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족학살
아주 오랜 이야기다.
아주 먼 옛날, 한 왕국에서는 왕의 재능을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자로 평가했다.
마법으로 통치되는 곳이라 마법을 사용할 줄 모르는 왕자나 공주가 있어서는 절. 대 안 되는 나라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왕의 자리를 이을 왕자와 공주가 절. 대 마법을 사용할 수는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왕국의 왕은 늦은 나이에 첫 아이를 얻었다. 아주 몸이 건강한 왕자.
왕은 뒤늦은 후계자의 탄생에 기뻐했지만 혹시나 아이가 마법을 사용하지 못할 경우 생길 후폭풍을 생각하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마법의 재능은 15살이 되면 알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왕은 무려 15년 동안 혹시 모를 가능성 때문에 밥 잠을 이룰 수가 없을 수도 있었다.
다행히 왕자의 나이 10살이 되던 해, 동생이 태어났고 혹시 모를 또 다른 후계자를 얻은 왕은 남은 5년을 편히 잠들 수 있었다.
이제 동생에게 형의 자리를 탐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5년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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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왕은 심판관에서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 자세히 물었다.
심판관은 어제의 일을 고하기를 매우 어려워했다.
심판관의 표정을 보자 왕은 어렴풋이 자신의 첫아들이 재능이 전혀 없는 자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왕은 큰 고민에 빠졌다. 왕자가 다음 왕이 되지 못하는 것은 확정이었고 그다음 왕자도 문제가 생긴다면 어쩌지라는 생각을 했다. 다시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았다.
“왕이시여, 타이라 왕자의 일은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하나, 원칙은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왕의 눈과 귀가 되어 주던 재상은 상황을 한참 지켜보다 왕에게 말했다.
“그.. 그렇지… 왕자는 지금 어디 있는가?”
“왕자께서는 방에서 처분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재상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왕에게 말했다.
왕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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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의 원칙은 매우 간단했다.
직계 왕족은 누구나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일족이 이 나라를 통치한다.
그것이 이 왕국의 가장 큰 법이었다.
300년이 지나는 시간 동안 왕가가 왕국을 통치해 온 비결이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 그중에는 마법의 자질을 가지지 않은 왕자나 공주가 태어나고는 했다.
백성들에게 그들의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을 뿐이었다.
오랜 기간 동안 왕국의 왕들은 15살이 되던 해에 자신의 왕자와 공주를 소개하는 큰 축제를 열었다.
새로운 통치자를 소개함과 동시에 왕가의 전통과 힘을 과시할 수 있는 자리였다.
그러나 오랜 기간 왕국에는 15살이 되었을 때 죽은 왕자와 공주들이 많았다.
백성들은 거의 몰랐지만 왕궁을 드나드는 자들이라면 왕가의 흉흉한 소문을 어렴풋이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왕가의 유전병이 있어서 그런 것이라는 생각만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실상을 아는 자는 극소수였다.
실제로는 마법을 사용할 줄 모르는 왕자와 공주를 처분이라는 이름으로 죽여 그 흔적조차 없애버렸다.
이른바 왕족 학살.
세상에 절대 알려져서는 안 되는 왕국의 야만적인 풍습이었다.
그렇게 왕가는 오랫동안 마법을 할 줄 아는 자만 태어나는 왕국의 통치 가문으로 명성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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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라 왕자는 방에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이제 자신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 알고 있었다.
왕자는 도망가고 싶었지만 워낙 높은 곳에 왕자의 방이 있었기 때문에 섣불리 움직일 수는 없었다.
기회가 있다면 단 하나, 처분의 시간에 벌어지는 그 찰나의 순간뿐이었다.
‘똑똑’
타이라 왕자는 놀라 문 쪽을 쳐다봤다. 이제 자신을 궁 밖으로 쫓아낼 처분자들이 나타난 것이었다.
왕자는 어차피 자신을 끌고 갈 텐데 노크까지 하는 처분자들의 태도가 역겨웠다.
왕자의 대답이 있기도 전에 처분자들은 문을 부수고 왕자를 그대로 포박했다.
타이라 왕자는 군말 없이 처분자들을 따라갔다. 아니 끌려갔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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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라 왕자는 고요의 산이라는 곳으로 끌려갔다.
왕자는 주위를 살폈다. 험준한 지형이었고 누구도 찾지 않는 곳이었다.
누군가를 죽인다면 이곳만큼 적당한 곳이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는 한편 왕자는 이 산을 넘어가면 다른 나라로 넘어갈 수 있음도 알았다.
왕자는 주위를 계속 살폈다. 단 한 번의 기회. 그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가다 3개의 바위가 있는 곳에 도달했다.
왕자는 이곳에서 자신과 같은 처지의 조상들이 잊혔을 것이라 생각하니 가슴에 미어졌다.
왕자는 어제 일을 생각했다.
심판관의 평가가 있기 전, 왕은 자신의 어깨를 다독여 주며 그 누구보다도 더 자상한 아버지의 미소를 보여줬다.
왕은 언제나 자신에게 엄한 아버지였기 때문에 왕자는 아버지의 따뜻한 모습을 바로 어제 이르러서야 처음 본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 아버지는 다시 냉혹한 모습을 보이더니 이제는 자신을 죽이려 드는 아버지였을 뿐이었다.
왕자가 끌려가는 마지막까지 타이라를 보러 오지도 않은 왕이었다.
왕자는 지금 자신의 처지가 너무나도 처량했다.
지금이라도 이곳을 벗어나서 아버지에게 따지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그럴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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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의 무릎을 꿇게 한 처분자들은 왕자의 목을 벨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내 목을 베고, 이제 불에 태워 내 흔적조차 치우겠지’
야만의 풍습. 야만의 나라.
왕자는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넘어, 이 왕국에 대한 분노까지 생겼다.
왕자는 심판관들의 얼굴을 한 번 씩 쳐다봤다.
그리고 왕자를 데려온 처분자 한 명과 눈을 마주쳤다.
서로를 확인했을 때,
그 찰나의 순간이 다가왔다.
타이라 왕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눈을 마주친 처분자가 칼을 꺼내 주변 심판관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처분자들을 배신한 처분자의 이름은 페르나는 아주 오래 전부터 왕자를 따르던 자였다. 그런 자를 심판자 중의 하나로 넣어 임무를 수행하게 한 것은 왕의 가장 큰 실수였다.
동료 처분자를 공격하던 페르나는 기회를 봐서 왕자를 포박하던 줄을 재빠르게 잘랐다.
왕자는 자신을 공격하는 처분자를 공격하여 칼을 뺏었다.
전투가 이어졌다.
타이라 왕자는 마법에는 재능이 없었지만 검술에는 큰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왕자의 검술에는 지금의 고통과 분노가 그대로 스며들어 있었다.
그는 자신을 제외한 처분자들을 향해 사정없이 칼을 휘둘렀다.
예전 왕자와 공주의 피가 가득한 산에는 이제 처분자들의 피로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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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님께서는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지금 왕궁으로 가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왕자를 도운 처분자 페르나가 말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이웃 나라 타스로 떠날 것입니다. 그곳에서 잠시 숨 어살 것입니다.”
왕자는 거친 숨소리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제가 계속 모시겠습니다. 만약 다른 행동이 필요하다면 제가 부대를 모을 수도 있습니다.”
“아버님을 해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이 야만적인 풍습은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합니다.”
왕자는 일어나 산 멀리 보이는 풍경을 보며 말했다.
그리고 타이라 왕자와 페르나는 산을 넘어 타스로 향했다.
그날은 무척이나 추운 겨울이었다.
타이라 왕자가 왕국으로 다시 돌아온 것은 그 후로부터 20년 후의 일이었다.