들었던 아주 훌륭한 멜로디였다. 재우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하지만 악보는 모두 완성되어 있지 않았다. 음악의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악보는 끊겨있었다. 재우는 생각에 잠겼다. ‘아버지라면 이 멜로디를 어떻게 완성시켰을까?’ 재우는 자신의 상상으로 남은 멜로디를 만들었다. 수십 번, 수백 번에 걸쳐 아버지의 남은 멜로디를 추측하려고 했다. 어떤 멜로디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1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12월 20일. 오늘은 재우의 학원 수강생들의 연주회가 있는 날이었다. 재우의 수강생 중에는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아이들도 있었고 피아노에 영 소질이 없는 아이도 있었다. 하지만 재우는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모두가 즐겁게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려고 했다. 덕분에 재우의 학원 수강생들은 자신의 선생님을 좋아했고 학부모들도 만족해했다.

연주회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학부모들은 저마다 핸드폰 카메라를 들고 아이들의 연주를 담으려고 했다. 재우는 그런 학부모들을 보면서 아버지를 다시 한번 생각했다. 재우의 기억 속의 아버지는 항상 엄한 사람이었지만 콩쿠르에서 카메라를 들고 아이 같은 모습으로 즐거워하던 아버지의 모습도 있었다. 재우는 지금 아이들의 연주를 듣는 학부모들도 자식들을 엄하게 하지 않고 지금처럼 즐겁게 아이들의 연주를 즐겨봐 주기를 바랐다. 

연주회가 끝날 때쯤, 재우는 특별 공연을 하러 무대에 올랐다. 재우는 그곳에서 자신이 생각하던 바를 학부모들에게 말했다. 그리고 그는 피아노를 치기 위해 의자에 앉았다. 재우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악을 연주했다. 재우의 재능이 실제 음악 하는 사람들에 비해 부족할 뿐이지 기본 실력이 모자란 것은 아니었다. 그는 최고 수준의 연주를 들려주며 연주회에 참석한 아이들과 학부모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연주가 끝나자 곳곳에서 박수갈채 소리가 울려 퍼졌다. 


“감사합니다. 이제 마지막 곡으로 조금 특별한 노래를 연주하려고 합니다. 사실 저희 아버지가 예전에 음악을 하고 싶어 하셔서 이것저것 노래를 몇 곡 만드셨는데요. 오늘은 아들인 제가 아버지의 노래를 하나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아버지는 음악을 하셨던 분은 아니셨어요. 아마추어였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은 대단하셨던 분이었습니다. 오늘이 아버지의 노래가 처음 데뷔하는 날이겠네요. 지금쯤 하늘에서 저를 지켜보고 있을 아버지를 기억하며, 그의 노래를 연주하겠습니다. 노래 제목은 ‘아버지와 아들’입니다.”


연주의 시작을 알리는 박수 소리가 끝나자 재우는 눈을 감고 크게 한숨을 쉬었다. 지난 1년 간 그토록 완성시키고 싶었던 아버지의 마지막 노래를 처음으로 연주하는 것이기에 그는 무척 떨렸다. 아주 조용한 소리와 함께 재우는 연주를 시작했다. 재우는 지금 이 순간은 아버지와 함께 연주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의 멜로디로 시작되어 아들의 멜로디로 끝나는 노래. 재우의 아버지가 그토록 완성시키고 싶었던 노래의 마지막 멜로디가 연주회장 곳곳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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