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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Dec 22. 2022

12월 22일 유희태의 하루

정년 퇴임

올해 정년 퇴임을 앞둔 희태는 오랜만에 제자들과 만나 식사를 하기로 했다. 정년퇴임식 때 보기로 되어있는 제자들도 있었지만 따로 자리를 마련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제자들의 뜻이었다. 희태가 지도한 제자는 많았지만 이번에 만나는 제자들은 특히 희태를 잘 따르고 비교적 최근에 각자의 공부를 마친 사람들이었다. 희태는 제자들이 미리 예약한 한정식 식당에 도착했다. 종업원이 그를 예약한 방으로 안내했고 먼저 자리에 앉아 있던 제자들이 일어나 자신들의 지도 교수에게 인사를 했다. 


“그래, 그래. 다들 잘 있었지? 다들 이제 앉지.”


희태는 제자들이 안내하는 자리로 가서 앉았다. 한 제자가 종업원을 불러 미리 주문한 음식을 내와달라고 했다. 곧이어 음식이 나오고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의 많은 음식이 세팅되었다.


“뭐 이렇게 많이 시켰냐. 다들 너무 무리한 거 아니야?”


희태가 음식을 보고 말했다. 


“아니에요. 교수님. 교수님을 위한 자리인데 이 정도는 해야죠.”


오늘 모임을 주최한 효준이 말했다. 효준은 얼마 전 지방의 한 대학교의 조교수로 임용된 사람이었다. 


“우리 정교수님. 이름 그대로 정교수가 되는 날도 오겠지. 요새 고생이 많지?”


희태가 맞은편에 앉은 효준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니에요. 그래도 아직은 재미있습니다.”


“지금 아기는 있던가?”


“아뇨. 아직은 생각이 없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그런 사람이 많다고 하니 뭐 정교수가 하고 싶은데로 해요. 우리 과 김재준 교수도 그런데 뭘. 가끔 보면 부러울 때도 있어. 에휴 자식들. 내 마음대로 되는 것도 없어.”


“그래도 아드님이 로스쿨 가셨다면서요?”


“가서 좋기는 한데 기가 센 아이는 아니라서 걱정이야.”


“교수님 닮아서 똑똑하고 현명한 친구일 테니 잘하겠죠.”


“정교수, 예전에는 이런 말도 못 하는 사람이었는데 이제 좀 변했어 하하.”


희태가 효준을 가리키며 크게 웃었다. 효준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도 따라 웃었다.


“그래. 우박사는 요새 어때?”


희태가 오른쪽에 앉은 철용에게 물었다. 철용은 박사 학위를 따고 학교가 아닌 연구 기관에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저야 뭐 언제나 똑같죠. 효준이 형, 아니 정교수님 뵈니 좀 부럽기도 하네요.”


철용이 먹던 음식을 내려놓고 말했다. 


“우박사는 언젠가 우리 학교 와야지? 내가 우박사 스무 살 때부터 봤는데 이렇게 박사 학위도 받고 기관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니깐 참 세월이 빨리 지났다는 생각도 해.”


“하하. 그러게요. 저 처음 입학했을 때, 교수님 수업 수강 신청 실패해서 교수님께 제발 수업 듣게 해달라고 애원하던 게 어제 같은데 말이죠.”


철용은 대학교부터 박사까지 모두 희태의 학교에서 공부한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희태가 철용에게 갖는 애정은 남달랐다. 


“그때 우박사 형이 아파서 간호하느라 수강 신청 제대로 못 했다고 했잖아? 그때 아 이 자식 거짓말 하네?라고 생각했지. 그렇게 티가 나는 말을 하는데 누가 속을까 싶더라고. 오히려 걱정되더라. 아 이 자식 이 험난한 세상 어떻게 살려고 하지?”


“하하. 맞아요. 그때는 그렇게라도 수업을 듣고 싶었어요.”


“요새도 아직 그러는 학생들 있어. 첫 수업 시간 때마다 매번 우박사 같은 사람이 있어. 자기 부모님 파는 사람도 있고, 해외여행을 다녀와서, 요새는 코로나 때문에 그랬다는 등 별 말을 다 했지.”


“그만큼 교수님 수업이 좋아서 그러겠죠.”


철용이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그 말을 듣자 희태는 기분이 좋은지 크게 웃었다. 


“이 사람들이 말만 늘었어. 우리 송박사님은 회사는 괜찮아?”


희태는 이번에는 효준 옆에 앉은 아연에게 근황을 물었다. 아연은 철용과 비슷한 시기에 박사 학위를 딴 아연은 학교나 기관이 아닌 일반 회사로 취업했다. 원래 그녀는 일을 하다가 박사 학위가 필요해 공부를 더 한 케이스였다. 그녀가 취업한 곳은 원래 그녀가 박사 공부를 하기 전에 다니던 곳이었다. 


“전 정말 똑같긴 한데. 회사 다니다가 공부하다가 다시 회사 다니니깐 오히려 적응을 못 하겠네요. 쉽지는 않지만 저도 학교로 돌아갈까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도 회사에서 연락이 계속 오네요.”


아연이 잠깐 보던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그래, 그래. 송박사 성향은 학교에 보다 어울릴 거야. 잘 생각해 봐요. 모르는 거 있으면 나나 옆에 정박사 이야기도 좀 들어보고.”


“네. 감사합니다. 어… 저 죄송한데 전화가 자꾸 와서 잠깐 나가보겠습니다.”


“응. 그래요. 에휴 고생이 많네.”


아연은 다시 한번 희태에게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받으며 밖으로 나갔다. 


“마지막으로 우리 진대표. 동생한테 항상 소식은 듣고 있는데 일은 좀 어때?”


희태가 왼편에 앉은 명훈에게 물었다. 명훈은 철용과 마찬가지로 학교 출신으로 희태 밑에서 석사 학위를 딴 사람이었다. 공부보다 돈을 버는 것에 더 관심을 가진 명훈이었기에 그는 창업이라는 길을 택했고 1년 전 회사를 차려 사업을 하고 있었다. 


“하루하루가 그냥 전쟁입니다. 하하 진짜 미치겠어요.”


명훈이 입술을 깨물며 대답했다. 


“그래도 언론 보도도 좀 나오더구먼?”


“그거 돈 주면 다 나오는 것 아시잖아요. 저는 돈도 안 주고 수백 명의 기자들한테 뿌려서 겨우 겨우 기사 하나 나오게 하는 거지만.”


명훈이 민망해하며 말했다.


“아이템도 좋고 진대표가 워낙 리더십도 있으니 잘할 거라 믿어.”


“감사합니다. 제 동생은 민폐 안 끼치고 잘 지내죠?”


“내 지도 제자는 아니고 김재준 교수한테 물어야지. 나야 뭐 오다가다 잠깐 인사하고 내가 커피 사주고 그런 것 밖에 안 해서.”


명훈의 동생 역시 같은 학교를 나와 지금은 김재준 교수 밑에서 석사 학위를 공부하고 있었다. 명훈은 자신에 이어 동생도 공부를 계속하는 것에 대해 반대를 했었다. 하지만 명훈과 다르게 동생의 의지는 확고했고 그는 국내나 해외에서 박사 학위를 따서 학교 교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에휴, 죄송합니다. 전화가 좀 길어졌네요.”


전화를 마친 아연이 방으로 들어오며 다시 희태에게 고개를 숙였다.


“괜찮아요. 앉아, 다들 어서 음식 식기 전에 먹어.”


희태가 제자들에게 음식을 가리키며 말했다. 


“교수님. 저희 건배 한번 하시죠. 건배사 한번 부탁드리겠습니다.”


효준이 희태의 잔을 따르면서 말했다. 효준은 바로 자신의 잔과 다른 사람들의 잔도 채웠다. 술을 받은 철용, 아연, 명훈은 잔을 높이 들었다. 잡채를 먹던 희태는 음식을 모두 삼키고 나서야 잔을 들 수 있었다. 


“어. 오늘…. 내가 이런 말을 잘 못 해서 큰일이네. 퇴임식 때도 이런 거 시키겠지? 어.. 음… 여하튼. 오늘 이렇게 시간을 내줘서 고마워요. 내가 그동안 맡은 제자들이 한 두 명이 아닌데 이렇게 지금도 정기적으로 연락을 주고 서로 친하게 지내는 제자들은 흔하지 않아요. 다들 정말 잘 되어서 고맙고. 내가 좋은 교수는 아니었을 텐데 혹시 나 때문에 섭섭한 게 있으면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네요. 정말 다들 내 밑에서 고생 많았고 내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지만 여러분들의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니 자신감을 가지고 맡은 일을 열심히 해줬으면 좋겠어요. 다들 퇴임식 때 와주면 좋겠는데 사정이 안 되는 분들도 있으니. 오늘 맛있게 먹고 즐겁게 이야기하고 또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자, 그 멋진 건배사 같은 건 없고 그냥 다들 수고하셨습니다.라고 말하고 건배하죠!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교수님!”


희태와 제자들은 잔을 부딪히고 각자의 입 안으로 술을 옮겼다. 희태는 제자들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그는 교수를 하면서 후회되는 일도 많고 아쉬운 일도 많았지만 이렇게 제자들이 잘 되어서 찾아올 때 가장 교수가 되기를 잘 되었다고 느꼈다. 그는 이제 학교를 떠나 앞으로 이런 인연을 많이 만들지 못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다. 하지만 지금은 제자들과의 시간을 소중히 하고 그저 즐기기로 했다. 그렇게 퇴임을 앞둔 교수는 제자들과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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