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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Dec 23. 2022

12월 23일 김우석의 하루

40대의 끝

“40대가 끝날 때가 제일 애매한 것 같아.”


친구들과 술을 마시던 우석이 쓸쓸해하며 말했다.


“또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우석의 친구 중 하나인 승민이 우석을 한심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그냥 그렇지 않아? 10대가 끝날 때는 드디어 어른이 된다라고 생각해서 시원하기만 했고 20대는 아쉽기는 하지만 돈도 슬슬 벌기 시작하는 때니깐 그렇게 나쁘지 않았고 30대가 끝날 때는 좀 우울하긴 한데 그래도 힘이 났는데 40대는 이도 저도 아닌 것 같아. 이제 정말 젊다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늙었다고 할 수도 없고.”


“뭔 헛소리야? 우리 존나 늙었어”


우석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진철이 말했다. 


“우석이 말 틀린 것도 없어. 은퇴할 나이는 아직 멀었고,  먹고살 수 있는 수단은 줄어가고, 몸은 점차 늙고, 아직 자식들 학원비에 돈을 쓸 곳도 많은데….”


우석의 맞은편에 앉은 성훈이 술잔을 빙글빙글 흔들며 말했다. 성훈이 그런 말을 하자 우석을 비롯한 친구들은 숙연해졌다. 


“에이씨. 우리 언제 이렇게 늙었냐? 내년이면 우리가 만난 지도 30년 되는 거 아냐? 30년.. 하하 이게 말이 되나 싶다.”


승민이 의자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오늘 모인 친구들은 모두 대학교 동기였다.


“야 난 우석이 만난 지 벌써 40년이 되었어.”


진철은 우석과 어린 시절부터 친구인 사이였다. 둘은 같은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넘어 대학교까지 함께했다. 


“진짜 어쩌다가 시간이 이리 간 건지 모르겠다. 너희들 하고 다니는 걸 보면 아직도 20살 때 그 모습 그대로인 것 같아. 물론 얼굴은 늙었지만.”


우석이 술잔을 비우며 말했다.


“네가 제일 늙어 보이거든요. 야 김우석 얼굴만 보면 50대가 아니라 60대 같기도 해. 그렇지 않냐?”


승민이 우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지랄이요. 하여튼 이 새끼는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어.”


“어휴 이 자식. 아까는 분위기 잡으면서 센티한 척하더니. 이제야 내가 알던 김우석 답네. 다워.”


우석과 승민은 항상 이런 식으로 투닥거리는 사이였다. 둘 사이에 쌍욕이 오가도 친구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말만 그렇게 할 뿐 실제로는 두 사람의 우정은 깊었다. 서로 힘든 일이 있을 때면 가족보다 더 가족같이 챙기는 두 사람이었다. 


“에휴…. 야 술이나 좀 따라주라.”


성훈이 우석에게 잔을 내밀며 말했다.


“나는 좀 괜찮아졌는데 너는 왜 아직도 다운되어 있어?”


우석이 성훈의 잔을 채우며 물었다. 


“이런 말 안 하려 했는데… 에이 씨. 얼마 전 건강 검진받았는데 그리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성훈이 술을 한 잔 쭉 들이키며 말했다. 우석과 친구들은 충격받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야, 야. 너 이 씨 무슨 말이야? 그보다 너 그러면 술 마셔도 되는 거야?”


성훈의 옆에 앉은 진철이 성훈의 잔을 빼앗으며 물었다. 


“몰라. 이미 다 끝났는데 뭘. 휴우…. 우리 가족들 어떻게 하냐.”


성훈이 쓸쓸하게 말했다. 


“가족들은, 다들 알고 있어?”


우석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성훈을 쳐다봤다.


“아니. 아직은.”


“야 병원에서 뭐라고 하는데? 너 지금 멀쩡하잖아?”


승민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그는 지금이라도 성훈이 거짓말이라고 말해주기를 바랐다. 


“꼭 그렇지도 않아. 에휴…. 모르겠다. 그래도 50대가 되는 모습은 볼 수 있겠다. 다들 오늘은 그냥 내 말 잊고 나랑 즐겁게 놀아줄래? 그냥 지금 이 순간을 그렇게 기억하고 싶다. 나중에 정말 나중에 더 많은 이야기 해줄게.”


성훈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석과 친구들은 그런 그에게 더 이상 무슨 일인지 물을 수가 없었다. 우석은 억지 미소를 지으며 친구들의 잔을 채웠다. 그러다가 그는 성훈의 잔 앞에서 잠시 멈칫했다.


“괜찮아. 나중에 의사 선생님한테 혼나면 되는 거고. 자 채워줘.”


우석은 손을 떨면서 성훈의 잔을 채웠다. 우석은 술이 아니라 우석의 마음속 눈물로 잔을 채우고 있는 것 같았다. 


“다들 올 한 해도 고생했고. 이제 50대가 되는 걸 축하한다. 우리 오늘은 옛이야기나 하며 다시 스무 살 그때로 돌아가 보자.”


성훈이 웃으며 건배를 청했고 우석과 친구들은 그를 위해 잔을 부딪혔다. 언제나 젊을 줄 알았던 40대의 아저씨들은 그렇게 새롭게 찾아오는 50대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내일이고 누군가에게는 다시 없을 내일일 그날을 위해서 그들은 오늘 옛이야기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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