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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Dec 18. 2022

12월 18일 이승혜의 하루

악연이라 생각한 사람

집에서 쉬고 있는데 의외의 사람의 메시지를 받았다.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전 직장 동료인 정아였다. 


“이 사람이 나한테 메시지를 보낼 정도던가?”


굉장히 의아했다. 나는 정아와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사이가 안 좋은 케이스에 더 가까웠다. 대놓고 싸운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 둘 사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다른 동료들도 눈치챌 수 있을 정도는 됐다. 내가 퇴사를 하는 그날까지 나는 정아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정아는 내가 퇴사할 때 굉장히 아쉬워했다. 정아가 나한테 왜 그러나 싶었다. 그저 가식적으로만 보였다.


[오랜만이에요. 정아 님. 잘 지내시죠?]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정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머릿속으로 정아가 무슨 속셈일까를 생각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인사드려요 :) 혹시 1월 첫째 주 토요일에 시간 괜찮으세요? 저녁이나 먹을까 해서요.]


정아의 다음 메시지가 도착하자 나는 정아의 인사가 그리 순수한 의도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사이가 좋지도 않은 사람끼리 밥을 먹자고? 그렇다면 나한테 얻어낼 것이 있다는 뜻이겠지. 나한테 돈을 빌릴 정도의 사이는 아니라는 것은 정아도 알고 있을 테고. 퇴사한 마당에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자고 하는 것도 아닐 거고. 지금 이 상황에서 가장 합리적은 추론은 결혼이었다. 결혼식을 앞두고 나에게 밥을 먹자고 하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도 이상했다. 대체 왜? 친한 사이도 아닌데 왜 결혼식을?


[글쎄요. 혹시 무슨 일 때문일까요?]


정아에게 모른 척하며 메시지를 보냈다. 이제 그녀도 대놓고 말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만약 그녀가 청첩장을 주기 위해 나를 보자고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나는 시간이 안 된다며 거절할 생각이었다.


[승혜 님 말고도 다른 분들도 오실 거예요. 성우 님, 수진 님, 영현 님, 진수 님도 오시기로 했어요. 오랜만에 회사 분들 뵙고 싶어서 연락드렸어요.]


하아…. 정아는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저 멤버를 부를 정도라면 분명 청첩장 모임이 분명한데 정아는 대놓고 청첩장 모임이라고 말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리고 정아가 말한 멤버 중에는 나랑 정말 친한 사람도 있었다. 나는 정아한테 ‘혹시 결혼하세요?’라고 묻고 싶었지만 그러면 지는 것 같아 참았다. 쓸데없이 정아와 이야기를 오래 하고 싶지 않았다.


[아 죄송해요. 그날은 시간이 안 될 것 같아서요. 다음에 또 시간 되면 말씀해 주세요!]


나는 에둘러 정아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녀는 바로 내 메시지를 확인했지만 답장이 오지 않았다. 다음 반응을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고 어쩌면 내 답변을 보고 속이 부글부글해졌을지도 모른다. 

핸드폰을 침대에 던지고 세수를 하러 갔다. 아침부터 정아한테 메시지를 받다니. 그 이름만 생각해도 화가 났다.


정아는 내 전 직장의 사수였다. 처음 그녀에 대한 내 인상은 매우 좋았다. 얼굴도 예쁘고 일도 잘하고 성격도 좋은 그녀를 싫어할 이유가 없었다. 정아는 나에게 잘해주려고 했고 나도 그녀의 업무 방식과 태도를 본받으려고 노력했다. 서로 성격도 잘 맞아서 업무 시간 외에 같이 밥을 먹은 적도 많았다. 그렇게 처음 6개월 동안은 아무런 문제 없이 다녔다. 

정아는 나 말고도 다른 동료들과도 친하게 지냈다. 그녀는 항상 미소를 지으면서 동료들과 대화했고 같이 협업하는 업무에 대해서도 비교적 관대한 태도로 일했다. 어쩌다가 상대방이 실수해도 그녀는 ‘다음에 더 잘합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아는 나와 둘이 있을 때는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타입이었다. 나와 친해지고 나서는 내 앞에서 다른 동료들을 욕하는 말을 많이 했다. 그녀가 상대방을 험담하는 방식은 꽤나 정교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다른 분들이 이 분 욕하는 이야기 들었다’라는 말에서 시작해서 대상이 되는 동료가 얼마나 일을 잘 못 하고 있는지에 대해 상세하게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정아가 대상이 되는 동료를 욕하는 게 이해가 될 정도였다. 정아의 이야기를 듣고 다음 날, 그 동료를 만나면 나도 모르게 편견에 가득 찬 시선으로 동료를 바라보았다. 

정아가 비판하는 동료의 수는 꽤 많았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이 회사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모를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말을 믿었다. 업무적으로 그만큼 그녀는 나에게 신뢰를 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아가 비난하는 대상이 내가 될 수도 있었다는 것을 완전히 간과하고 있었다. 어느 날, 다른 동료의 입에서 정아가 나를 욕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느낀 배신감은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날로 내가 정아에 대해 가지고 있던 신뢰는 모두 무너졌다. 

나는 다른 친한 동료들에게 정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어봤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정아가 얼마나 일을 개판으로 하고 있는지, 그녀 때문에 퇴사한 사람이 몇 명이나 있는지에 대해 듣게 되었다. 내가 알고 있던 정아랑 완전히 달랐다. 하지만 그들의 말이 거짓말 같았으면 믿지 않았겠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머릿속에서 복잡하게 얽혀있던 실타래가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은연중에 정아의 행동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던 부분이 있었는데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모든 것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 이후, 나는 정아를 좋게 보지 않게 되었다.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가 거슬렸다. 내 마음이 떠나니 정아를 향해 내가 하는 행동에도 영향을 끼쳤다. 주변 사람들은 나보고 ‘정아 님이랑 무슨 일 있어?’라고 물을 정도가 되었다. 

정아한테 직접적으로 따진 적은 없다. 그런다고 해서 얻을 게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묵묵히 일을 했고 가끔 정아가 여전히 내 욕을 하고 다닌다는 말을 접했다. 처음에는 화가 났지만 몇 달 지나고 나니 그마저도 익숙해졌다. 그녀는 그냥 그런 사람일 뿐이었다. 


세수를 마치고 방에 들어오니 핸드폰이 전화벨이 울리고 있었다. 전 직장 동료인 영현의 연락이었다. 그녀는 퇴사 후에도 계속 연락하고 지내는 동갑내기이기도 했다. 


“어, 승혜 님. 연락 가능해요?”


“안녕하세요. 네 가능해요.”


“그 정아 님이 다음 달에 밥 먹자고 하던데 승혜 님은 갈 거예요?”


“아…. 그거 때문이구나. 저는 못 간다고 했어요.”


“제가 준혁 님에게 물어보니깐 정아 님 이번에 결혼한다고 하는 것 같더라고요.”


“네… 그럴 것 같았어요. 퇴사 후에 연락 안 하던 사람이 갑자기 밥 먹자고 하면 이유는 뻔하죠.”


“고민되네요. 승혜 님 가면 갈까 했는데. 저는 아는 사람도 없고, 그냥 못 간다 할까 봐요.”


“웃긴 사람이에요. 뭐 얼마나 친하다고 우리들을 불러대는 건지.”


“그러니까요. 승혜 님도 승혜 님이지만 지가 내 욕은 또 얼마나 많이 하고 다녔는데. 뻔뻔해요.”


“자기는 아마 다른 사람 상처 주는 것도 모르지 않을까요? 됐어요. 영현 님도 가지 마세요. 우리 그날 밥이나 따로 먹을까요?’


“좋죠. 그럼 어디서 볼지는 따로 이야기 나누기로 해요.”


“네. 좋습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승혜 님도요! 잘 지내요!”



휴우…. 역시나 그거였구나. 정아도 참 뻔뻔하기도 하다. 하긴 성격이 그 모양이니 진짜 친구가 없어서 우리라도 부르려고 그렇게 애를 쓰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게 평소에 좀 잘 살지.  정아랑은 앞으로 더 이상 엮이기 싫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핸드폰에서 정아의 전화번호를 수신 차단했다. 내 인생에서 정아는 이제 완전히 없는 사람일 뿐이다. 본인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그녀는 내게 악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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